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완전 뺑소니잖아?
현대인이라면 피해망상이라는 것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누구나 어느 정도의 피해망상은 가지고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철학자 버트런드 러쉘에 따르면 불행의 원인이 되는 것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이 피해망상이다. 물론 가상의 박해자들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폭력적인 행동을 하기도 하는 극단적 피해망상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우리가 겪는 가벼운 피해망상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우리는 주위에서 자신은 늘 배신적 행위의 피해자이며 여태 베풀었던 호의에 대한 대가가 무자비하게 짓밟혔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은 종종 말주변이 좋아서 진심 어린 동정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 사람의 말을 계속 듣다 보면 살면서 어떻게 하면 살면서 그런 악마들만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시점이 온다.
이거 완전 뺑소니잖아?
피해망상증의 경향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스토리로 한 번 동정을 받기 시작하면 그 스토리의 본질과 개연성이 파괴될 만큼 걷잡을 수 없이 왜곡시킨다. 만약 남들이 자신의 말은 믿지 않는다면 '자신을 동정하지 않고 차갑게 대하는 사람이 또 있구나'라고 생각하고 넘어간다.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결국은 세상과 자신이 맞지 않다고 결론 내리고 세상을 등지게 될지도 모른다. 세상이 자신을 뺑소니치고 갔으니 모든 사람들이 내 계속되는 호의를 무시하고 심각한 해코지를 한다는 것이 자명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 흔히 볼 수 있는 피해망상의 한 종류 중 하나는 박애주의적 유형이다. 이런 피해망상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선행을 사람들이 전혀 고마워하지 않는 것에 대해 깜짝 놀라곤 한다. 안락한 생활을 포기하고 공직 생활에 몸담은 정치인을 생각해보자. 그는 어느 시점에서 공공의 이익을 위해 그토록 헌신한 자신에게 등을 돌리는 국민들의 무례한 태도를 보며 상당히 놀란다. 이 정치가는 자신의 행동이 공적 동기 이외에 자신의 권력욕이 그 헌신에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철학자 버트런드 러쉘의 처방은 다음과 같다
당신의 동기는 당신 자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반드시 이타적인 것만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당신 자신과 마찬가지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신을 해코지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질 만큼 당신에 대해 골몰하고 있지 않다
도덕은 어느 정도 이타주의를 강조하고 있지만, 인간의 본성으로 보아 이타주의는 거의 불가능하다. 아무리 순수한 마음으로 베푼다 해도 그곳에는 이기심이 끼여있기 마련이다. 이런 부분을 인정을 하는데서 자신이 한 행동의 의미를 더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은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에 비해서 훨씬 적을 것이다. 비교적 가벼운 피해망상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자신과 관련 없는 행동을 자신과 관련되는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물론 김춘수 시인의 시처럼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히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우리가 생각보다 서로를 그만큼이나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버드런트 러쉘의 행복의 정복이란 책을 참고했다.
만약에 나에게 단 한 권의 책을 누군가에게 추천할 기회가 온다면 망설이지 않고 이 책을 추천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