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고 특별한 이야기
얼마 전 천대받고 있는 독서에 대한 글을 적었습니다. 현대인에게 독서가 외면받고 있다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거나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아침에 일어나 세상과 현실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집에 돌아오면 천장을 보고 가마니처럼 가만히 있는 것 조차 힘든 게 우리 삶이니까요.
어찌 보면 이 이야기는 독서보다는 삶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습니다. 책을 좋아하게 된 구체적인 이유라기보다는 우연한 계기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겠구요. 평범할 수 있지만 저에겐 꽤나 특별한 이야기입니다. 하기 싫었던 게 좋아진다는 건 단순하게 이루어지는 화학 반응은 아닐 테니까요.
#1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어떤 글을 쓸까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다 Think Tank라는 이름으로 5년째 쓰고 있는 일기장이자 공책을 펼쳤습니다. 그러다 2011년에 쓴 글을 발견하게 됐어요. 2장짜리 꽤나 긴 일기였는데 이런 걸 썼었나 할 만큼 까맣게 잊고 있던 글이었습니다. 거기엔 이런 내용이 있었어요.
... 이제는 타자의 욕망과 나의 욕망을 구분할 줄 알게 되었고 어느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인지를 알아가는 단계에 있는 것 같다..... (중략)..... 지금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독서와 글쓰기다. 나는 책을 읽으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다. 그냥 뭔가 새로운 걸 알아간다는 느낌이 좋은 걸까? 중, 고등학생 시절 그토록 싫어하던 것들이 이제 와서 취미가 되고 꿈이 되는 것이 참 신기하다.
예전에 적은 글이라 마음에 안 드는 문장이 많았지만 내용 자체는 제가 쓴 글 같지 않게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이때도 내가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기에 적은 것처럼 저는 독서나 글쓰기와는 거리가 아주 먼 학생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극혐이었죠. 학교 공부 이외에 활자를 더 읽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어요. 아마 그 시절을 떠올려보면 다른 책을 읽는 친구가 오히려 더 이상해 보이는 지경이었으니까요.
#2
계기라고 하면 거창하리만큼 별 것 아닌 일이긴 합니다만 저도 책을 좋아하게 된 나름의 계기가 있었습니다. 갓 성인이 됐을 무렵 알바를 했던 적이 있는데 출근할 땐 급해도 퇴근할 땐 느긋하게 하는 편이라 집에 올 땐 걸어오곤 했어요. 집에 걸어가는 최단거리 사이에는 교보문고와 핫트랙스가 있었어요. 물론 안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었지만 안에서 책을 고르거나 읽고 있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되었죠.
그러다 언젠가부터는 교보문고와 핫트랙스를 한바퀴 돌고 집으로 가는 것이 제 퇴근 코스가 되었어요. 단지 같이 퇴근하던 알바생과 더 걷고 싶어서 그랬던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방금 들었지만. 아닌 걸로 합시다(ㅎ). 아무튼 저는 그렇게 책과 필기구 사이를 매일 지나다녔고 나중에는 어떤 책이 이달의 베스트셀러인지 그 책이 진열대 몇 번째 줄에 있는지도 줄줄 꾀게 되었어요.
당시에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열풍이었습니다. 저는 베스트셀러에 걸려있던 그 책이 궁금했어요. 정의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던 것은 아니고 단지 이 책 한 권에 정의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겨 있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어요. 고작 책 한 권으로 그런 걸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이해가 안됐던 거죠. 그것이 그 책을 사게 된 첫 번째 이유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결말이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참 우습기도 합니다.
그 책을 산 두 번째 이유는 '나는 이런데 관심이 많고 이 정도는 읽을 수 있어'와 같은 지적 허영심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벤담의 공리주의라던지 칸트의 정언명령 같은 내용을 배웠지만 책 전체를 소화하기엔 부족한 역량이었습니다. 물론 끝까지 읽지 못하는 얄팍한 끈기도 한몫했죠.
#3
그렇게 정의란 무엇인가에 처참한 패배를 맛보고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 책이나 골라서 재미가 있건 없건 이해가 되건 안되건 딱 5권만 읽어봐야겠다.
진짜 5권만 읽어보고 아니면 영어 공부나 해야겠다.
그렇게 저는 서점에서 철학, 경영, 경제, 문학, 자기계발 이렇게 한 권씩 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못 골랐다 할만한 책도 그중에 몇 권 있었습니다. 독서 문외한에게 5권이란 마치 조약돌의 관점에서 바다를 조망하는 듯이 끝이 없어 보일 수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재미가 없고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활자 자체만 읽고 지나가더라도 끝까지 읽어보려고 노력한 끝에 결국은 5권을 다 읽었어요.
제가 독서가 습관이 됐던 건 이 5권을 읽던 중 어느 시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읽다 보니 5권에서 끝나지 않고 6,7,8로 이어졌어요. 의식적으로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는 단계를 지나 어떤 어떤 책이 읽고 싶다는 단계로 금방 들어서게 된 거죠. 그런 책 욕심은 읽으면 읽을수록 늘어만 가니 마치 무중력 상태에서 공을 굴린 듯이 멈출 줄 모르고 계속 굴러가게 됐어요. 그 과거의 한 점이 지금 브런치에서 글을 쓰고 있는 저와 연결이 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구요.
사람이니까 달면 삼키고 쓰면 뱉고 싶은 게 당연합니다. 독서가 싫은 사람에게 책은 쓴 정도를 넘어 아예 입에 넣을 수 있는 것이 아닌 수준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독서가 좋은 것이라고 설득하고 강요할 수 는 없는 노릇입니다. 다만 저의 이야기를 읽어보신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쓰디쓴 것들도 어느 순간에 달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당연한 말 같지만 이것은 여러분의 자아를 찾는데 열쇠 역할을 해줄 거라 믿습니다.
이제부터 항상 열린 태도로 쓴 것들을 맛보는 거예요. 그중에는 우리가 즐길 수 있는 취미로 만들 수 있거나 너무 좋아서 업으로 삼고 싶은 것들이 존재할 수 있어요. 저의 경우에는 쓴 것이 하기 싫은 것을 해본다는 것 이었지만 꼭 그런 것만을 의미하진 않아요. 그것은 현대의 상식에 의해 제단 되어 이상한 것으로 판명된 취미라던지 주변의 반대에 의해 펼치지 못하고 있는 끼일 수도 있어요.
쓰던 것이 달아지는 그 시점부터 내가 삶의 주인이 되는 거라 생각합니다.
브런치 작가로 활동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좋은 글 많이 쓰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2015.12.12
김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