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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ha Mar 17. 2020

헬싱키#6 오래, 자세히 볼수록 예쁘다

a piece of Helsinki


2016.08.27. 토요일


헬싱키 시내도 나름 구석구석 돌아보고, 교외도 하루 다녀왔다. 그래서 오늘 하루 어딜 가보면 좋을지 많이 고민했다. 탈린도 좋은 후보지였지만, 그저께 무민월드에서 느낀 바가 있어 너무 멀리 가는 건 내키지 않는다. 그래도 화창한 날씨니 야외에 있어야지. 느긋한 조식을 즐기며 친구와 여기저기를 떠올리고 찾아보기 시작했다.

알록달록 먹음직스러운 조식 데코



많은 후보지들 중 느낌이 따악 온 곳은 헬싱키에서 버스로 1시간 거리에 있는 '포르보'다. 딱히 정보는 없지만, 그리 무리하지 않고 갈 수 있으니 잠시 마실 다녀오기 딱일 것 같았다. 이젠 너무도 익숙한 캄피 터미널에서 나름 노련하게 버스를 타고 포르보로 향하는 길. 푸르고, 파랗고, 파랑파랑한 하늘만큼은 보고 또 봐도 새로웠다.

이 하늘 실화인가요




이미 버스 안에서 바라본 하늘만으로 포르보는 할 일 다한 셈이었다. 버스에서 내려보니, 하늘은 차창 사이로 보던 것보다 훨씬 더 멋졌고, 바람은 기분 좋게 솔솔 불었으며, 포르보는 아기자기했다. 산책하기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곳이었다. 골목골목 어디 한 번 걸어볼까나요~

아기자기한 포르보 터미널
예쁜 소품이 즐비했던 가게. 포르보 골목골목도 딱 이렇게 아기자기했다.


한참을 보고 있어도 지루할 틈 없던 하늘


사고 싶은 것들이 여기도 한가득!!


다리 난간 위에도 이곳 사람들의 정성 어린 손길이 닿아있다.
그래서인지, 다리 위에서 본 하늘은 더 멋졌어.
방향을 돌려, 이런 급경사를 올라가다 보면...


여기서 잠시 숨 한 번 고르고, 더 올라가 보면~
동화 속 그림 같은 포르보 성당이 짜잔 나타난다.


귀엽고 아기자기한 성당. 파란 하늘과 초록 잔디까지!!


성당 내부는 예상 밖으로 성스러웠다. 한편에서 세례식이 진행되고 있어서 더 그랬던 듯. 이 분위기를 선물 받은 게 고마워, 오늘 세례 주인공의 행복을 잠시 빌었다.


성당을 나와 광장으로 내려오니 플리마켓이 한창 열리고 있다.
발길이 자꾸만 멈추는 걸 어떻게 해.


멋진 카페에 들어가, 달다구리로 잠시 에너지 충전!



아무것도 모르고 온 곳인데, 골목을 돌 때마다 너무 예쁘고 평온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 다음 골목을 돌아 나갈 때면 이번엔 어떤 그림을 마주칠까, 설레기 시작한다. 날씨도 한몫했지만 그에 못지않은 이곳만의 여유와 평화로움이 있다. 문득 이곳에서 산다는 건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졌다. 걸음을 서두르지 않고, 공원에 삼삼오오 모여 별거 아닌 대화와 뜨개질을 나누고, 그렇게 만든 소품으로 나무나 벤치 그리고 난간에 옷을 입혀주는, 그런 삶은 어떤 느낌일까.



여행을 하다 보면, 어딘지 왜인지 모르겠지만 나 자신이 조금 단단해진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이번 헬싱키 여행에선 유독 그런 순간이 많다. 아카데미아 서점이 그랬고, 방주교회의 침묵이 그랬고, 카페 우르슐라에서 바라본 하늘과 바다가 그랬다. 오늘 포르보에서의 산책도 그러하다.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던 시간이라 다시 헬싱키로 돌아오는 길이 그리 아쉽지 않았다. 언젠가 꼭 다시 가보고 싶은 건 당연하지만, 못 가더라도 괜찮다. 그만큼 포르보는 내 안에 가득 들어찼다.

다시 헬싱키로!



느긋하게 한참을 걷다 왔는데도, 오늘이 가려면 아직 멀었다. 이번엔 어딜 가본담. 오가며 계속 마주치기만 했던 건물에 즉흥적으로 들어섰다. 전날 키아스마의 행복한 기억을 안고 찾은 곳. 아테네움 국립 미술관이다. 어제와는 또 다른 고전적인 작품들을 찬찬히 둘러봤다.



오늘은 점심을 가볍게 먹었으니, 저녁은 좀 근사하게 먹어볼까나. 폭풍 검색으로 찾아낸 곳은 브론다! 해산물과 맥주가 유명하고, 분위기까지 일품이란다. 주말엔 예약하지 않으면 한참 기다려야 한다는데, 마침 우리가 도착하니 디너타임이 시작하기 직전이었다. 전세 낸 기분으로 맥주, 해산물 샐러드, 그리고 진리의 연어 스테이크를 맛보는 동안 테이블이 하나둘 채워졌다. 옆 테이블에선 생일파티도 한창이다. 동네 핫한 레스토랑의 재미가 나름 있었다. 아, 물론 연어는! 헬싱키의 연어는! 맛이 없을 수가 없다!!




평소보다 상당히 이른 저녁을 먹었다. 꽤 많이 걸었는데도 피곤함이 느껴지지 않아, 멀리멀리 돌아 숙소에 가기로 했다. 오늘 바다를 보지 못했으니, 항구에 한 번 나가본다. 이제 익숙하고, 정겹기까지 한 항구의 주말 풍경. 관광객들은 여전히 많은데, 어쩐지 평소와 다른 한산함이 분명 있었다.



헬싱키 대성당으로 향하는 골목에서, 그 묘한 한산함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지금은 토요일 오후 5시 30분. 여긴 분명 헬싱키의 관광지 넘버원인 대성당 앞인데, 관광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뤄야 할 가게들이 죄다 문을 닫아걸었다. 무슨 특별한 날인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대부분의 가게는 주말 영업을 오후 4시에 마치는 것이었다.


내가 누구인가. 24시간 오픈은 기본이고, 배달도 가능한 서울에서 온 고갱님 아닌가. 관광객 대상의 기념품 가게조차 토요일 오후 4시에 문을 닫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이내 떠오른 것은 방금 브론다에서 생일파티를 하고 담소를 나누던 사람들, 항구를 산책하던 사람들, 공원에 앉거나 누워있던 사람들, 광장에서 노래하고 뛰노는 사람들, 사람들, 사람들이었다. 이 사람들이 가게 문을 닫고 다 거기 있겠구나.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다. 이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다르지 않은 거다. 내 주말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누군가의 주말이 희생되면 안 되는 거다. 그동안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돌아보게 된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일, 서울에선 여전히 많은 공부와 연습이 필요할 것 같다.



오늘도 돌아보니 하루가 가득 찼다. 많은 곳을 가려고 한 것도 아니고, 빠르게 다닌 것도 아닌데 말이다. 느린 걸음으로 쉬어가도, 이곳의 시간은 기다려주는 느낌이다. 공간 역시, 좋은 것은 한 번 더 보고, 다른 각도로 또 보는 걸 기다려주는 크기다. 물론, 볼 때마다 다른 겹겹의 매력도 넘쳐난다.


오래된 카페에 앉아,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한 헬싱키 대성당을 한참 바라봤다. 첫날에 봤던, 비눗방울이 퐁퐁 날던 광장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새삼, 이번 여행에서 스웨덴이나 덴마크를 욕심내지 않아 참 잘했다 싶다. 한 번만 보고 떠났더라면, 이런 느낌은 전혀 몰랐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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