띄엄띄엄 한두 단락 쓰다 말고, 또 쓰다 말기를 반복했던 시간. 맥락 없이 뚝뚝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묘하게 또 이어지는 것 같기도 하던 메모의 나열. 한데 모아본 2019년 하반기, 순삭의 시간들.
이번 주에는 꼭, 다음 주에는 반드시, 화요일을 놓친 대신 주말에 마저... 하며 꼬박 두 달 동안 뉴스레터를 놓쳤다. 뉴스레터를 놓치기 시작한 시점은 수영을 다니지 못한 시기, 블로그/브런치에 새로운 포스팅을 하지 못한 시기와 정확히 겹친다. 그 즈음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가 찾아보니, 수술 후 회사에 복귀했을 때다. 하반기에 폭풍이 몰아칠 것은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아니 핑계다. 난 왜 이렇게 밸런싱이 어려운가.
매일이 바빴던 건 아니지만,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놓을 '사심'이 좀처럼 들지 않았다. 하고 싶었던 말은 나름 많았고, notion에 소재 메모도 끄적여뒀지만 죄다 미루기만 했다. 지난 주말에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연간 가장 큰 이벤트인 컨퍼런스가 코앞에 닥친 주말. 작년보다 세션 수도 2배, 연사 수도 2배, 청중 규모도 2배, 그러나 준비 인력은 1배 아니 0.8배. 지난 주말에도 할 일이 잔뜩이었지만, 해야 할 일에서 도망치고 싶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온종일 했다. 집을 청소하고 빨래를 돌리고 옷을 정리하며, 아마도 스스로에게 '이번 주말엔 이걸 해야 해서 저걸 못하겠네' 변명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노트북을 열어 키보드를 두드리는 일만은 좀처럼 당기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최근 하루에 최소 한 편의 짧지 않은 글(같진 않지만 그래도 일단 하얀 화면에 까만 걸로 쓴 글)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 1주 동안 2건의 보도자료를 쓰고, 4건의 보도자료를 뜯어고치고, D2SF 홈페이지에 들어갈 스토리를 3건 쓰고, 내부 리포트를 1건, 컨퍼런스 스크립트를 1건 만들었다.
문득 내가 싫어하고 한심해하던 어떤 이들의 어떤 모습을 닮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무서울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잊지 않으려 되뇐다. 리스트를 계속 늘려나가고, 좀 더 자주 들여다봐야겠다.
의견과 사실 구분하기.
과정이나 태도가 아닌 결과물로 이야기하기.
to do와 일정은 확실하게.
피드백은 선명하게.
내 시간 못지않게 상대의 시간도 소중해.
오판과 실수는 빠르게 인정하기.
감사와 사과 인사는 대충 넘어가지 않기.
책임져야 할 때 역시 마차가지.
스스로 1차 결론을 갖고 있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면 수정할 수 있도록 귀와 마음을 열기.
스트레스나 짜증을 전가하려면 허공에 대고 하기.
내 맘 같길 바라지 말기.
채 말리지 못해 젖은 머리로 뛰어나가던 출근길, 문득 올려다본 하늘이 너무 예뻐서
친구들과 그들의 가족들까지 함께 떠난 1박2일 캠핑이 너무 기적 같아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 저녁 시간이 즐거워서
문득 올려다 본 밤하늘의 반달이 너무 노랗고 선명해서
무심코 나선 산책길의 시린 공기가 온 마음을 씻어주는 것 같아서
난 또다시 괜찮아지는 것 같았다.
영혼의 마이너스 통장까지 다 끌어다 소진한 기분이었는데, 슬금슬금 뭔가 다시 차오르는 것 같았다. 이처럼 단순한 나여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