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랜타 경유
갈라파고스는 에콰도르의 영토로, 인천에서 출발한다면 뉴욕, LA, 애틀랜타 등 미국을 경유해 에콰도르로 들어갈 수 있다. 에콰도르 수도인 키토 또는 최대도시인 과야킬에서 갈라파고스로 가는 국내선을 탈 수 있는데, 키토에서 비행기를 타더라도 과야킬을 경유해야만 한다(단, 키토에서 탑승할 경우 과야킬 정차 시 비행기에서 내리지 않음.) 우리는 뉴욕을 통해 가는 방법을 고민하다 결국 순로이자 스카이팀 멤버십 활용&적립이 가능한 대한항공/델타의 인천-애틀랜타 편을 이용했다. 갈 때는 델타, 올 때는 대한항공을 탔는데 확실히 델타 이코노미가 대한항공보다 훨씬!!!!! 좁다. 이를 명심하여 델타 이코노미 이용 시에는 반드시 복도석에 앉기를 권고 또 권고한다. (from 사진 찍을거라고, 기댈거라고 창가좌석 앉은 사람...)
참, 그리고 미국에 갈 때는 사전에 ESTA(이스타)라고 하는 전자여행허가를 받아야한다. 나는 출발 약 일주일 쯤 전에 온라인으로 신청했고, 사흘 정도 뒤에 확인하니 정상발급되어 있었다. 혹시 이라크, 이란, 수단 등 tricky한 국가를 방문한 이력이 있다면 ESTA 발급에 제한이 있을 수 있으니, 꼭 이를 염두에 두고 주한미대사관에 방문해 비자를 신청하는 등 Plan B를 준비해야할 것으로 사료된다.
ESTA를 무난히 발급 받았음에도, 이제 바이든 정부가 들어섰음에도 여전히 미국 입국 심사는 까다로웠다. (국제법 교수님이 트럼프-바이든 정부가 표면적으로 매우 다른 노선을 택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 공약 및 정책에 유사점이 많다고 하신 것이 문득 생각났다.) 공항에 도착 후 체크인 카운터에서 항공사 직원이 1차 보안 인터뷰를 진행하는데, 우리에게는 체류목적, 기간 등 외에도 직업과 사는 곳까지 물었다. 이렇게 1차 인터뷰에 신원을 아낌없이(?) 알려드렸음에도, 탑승 직전 다시 한 번 따로 불려가 (미리 부쳐둔 체크인) 수화물 검사를 받았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탑승했고, 좁디 좁은 델타항공 이코노미 석에서 심호흡까지 해가며 견뎌낸 덕에 마침내 우리는 저녁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그즈음 애틀랜타에 도착했다.
위 사진(가운데)에서 보듯 Moxy는 매우 힙한 호텔이었다. 익선동에 있던 목시도 잠시 들러봤는데 컨셉은 같지만 매우 조용하여 조금 민망한 면이 있었는데, 애틀랜타 목시는 자정이 가까워질수록 문정성시를 이루고, 투숙객보다 Bar에서 파티하는 일반 손님이 더 많은 느낌이었다. 투숙객에게는 웰컴칵테일을 받을 수 있는 토큰이 제공되는데, 맛은 그저 그랬다고 한다ㅎㅎ (그리고 꾸벅꾸벅 졸다가 쏟아버렸다...) 도착해서 짐을 푼 뒤 우리는 애틀랜타 건물풍을 정면으로 받으며, Moxy 투숙객 할인 혜택이 있는 근처 펍(McCray's Tavern Midtown)으로 향했다. 맥주, 스테이크 샌드위치, 파스타, 그리고 검보를 주문했고 대부분 그저그랬으나 검보가 정말 센세이셔널 했다. (검보 밀키트를 사가고싶었을 정도..) 다음날엔 근처 스타벅스까지 산책 겸 걸어가 플랫화이트와 에그머핀(같은 것)을 먹었다.
키토로 향하는 비행기가 오후 3시경이었기에 우리에게 반나절이 주어졌다. 역덕인 남편은 다들 간다는 CNN 센터, 코카콜라 투어(?)가 아닌.. (하루가 주어진다면 누구도 가지 않을) 애틀랜타 역사센터(Atlanta History Center)에 가자고 제안했다. (세계 최대라는 조지아 아쿠아리움도 보통 관광객이 들르는 곳이지만, 나는 수족관을 정말로 싫어하기에 남편이 말도 꺼내지 않았다...세상 모든 수족관 없어져라) 나는 델타에서 잠을 전혀 자지못해 너무 지쳐있었고, 사실 그렇지 않았더라도 별 생각이 없었던터라 순순이 남편을 따라 나섰다. Moxy에 있는 무료 Locker에 짐을 두고, 우버를 타고 목적지를 향해 이동했다. 가는 길 버핏 할배의 버크셔 헤서웨이 건물도 보고, 위태롭게 흔들리는 줄에 매달린 신호등도 보며 한반도를 벗어나 새로운 대륙에 있음을 실감했다.
번호판에 복숭아가 그려진 우버를 타고 교외를 향해 달린결과 마침내 벅헤드 지구에 위치한 약 3만평 규모의 역사센터에 도착했다. 역사센터 내에는 남북전쟁 당시의 사료들을 비롯해 기관차, 애틀랜타의 역사 등이 각 구획별로 전시되어 있고, 센터 뒷편으로는 1920년대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스완 하우스(Swan House)가 자리잡고 있었다. 애틀랜타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배경이자, 남북전쟁의 격전지였던 만큼 남북전쟁 관련된 사료는 물론 해설도 너무나 잘되어있었고, 특히 남편은 센터 한 켠을 차지하고 있던 남북전쟁을 묘사한 사이클로라마(cyclorama)에 크게 매료되었다. 사실 꼬박 하루를 보내기에도 부족할 정도로 센터가 방대한 사료를 품고 있던터라, 남편은 가져온 DSLR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카운터에서 표를 끊어준 매우 친절한 아주머니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사진 촬영을 위해서는 별도의 허가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시무룩한 남편을 보며 아주머니는 별도의 허가가 대단한 것이 아니며, 신분증을 맡기면 바로 발급해줄 수 있다고 따뜻한 미소와 함께 우리를 안심시켰다. "사진촬영 허가" 목걸이를 받아들고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여기저기서 셔터를 누르는 남편을 보며, "덕후"라는 것은 때론 참 멋지기도 하다고 생각했다.
남북전쟁 사료관을 중심으로 효율적 관람(?)을 마친 뒤 우리는 센터 바깥으로 나가 헝거게임의 촬영지라는 스완하우스로 향했다. 벅헤드는 부촌이라고 하던데, 그럼에도 광대한 부지를 확보하고 있는 이 역사 센터는 정원도 잘 갖춰져 있었고, 녹음이 푸른 여름의 모습이 기대되었다. 꾸벅꾸벅 졸고 계시는 자원봉사자 할아버지의 환영인사를 받으며 스완하우스 내부를 돌아보았다. 1920년으로 돌아간 것 마냥 정말 보존이 잘되어 있었고, 특기할만한 것은 동양적 소품(병풍, 접시 등)이 꽤 많았다는 것이다. 현대에서 보아도 손색없는 아름다운 실내 인테리어를 보며, 클래식은 영원하다는 진리를 다시금 확인했다. 마지막으로 애틀랜타 근현대사를 돌아보았는데, 지표로 애틀랜타의 현재를 나타낸 것이 인상깊었다.
애틀랜타 거주민 13%가 다른 나라에서 출생
애틀랜타 교외에 거주하는 빈곤층이 2001년에서 2011년 사이 159% 증가
15세 미만 120만명 (2021년 기준 조지아주 인구 1080만)
신규 전입자 6만여명
하츠필드잭슨 국제공항 이용객 하루 약 11만명
성인 36%가 학사학위 이상 소지
인구의 10%가 65세 초과
2000년 이래 1인당 수도사용 30% 감소
애틀랜타 역사센터에게 안녕을 고한 뒤 우리는 다시 하츠필드잭슨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 지척에 델타박물관이 있으나, 일정상 패스했는데 혹시 여력이 된다면 애틀랜타를 경유할 경우 델타 박물관까지 돌아보면 더욱 알찬 여정이 될 것이라고 본다.
P.S. 기념품 덕후들은 애틀랜타 역사센터에서 다양한 기념품을 구매할 수 있다. 기념품 덕후 제 153575호인 나는 25불을 주고 Some things get better with age 티셔츠를 구매했다. 갈라파고스에서 줄기차게 입은 덕에, 아마 이 티셔츠는 갈라파고스 여행기 내내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 참고사항: ICN-ATL-UIO(키토)까지 우리의 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