나는 장거리 연애의 모든 이들을 응원해요.... 또르르
"지금 사귀는 여자친구가 유학을 생각하고 있는데, 그 전에 결혼하고 가면 좋겠지만 벌써부터 결혼하기에는 아직 준비가 안된 것 같아. 박사과정까지 생각하고 있다는데 그럼 5년이야. 너 장거리연애 많이 해봤잖아, 어떨 것 같아?"
내 연애는 '이꼴' 장거리 연애. 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여러 번 경험했지만 들을 때마다 마음 시린 그 단어. 장거리 연애. 5년이 넘는 시간동안 나의 연애는 가까이에서 피부를 부비며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연애와는 거리가 멀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기(?)였던 21살부터 시작된 그 선배와의 연애가 이렇게 길게 갈 줄은 몰랐다. CC(캠퍼스 커플)로 시작한 연애가 선배의 졸업과 동시에 국내에서 4시간 떨어져있는 장거리 연애의 시작이었고 내가 졸업하고 직장생활까지 하면서 그 연애는 빼박 장거리, 장거리, 장거리. 국내 장거리, 유럽-한국 해외 장거리, 미주-한국 해외장거리....
그래도 연애 시작 1년 즈음, 그 당시 직장인이었던 그는 한 달에 한, 두번씩 나를 보러 학교로 찾아왔고 본격적으로 시작된 대학교 생활이 즐거웠던 나는 내 공부와 학교 생활도, 연애도 균형을 이뤄가며 할 수 있어 만족했었다. 이때는 장거리 연애가 힘들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연애에만 빠져있으면 힘들수 있지. 오히려 내 삶도 챙기고 연애도 할 수 있으니까 더 좋은데?' 라며 뭐라도 된 듯 자신있는 소리를 하곤 했었다.
1. 연락
그렇게 내 장거리 연애가 지속되었었다면 좋았을텐데, 연애 2년차쯤 내가 해외생활을 하게 되면서부터 본격적 장거리 연애가 시작되었다. 그 즈음에 남자친구는 스스로 하던 공부에 푹 빠져있던 때였다. 어떻게 보면 외롭고, 어떻게 보면 정신없는 해외생활을 하면서 거의 매일 하던 남자친구와의 연락 (여기서 말하는 것은 전화와 영상통화. 메시지 주고받는 것은 당연 매일 해야한다고 생각.)이 그 시작이었다.
남자친구는 조심스럽게 전화의 횟수를 줄여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고 연애 시작 전부터 매일 하던 통화를 적게 하자는 그 말을 듣고 나는 적잖은 실망을 했다. 그때의 나에게 우리의 통화는 서로에 대한 관심과 애정의 크기를 의미했던 것 같다. 나는 차가운 목소리로 그러려면 일주일에 한 번만 연락 하라고 내 실망감을 비추었고 남자친구는 이런 상황까지 예상하지 못했던 듯 당황해하며 그 사건의 2-3일 이후 길게 쓴 편지(여기에서는 반성문이라 읽는다.)를 사진찍어 나에게 보냈다.
다른 이들의 연애보다는 상대적으로 무덤덤했던 우리의 관계에서도 장거리 연애 중 연락은 큰 부분을 차지했고, 무척이나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어쨌든 그 상황을 통해서 앞으로 몇 년이나 더 남은 우리의 장거리 연애에서 '연락'이라는 이슈의 룰은 그때 확실히 정해지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사랑이 일도 아니고, 정해두고 연애를 하는 건가 싶기도 하겠지만, 상대가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연락의 빈도(간격)와 정도(시간)를 알기란 참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장거리 연애 전부터 이를 확실히 해 놓으면 그래도 많은 부분에서의 마찰을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나와 남자친구의 관계에서 연락은 이랬다.
메시지는 상대가 궁금해하거나 걱정하지 않을만큼. (어떤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출근, 외출, 퇴근을 할 때, 친구를 만날 때 등. 우리는 메시지를 자주는 보냈지만 길게 하지는 않았다. 서너시간에 한 번쯤?)
전화는 평일에는 격일로, 주말에는 모두. 서로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작고 사소한 일과 계획의 공유.
한 번 전화는 보통 2-30분.
글로 쓰고 나니 굉장히 많이 연락을 했던 것 같지만, 실제로 해외 장거리를 했을 때에는 나와 남자친구의 낮과 밤이 서로 반대라서 아침에 일어나면 메시지 4, 5건 쯤 와있는 정도였다. 그리고 때때로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하지만 서로에게는 특별한) 사진도 함께. (예를 들면 오늘 먹은 음식이나 친구랑 만나 찍은 사진이라던가)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의 하루 스케줄을 알고 언제 무엇을 할 것인지 알고, 어떤 사건에 대한 기분을 공유하는 것이었다. 시차가 있기 때문에 전화 통화를 할 때면 내가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전화를 해야 한다던가, 평소에는 일찍 자는 남자친구가 조금 늦게까지 깨어 있어야 했었지만 이런 것이 어떤 의미로는 자기 삶의 희생을 통해 우리는 서로가 이 관계를 소중히 여긴다는 것을 알았고 서로에게 그런 일종의 노력을 해 왔던 것 같다.
2. SNS
그래도 잘 헤쳐나가고 있던 그 장거리 연애 중에서 가끔 트러블이 생길때면 SNS로 인한 것이 꽤 있었다. 안그래도 멀리 떨어져있는데 갑자기 알지 못하던 여자애가 남자친구를 태그한다던가, 또 태그한다던가, 그래서 예의주시하고 있는데 또 태그한다던가.. 막 그런거.
가뜩이나 장거리 연애를 하면 얼굴 볼 시간도 없는데 거기에서 싸우기까지 하면 얼마나 피곤하고 힘들 줄 아니까 꾹꾹 눌러담아 말 안하고 있다가 마음 속에서 꿈틀대는 그 분노가 커지면 그 불만을 토로했다.
상대가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사람과의 친근함, 관계를 두텁게 쌓아 간다는 사실을 멀리에서 그냥 지켜봐야한다는 것이 싫었던 것 같다. 아니면 여자친구가 멀리 있다고 그냥 무시하는건가? 하는 어떤 의미로는 오해 비슷한 것을 하기도 했다. 특히 SNS가 가지고 있는 그 특유의 아련한 감성은 실제로는 별일 아닌 것에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뭔가 크게 의미부여를 시키기에 굉장히 적합한 것 같다. 그래서 더 위험하지.
이유가 무엇이든간에 내가 싫은 것에 대해서 최대한 남자친구의 마음을 상하지 않도록 내 기분과 감정이 그로인해 어떤지 표현하면서 그런 일들이 있을 때마다 풀어나갔다. 나중에는 마음 속은 정말 짜증나지만 시간을 갖고 정리를 아주 잘 해서 남자친구가 그런 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 대화법. 그게 내가 장거리 연애를 하면서, 많은 크고 작은 감정 다툼을 하면서 얻은 특기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남자친구는 내가 화가 나는 포인트가 무엇인지 이해하면서 때로는 먼저 사진을 보내주면서 나를 이해시킨다던가, 대비를 하게 한다던가, 마음은 항상 너를 생각하고 신경쓰고 있으니 걱정말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던지려 애썼던 것 같다.
상대가 싫어하는 것은 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그 모습이 보여 나중에는 어떤 일에도 바다같은 넓은 마음과 이해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하여간, 누군가가 말했듯이 SNS는 인생의 낭비이기도 하고 어떨 때는 연애에서의 감정 낭비의 큰 이유가 되기도 하더라.
3. 확실한 자신감
장거리 연애에서 시시때때로, 가장 크게 자신감을 떨어뜨리는 것은 아무래도 '언제까지 이렇게 연애를 이어나갈까', '우리는 이런 상태에서 잘할 수 있을까', '마치 전화기 너머 로봇과 연애하는 것 같은 그 실체 없는 기분' 이로 인한 막연한 미래. 어두컴컴해 보이는 미래일 것 같다.
나도 해외 장거리를 시작하기 바로 전에 그때까지 내 3년이 넘는 연애를 봐 오신 엄마로부터 '이제 헤어지겠네?' 하는 소리를 들었던 경험이 있고, 바보같이 한 사람한테만 그렇게 젊음을 낭비하지 말라는 직장 상사의 진심어린(?) 조언도 들었었고, 남자친구 주위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 때, 남자친구가 했던 말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아직 좋아하고 같이 이야기하는 것이 즐거운데, 멀리 떨어져 있다고 헤어져야해?
자기 감정에 대한 확실한 자신감, 그리고 그 자신감을 여자친구인 나에게 공유함으로써 '지금까지 잘 해왔으니 앞으로도 어렵겠지만 함께 잘 해보자' 하는 어떤 종류의 끈끈한 유대감을 생성하게 했고, 그렇게 끈질기게 진하게 노력하며 연애하다보니 결혼까지 이어지게 된 것 같다. 나는 그를 사랑하고, 그는 나를 사랑하고, 우리는 서로 우리 관계를 지켜나갈 노력을 함께 할 것이라는 믿음'. 그것이 끝이 없을 것 같은 장거리 연애를 든든하게 떠받쳐주는 어떤 버팀목이 되었던 것이다.
이와 함께, 서로가 만나는 날을 정해놓고 그때를 기다리고 기대하며 연애를 한다던가, 아님 이보다 더 자신이 있다면 본격적으로 결혼을 준비할 때를 기다리며 연애를 한다던가(굉장히 어려움). 서로 목표로 바라보는 어떤 시점을 만드는 것도 장거리 연애를 지속시켜나갈 작은 힘이 될 수 있다.
연애라는 것이 마음처럼만 되면 얼마나 좋을까, 너무 어렵고 복잡하고 항상 변하는게 사람 마음인데 거기에서 거리까지 가깝지 않은 연애는 그 경험자로서 너무너무 마음이 절절하고 안타깝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처럼 그때는 알지 못해서 장거리 연애를 시작할 수 있었지, 지금 다시 하라면 '안하면 안될까요' 하고 끝까지 버팅길 것 같지만, 그 인내의 시간들을 통해서 이 우주에서 나와 상대밖에 알지 못하는 우리만의 진득한 공간이 만들어진다는 것이 장거리 연애를 시작할, 혹은 하고 있는 이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서로 노력하고 맞춰가려 노력했던 것으로 인해 직접 만나 사랑할 수 있을 때엔 누구보다 더 달고 따뜻한 관계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