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바로 예(禮)이니라
# 나와 전자상가 판매원
약 4년 전 노트북을 새로 장만하려고 전자상가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전자기기를 살 때 꽤나 꼼꼼하게 이것저것 따져보고 모델을 고르는 편입니다. 그 당시에도 인터넷으로 보면서 골랐던 2-3가지 노트북의 스펙은 완전히 숙지한 상태로 전자상가로 향했습니다.
전자상가에 도착하자마자 노트북 섹션으로 가서 인터넷으로 보고 왔던 그 노트북들을 만지작 거렸습니다. 그때 마침 판매원분이 말을 걸었습니다.
"고객님 어떤 제품 찾으세요?"
"아 15인치 노트북 보러 왔어요."
"아, 지금 보시고 계신 노트북 같은 경우에는 휴ㄷ.."
"SSD라 휴대성이 높고 부팅속도도 빠른 대신에 시디롬이 안 들어가서.. 근데 가격이 인터넷에서 본 것 보다 조금 비싼데 프로그램 깔아주시고 사은품 챙겨주시나요?"
빈 깡통이 더 시끄럽다고 조금 아니까 더 아는척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꽤나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구요. 공자님이 이 대화를 하늘에서 들으셨다면 형편없는 놈이라 생각했을지 모를 일입니다.
# 공자와 태묘 관리인
태묘가 무엇인지 궁금하실 텐데요. 태묘는 쉽게 말해 중국에서 황제의 선조를 제사하는 종묘입니다. 공자가 노나라 주공의 태묘에 참배를 하러 간 일이 있었습니다. 공자는 그곳에서 태묘 관리인에게 참배 절차에 관해 일일이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이렇게 쑥덕대기 시작했습니다.
"그 유명한 공자가 어찌 태묘 관리인보다 참배에 대해 모르는가!"
"예(禮)를 잘 안다고 해서 보러 왔더니 공자도 별거 없구먼"
예(禮)에 있어서 끝판왕이었던 공자가 참배 절차에 대해 모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공자의 제자가 이에 관해 공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은 태묘 참배 예절에 대해 잘 알고 계신 분입니다. 그런데 어찌 일일이 물어보시어 저희를 창피하게 만드시는 것입니까?"
이에 대한 공자의 대답이 압권입니다.
태묘에 들어왔으면 태묘 관리인에게 일일이 물어보는 것이 바로 예(禮)이니라
공자의 넘사벽 겸손과 배려심이 느껴지시나요? 공자는 이 태묘 관리인이 자긍심을 갖고 태묘를 관리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 위해 자신의 지식을 감추고 상대를 이기려 들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공자가 말하는 서의 윤리입니다.
# 논어(論語) 위령공편(衛靈公篇)
子貢問曰
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
子曰 其恕乎
己所不欲 勿施於人
자공이 물었다.
"종신 토록 실천할 만한 한 마디 말이 있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바로 '서(恕)'다. 자기가 바라지 않는 일은 남에게 행하지 말아야 한다."
이 서(恕)의 윤리에 따라 공자는 태묘 관리인이 싫어할만한 행동을 자제한 것입니다.
꼭 이런 상황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자기가 바라지 않은 일을 남에게 행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서로 한 발짝 물러서 배려하는 것이 공자가 말하는 예(禮)의 구체적 실현입니다. 어떤 사람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과정에서도 바로 이 서(恕)의 윤리가 간과되는 경우를 자주 보곤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오늘 읽어본 이 서(恕)의 윤리를 떠올리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이기려 들지 않는다면 원만한 인간관계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말은 쉽지만 실천은 어렵겠지요. 하지만 노력해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