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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 Jan 11. 2016

쉼표가 필요한 순간

쉬어가는 것도 괜찮아




# 글을 쓰다 보면,


글을 쓴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하얀 종이를 주고 내 생각을 적어보라고 하면 내 머릿속도 백지가 된다. 하지만 가끔 머릿속은 휑한데 생각을 짜내야 하는 상황이 있다. 시간에 제약이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그렇게 급하게 쓰면 앞뒤 말이 맞지 않거나 서론과 결론의 주제가 결을 같이 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런 과정을 거친 결과물은 모래 위의 성처럼 빈약하다.


어떤 날은 주제를 정해서 몇 문단 쓰다가 갑자기 네모난 바퀴를 단 차 마냥 툭 멈춰버리는 일도 있다. 쓰다 보니 주제에 대한 내 생각이 바뀐다거나 나는 이해하지만 독자가 이해할 수 없는 내 세계에 빠진 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 그때부터 타이핑하던 손가락이 굳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밤을 새워서 글을 썼다고 해도 그 시간을 빽빽하게 쓴 것은 아니다. 밤을 새운 시간의 대부분은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가끔은 주제 자체가 떠오르지 않을 때도 있다. 글감에서 주제를 뽑아내고 거기에 내 색깔을 칠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벽에 부딪히는 일이 수 없이 많이 반복된다. 이럴 때는 갑자기 배도 고프지 않고 목도 마르지 않다. 이럴 때는 의자를 엉덩이로 더 짓누르는 편이 더 낫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글은 잘 써지지 않는다.





# 흔들의자


무언가를 하다 보면 이전의 속도로 일이 진행되지 않을 때가 있다. 새로운 걸 만들어 내는 일에는 더더욱 그렇다. 아이디어가 생겨도 그걸 세상 밖으로 꺼내다 보면 생각했던 것과 다른 게 너무 많아서 막막하다. 진전이 없으니 길도 보이지 않고 하던 게 잘못되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능력이 부족하다는 느낌도 들고 아직 멀었다는 주변의 시선이 두렵다.


나는 문제가 생기면 그것에 매달리는 시간의 총량이 그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 믿었다. 시간 투입의 총량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믿음은 마치 흔들의자와 같다. 계속해서 엉덩이로 이리저리 흔들어도 그 흔들의자는 나를 어디로도 데려가 주지 않는다. 너무 세게 흔들었다간 뒤로 나자빠지고 만다.


우리는 어떤 일에 대해서 좋은 결과를 희구한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하지만 좋은 결과와 그 일에 투입한 시간의 총량은 사실 큰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 다른 것은 모두 저쪽으로 치워버리고 열심히만 하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단지 그 거짓말이 우리의 머릿속에 금과옥조로 박혀있을 뿐이다.





# 쉬어가기



열심히 한다는 것은 출발선부터 도착선까지 전력질주를 하는 것이라기보다 적절한 때에 쉬면서 다음을 준비하는 것이다. 일이 더뎌지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것이 더 좋은 결과를 위한 쉼표이기 때문이다. 42.195km를 달리는 마라톤 선수도 중간에 물을 마시고 천천히 달리며 완급 조절을 해야만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결승선까지 달릴 수 있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화제가 되었던 영상에서 고등학생 풋볼 선수인 Apollos Hestor는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Q : 오늘은 엄청나게 접전이었어요.  경기전부터 팀원들은 오늘 경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실제로도 그랬고요. 오늘 승리의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 우리는 느리게 시작했어요. 정말로 느렸죠. 그런 건 괜찮아요. 우리 인생에도 가끔 느리게 시작하는 경우들이  있잖아요....(중략)... 전반엔 상대팀이 저희를 압도했어요. 경기에 지진 않았지만 전반은 확실하게 압도당했어요. 하지만 우리는 근성과 투쟁심이 있었어요. 승리의 원동력은 강한 투쟁심이었습니다.



해스터의 팀은 전반에 느리게 시작했지만 근성과 투쟁심으로 경기를 승리로 이끌어냈다. 이 느림은 시작에서만 나타나는 골칫거리는 아니다. 중간이나 끝에서도 복병처럼 나타나 슬럼프를 부른다. 하지만 여기서 계속 일에 박차를 가하다 보면 세게 요동치는 흔들의자처럼 이내 넘어져버리고 말 것이다.



이럴 땐 쉬어가자. 느리게 걸어가자. 달려가다 지나친 겨울산의 풍경을 되돌아보고 떨어지는 폭포의 힘찬 소리에 귀 기울여보자. 앞만 보다 놓친 주변 사람들의 삶에도 기웃거려보고 하늘에 밝에 빛나는 보름달도 한 번 쳐다보자.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나의 힘이 되어 줄 테니



여기서 한 번 쉬어가자.














날이 춥네요. 모두 감기 조심하세요 :)




글_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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