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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 Dec 08. 2015

천대받는 독서

사유의 필요성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고 카페에 앉았다. 꽤나 청명한 하늘에 산들바람이 부는 날이었다. 그 당시 나는 타지 생활에 정신적으로 매우 지친 상태였다. 하지만 곰돌이 푸가  말했던 것처럼 매일 행복할 수 없지만 행복한 일은 매일 있었다. 나에게 행복이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내가 원하는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 그 자체였다. 그날도 매일 그랬던 것처럼 한 권의 책이 끝나감을 아쉬워하면서 천천히 독서를 하고 있었다. 3장쯤 읽었을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여기서  뭐해? 


친구가 말을 걸었고 나는 읽고 있던 페이지에 손가락을 끼우고서 대답했다. 


오 안녕! 뭐 그냥 책 읽는 중이었어, 앉을래? 


우리는 자리에 같이 앉게 되었고 나는 책을 덮었다. 


이건 무슨 책이야? 


친구는 읽고 있던 책이 궁금했는지 돌려져 있던 책을 뒤집었다. 

그때 내가 읽고 있던 책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이었다. 


그것을 확인한 친구의 반응은 이랬다. 







와 시간 진짜 많나 보다.. 요즘 널널해?






첫 번째로 당황했고 두 번째로 황당했다. 아마 학교 공부나 스펙을 위한 책을 기대했던 것일까? 독서가 현대인에게 천대받고 있다는 것은 미디어를 통해 항상 듣는 것이어서 새로울 것이 없다곤 하지만 실제로 이런 상황을 마주하니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당장은 시간이 많아서 읽고 있다고 '해명'을 했지만 그 예상치 못했던 반응은 아직까지도 머릿속에서 맴돈다. 


독서가 시간이 많아야 할 수 있는 사치스러운 취미가 되었다는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바쁘고 고달픈 현대인들의 군상을 보면 이해할 수 없는 문제도 아니다. 아침부터 나가서 세상과 현실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집에 돌아오면 그저 천장을 바라보고 가마니처럼 가만히 누워있는 것조차 힘든 게 보통 우리의 삶이니까. 하지만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데 있어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인 독서가 이렇게 무참하게 간과되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독서가 마음의 양식인 이유는 지식의 총량을 증대시키는 것이라기보다는 나 자신이 사유의 주체가 된다는데 있다. 물론 세상에는 사유의 대리인들이 많이 존재한다. 정치가들이 국가의 정의에 대해 또는 지식인이 사회문제에 대해 골몰한다.(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정치가가 아니고 지식인이 아니다.) 이렇게 사유의 대리인들이 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참 행복한 일이다. 세상은 내가 사유하지 않아도 여전히 돌아가니까. 


하지만 우리는 나 자신의 주인이 되기 위해,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나에게 주어진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사유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의 사유 자체가 그 대리인들에 의해  섭정당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유하지 않고 글을 읽을 수 있겠지만, 글을 읽지 않고서는 사유할 수 없다. 










브런치 작가로 합류한지 오래되진 않았지만 


좋은글 많이 쓰고 싶습니다. 읽어주신분들 모두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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