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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ha Oct 08. 2020

 헬싱키#7 머물고 싶은 공간

a piece of Helsinki


2016.08.28. 일요일


느지막이 눈을 뜬 아침. 이번 여행도 이제 하루가 채 남지 않았다. 늑장 부리며 조식을 챙겨 먹고, 오늘도 길을 나선다. 어제 문을 일찍 닫아, 쇼윈도 너머에서 침만 꼴깍 삼켰던 가게부터 들렀다. 헬싱키 곳곳에서 lovi 종이 나무를 팔지만, 몇몇 컬러는 구하기 어렵다. 며칠 전부터 lovi 나무만 보이면 일단 들어가고 봤는데, 원하는 컬러의 나무가 남아있는 건 여기 이 가게가 유일했다.




카페 우르슐라 가던 날 이후론 내내 뚜벅이 아님 버스였는데, 오늘은 간만에 트램을 탔다. 아, 물론 lovi 나무랑 지나치지 못해 사고야 만 테이블보, 시티 머그 등등을 꼬옥 양손에 쥔 채로.

언제 떠올려도 흐뭇한 키아스마 미술관을 지나


아쉽지만 들르지 않은 핀란디아 홀도 거쳐


어느 조용한 동네에 도착했다.

이 고즈넉한 동네로 말할 거 같으면~ 건축가 알바 알토가 살고 작업하던 곳이다. 예전부터 와보고 싶었던 곳이기도 하지만, 헬싱키에서 아카데미아 서점이며 Artek 매장을 둘러보니 여긴 꼭 한번 봐야겠다 싶었다. 마침 아틀리에는 투어 프로그램이 있어, 시작 시각에 맞춰 쪼르르 달려갔다. 10명 조금 넘는, 딱 좋은 규모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투어 가이드를 들으며 건축가의 공간을 둘러봤다.


헬싱키에서 듬뿍 정이 든 알바 알토 특유의 손잡이와 스툴


햇살이 잘 들어오던 이곳은 지금도 작업실로 쓰인다고 한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공간, 아카데미아 등등 수많은 건축물이 태어나던 과정


이렇게 핀란디아 홀 안에도 들어와 봤어요.


나무를 요래조래 휘어 자연을 담은 곡선을 만들고, 정교한 틈을 맞물려 못이나 접착제 없이도 튼튼한 가구를 만들었어요.


가장 좋았던 공간은 바로 여기다. 천장이 높고, 창이 많아 햇살이 그대로 쏟아지던 작업실이다. 한 쪽 벽면을 창문이 길게 가로질러 외부와 연결된 느낌이고, 그 창밖에는 반원형 야외극장 형태로 꾸며진 안뜰이 숨겨져 있다.


여기서 딱 1박 2일이라도 머무르면 어떨까. 햇살 좋은 첫날엔 안뜰에 앉아 책을 보다 설핏 잠에 들고, 해가 지면 안뜰의 하얀 벽면을 슬라이드 삼아 흑백 영화를 한 편 봐야지. 이튿날엔 비가 오면 좋겠다. 그럼 실내에서 세상 편한 의자에 깊숙이 앉아, 큰 창문에 타닥타닥 빗방울 긋는 소리를 감상할 수 있겠지. 아아 저 여기 하루만 자고 가면 안 될까요.




투어는 마치는 시각이라는 게 있다. 아쉽지만 아틀리에를 나와 트램 정거장으로 향하는데, 맞은편에 커다란 호수가 보인다. 시간도 많은데 뭐 어때. 아이스크림 하나씩 손에 들고 호숫가에 잠시 앉았다 가기로 한다. 구글맵을 켜보니, 일단 이건 호수가 아니라 바다랑 연결돼 움푹 들어와있는 만이고, 저 너머에 작게 보이는 건물이 그 유명한 알토 대학교란다. 한겨울엔 여기가 꽁꽁 얼어, 걸어서 저쪽으로 건너갈 수도 있다고. 한겨울의 알토대라면 슬러시가 한창이겠지 싶어, 눈앞의 풍경이 새삼스레 다가왔다.


헬싱키 중심가로 컴백. 공원에도 앉았다가, 버스킹도 구경하며 조금씩 조금씩 숙소로 향했다.



저녁은 가볍게 샐러드와 연어스프로.



가벼운 저녁이 무색하지만 1일 1맥, 1일 1감자칩을 건너뛸 순 없다. 헬싱키에서의 마지막 밤이 아쉬우니 특별히 오늘은 1일 2맥으로, 감자칩은 스페셜한 트러플맛으로 골랐다. 그리고 밤늦게까지 이어갔던 이야기들. 우리 이번 여행은 정말 좋았어,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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