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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 Dec 04. 2015

자신을 알아간다는 것

참을 수 없는 나의  보잘것없음


러시아? 거기 춥지 않아?



내가 러시아에 산다고 하면 주로 받는 첫 번째 질문은 '추위'에 관한 것들이다. 얼마나 춥냐는  것에서부터 여름이 있긴 하냐는 것까지 다양하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러시아라는 단어에 휘몰아치는 눈보라와 살을 에는 추위를 상상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 추위 없이 러시아를 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곳에 산다는 것은 꼭 추위와의 싸움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살인적인 물가, 꽉 막힌 관료주의, 아직 미진한 수준에 머물러있는 시민의식 같은 것들과의 격렬한 투쟁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외적인 것 이외에 내 안에서 싹트는 채울 수 없는 외로움이나 끝없는 공허함과의 혈투도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나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그런 요인들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었다. 인생에 있어 이 불확실성의  외나무다리는 피할 수 없는 중간 단계다. 나는 그  외나무다리에서 마치 비틀거리는 취객처럼 중심을 잡지 못했고 현실에 자신 있게 맞서지 못했다. 



눈오는 겨울의 붉은 광장



과거와 미래에 묻힌 현재



나는 힐링이라는 것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물을 붓고 있는 동안에는 모든 게 괜찮아지니 거기에 취해 현실을 도피하고 싶었다. 그러면서 과거에 잘했던 것들을 떠올리며 현재의 부족함을 가리려고 노력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지만 적어도 내 눈 정도는 가릴 수 있었으니까. 또 동시에 미래에 대한 병적인 집착으로 마치 현재를 열심히 살고 있는 듯한 착각을 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란 것은 미래의 문제와 현재의 내가 맞서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문제를 푸는 열쇠는 현재에 있다. 인생은 몰아치는 것이고 한 치도 유보할 수 없는 현재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 상태를 온전히 받아들일 때야말로 페르소나의 가면을 벗은 진짜 나와 마주하게 된다. 물론 이 과정은 아프고 힘들다. 참을 수 없는 나의 보잘 것 없음도 가감 없이 받아들여야 하니까. 


그렇게 스스로를 높이 평가하게 만들었던 과거를  내려놓음과 동시에 미래에 대한 수만 가지 잡생각을 지우고 현실을 마주해보려고 노력했다.



모스크바 구세주 성당



과거와 미래의 잔재를 쓸어내고 본 현재의 나는 내가 생각해왔던 나와는 괴리가 있었다. 


나는 생각보다 그리 열심히 살고 있지 않았고,
나는 생각보다 그리 뜨거운 열정을 갖고 살지 않았고
나는 생각보다 나약했다


그렇다, 나는 그저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나의 보잘 것 없음을 알게 되는 것이 두려워 깊은 곳에 숨겨뒀을 뿐이었던 거다. 이걸 깨달은 순간에는 그야말로 메스를 들이댄 것만 같은 섬뜩함과 두려움을 느꼈다. 하지만 그제야 내가 진짜 나를 찾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가고 있는 과정에 첫 발을 내디딘 느낌이었다. 


아마 남은 20대가, 아니 남은 인생이 이런 과정의 연속일 것이다. 








2012년에 썼던 일기를 참고했다. 아마 그때가 나를 알아가는데 많은 시간을 쏟기로 결정한 때인 것 같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모든 분들에게 응원의 말을 전하고 싶다. 화이팅!




                                                                                                                              -눈 내리는 밤, 모스크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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