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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 Dec 06. 2015

인연의 무게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내가 뭘  잘못했는데? 


친구 관계 혹은 연인 관계에 금이 갔다는 신호이자 이 말의 횟수는 그 깊이의 시금석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이쯤 되면 내가 뭘 잘못했는지 보다 내 잘못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더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무결점에 대해 주장할 때 그 당당함은 높이로 치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와 견줘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나도 내가 한 일은 다 맞다고 생각하는 고약한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 잘못을 조금이라도 알게 되는 순간에는 바로 합리화에 들어간다. 내 상황은 이러 이러해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이해의 몫은 너에게 있다는 식의 지극히 자기중심적 입장에서 인간관계를 해왔던 거다. 진짜 문제는 다음부터다. 사람들에게서 점점 거리가 생긴다는 느낌이 들지만 오히려 내가 베풀어 온 호의에 대한 배신이라 느끼고 그 사람들에게 배은망덕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두바이의 브루즈 칼리파



여타 다른 문제도 그렇겠지만 이런 경우도 문제는 내 안에 있었다. 페르소나의 가면을 벗은 진짜 내 모습이 보잘 것 없고 나약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나면 내 무결점을 주장하면서 내세웠던 그 당당함은 다음날 아침의 이불 킥으로 바뀌게 된다. 사실 나에겐 무결점을 주장할 수 있는 그 어떤 근거도 당위성도 없다. 다만 내가 그 사실을 모르는 어리석은 존재였을 뿐. 


이해와 배려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보자. 처음에는 거의 모든 관계가 깨지는 일이 일어날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원수가 될 것이고 세상은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겨우 찾을 수 있는 미덕이 있다면 이타심이 선을 넘어 전체주의로까지 변질될 우려가 없다는 정도가 아닐까. 


그렇다, 아직 세상에는 이해와 배려가 있기 때문에 우리에겐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연인이 있다. 가족, 친구, 연인 모두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나라는 존재를 위해 그 불가능한 노력을 끊임없이 하는 소중한 존재다. 그들에게 내 무결점을 주장하고 자존심을 지키는 것과 맞바꾼다면 그것은 다음날 아침의 이불 킥 정도로 끝나진 않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문제는 늘 나에게 있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도 나를 많이 무너뜨리고 내려놓아야 하는 힘든 과정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한 번 사는 인생에 가족이라는, 친구라는, 연인이라는 인연의 소중함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인연이란 건 묵직한 것이지만 항상 거기엔 그 무게를 가볍게 여기는 우리가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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