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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우뚝 Feb 12. 2023

갈라파고스 가는 길(2/2)

키토에서 과야킬로, 과야킬에서 산크리스토발로

애틀랜타에서 우버로 공항에 도착한 이후 뭔가 허전함을 느꼈다. 아뿔싸, 배낭을 택시에 두고 내린 것이다. 택시를 탔었으면 어쩔뻔했나 싶은데... 다행히 우버라서 기사의 연락처가 우리에게 있었고, 건실한 청년처럼 보인 Kelvin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두둥..). 우버에서는 전화를 세 번까지 허용하기 때문에 마지막에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다행히 Kelvin이 전화를 받고 아직 공항을 벗어나지 않았으니 U-turn 하여 오겠다고 했다. 무사히 배낭을 전달받고 우버앱을 통해 추가 팁을 제공한 뒤 출국 수속을 서둘러 시작했다.


왼쪽부터 우버에서 찾은 가방을 메고있는 나의 모습, 키토행 비행기 기다리는 중, 그리고 기내식(ATL-UIO)


1일 1우여곡절 끝에 저녁 시간이 되어서야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에 도착했다. 짐을 찾고 택시를 잡아타고 숙소로 가니 어느새 밤 10시가 되었는데, 그럼에도 숙소에 있던 세뇨라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방은 굉장히 베이직했지만, 수많은 개도국 여행 + 동티모르 생활로 이미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던 나에게는 "깔끔함" 그 하나로도 이미 합격이었다. (온수까지 나오니 이건 뭐... 합격 그 이상) 너무 시장하여 혹시 저녁식사가 되냐고 물었는데, 리셉션에 앉아 핸드폰을 하던 그녀는 수줍게 고개를 끄덕인 뒤 식재료를 가지러 나갔다. 한 시간이 되기 전에 그녀는 방 문을 두드리며 음식이 다 되었다며 부엌으로 오라고 안내했다. 우리는 볼로네이즈 파스타, 치즈피자, 그리고 수프를 시켰는데, 수프에 찍어먹는 납작 토스트(?)가 기가 막혔고, 다른 음식들도 꽤 먹을만했다. 수프는 양이 너무 많아 결국 2/3 이상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왼쪽부터 키토 숙소 사진, 도착한 날 저녁식사, 아침 (빈 속을 채우는 빈 샌드위치...)

화산 그림(?) 아래서 잠을 청한 후 새벽 5시에 일어나 리패킹을 시작했다. 6시 즈음엔 리셉션에 나가 호텔에서 준비해 둔 아침을 먹었는데, 맛있긴 했는데... 속이 텅 빈 "空샌드위치"였다. 속이 빈 샌드위치로 빈 속을 채우고(?), 호텔 내 정원을 돌아다녔다. 우리 방 바로 앞에는 오렌지 나무가 자라고 있었는데 주렁주렁 탐스럽게 달린 오렌지가 아침 해와 함께 점점 그 자태를 드러냈다. 차가운 공기, 고산지대라 생긴 가벼운 두통, 지저귀는 새들, 어스름한 안개가 동티모르 아이나로를 떠올리게 했다. 어젯밤 리셉션에 미리 말해두었더니, 약속시간인 6시 반보다 10분이나 빨리 택시가 도착했다. 택시를 타고 가는 도중 기사님이 전화를 받더니 우리에게 넘겨주었다. 이유인즉슨, 우리가 방 키를 가지고 가버려 호텔에서 급히 전화를 한 것이다. 배낭 두고 내리고 방 키 가지고 오고.. 참으로 정신없는 우리지만 그래도 신의 가호 덕분인지 모든 일이 때를 놓치지 않고 잘 풀렸다. (새해니까... 긍정적 마인드 풀탑재 중이었음.)


숙소 앞에 오렌지나무, 티파니블루 테이블, 화려한 히비스커스

키토 공항에 도착해 본격적으로 갈라파고스로 가기 위한 탑승 수속을 시작했다. 갈라파고스에는 공항이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갈라파고스 인구 대부분이 모여사는 산타크루즈(IATA코드 GPS), 다른 하나는 찰스다윈이 처음으로 상륙한 산크리스토발(IATA코드 SCY)에 있다. 갈라파고스는 군도이기 때문에 보통 이 두 섬 중 하나로 들어와 배를 타고 다른 섬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우리는 산크리스토발로 들어간 뒤 산타크루즈에서 나오기로 했다. 산타크루즈로 가든 산크리스토발행을 택하든 갈라파고스로 향하는 국내선은 여타 국내선과 차별화되는데, 그 이유는 국내선임에도 국제선에 버금가는 엄격한 검역을 한 차례 더 거치기 때문이다. 차례를 설명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공항에 도착하면 입구 바로 옆에 'Consejo De Gobierno Del Régimen Especial De Galápagos(갈라파고스 주정부)'라고 적힌 데스크가 있는데, 이곳에서 20불을 내고 Transit Card (인적사항 및 갈라파고스 입도 시 주의사항 준수를 서약하는 종이)를 받아야 한다.

이후 바로 근처에 있는 'Agencia De Regulación Y Control De La Bioseguridad Y Cuarentena Para Galapagos(갈라파고스 특별검역소)'에서 한 차례 짐 검사를 한 뒤 검사 완료 증빙인 파란색 태그를 받아 가방에 단다(사실 달아준다).

그리고 마침내 탑승수속을 시작한다 (탑승수속 시 위 절차를 거쳤는지 항공사 직원이 확인한다).


왼쪽부터 차례로 갈라파고스 주정부 Transit Card 발급처, 특별검역소 및 검역완료를 입증해주는 블루태그


키토에서 출발하더라도, 비행기는 반드시 과야킬에서 정차하는데 이때 내리지 않고 기다리면 기내에서 대기하면 된다. 델타항공을 약 14시간가량 타고 키토에 온 덕에 4시간 정도는 껌이었다. 다만 비행기가 3x3 작은 비행기인지라, 충전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하는 건 어렵다. 키토로 가는 길엔 중남미 여행임을 고려해(무슨 상관..) E-book으로 받아온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를 다시 읽었다. 아주 어렸을 때 큰 감흥이 없었는데, 어른이 된 뒤 만난 제제는 반가웠고 안쓰러웠고 자랑스러웠다. 잠시 방구시(Bangu,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배경도시)에 다녀오자 어느새 비행기는 갈라파고스 군도 상공에 진입해 있었다.


왼쪽부터 고산지대인 키토 상공, 과야킬 시내 항공샷, 그리고 과야킬 정차 시 들여다볼 수 있었던 칵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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