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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우뚝 May 05. 2020

어떤 선택

고독과 외로움의 갈림길에서

     외로움은 혼자 있는 고통을, 고독은 혼자 있는 즐거움을 표현하기 위한 말이라고, 독일의 신학자 폴 틸리히는 말했다. 21세기 들어 유례없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으로 서로와 거리 두기를 하는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외로움일까 고독일까, 문득 궁금해진다. 북반구에 사는, 인류의 90%가 누리는 번영과 풍요도 동티모르를 비껴갔는데,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이 반갑지 않은 손님은 잊지 않고 동티모르의 문을 두드렸다. 2020년 5월 5일 오늘 기준으로 동티모르 내 코로나19의 확진자는 24명이다. 열악한 보건 역량을 가진 강원도보다 적은 인구의 태평양 도서국이 간과할 수 있는 평범한 상황은 결코 아니다. 독립 투쟁과 내전을 거쳐 수립된 동티모르 정부의 요직에 앉은 베테랑들은 다시금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일종의 계엄령과 같은 ‘국가비상사태’를 발동했다. 신종 바이러스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그간 국민이 누리던 집회, 종교, 결사의 자유는 한시적으로 억압되고, 이동은 최소화되며, 새로이 요구되는 사회질서의 유지를 위해 공권력의 개입이 정당화되었다.


    국가비상사태가 발동되기 전, 이미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했고, 우리 국민을 포함해 수많은 외국인이 동티모르를 빠져나갔다. 공항은 고요와 적막으로 북적였고, 거리는 더없이 한산해졌다. 머나먼 이국에서 의지하던 친구와 동료들이 한꺼번에 귀국하던 그 날부터 한동안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은 가시질 않았다. 앞으로 닥쳐올 위기가 더없이 커 보였고, 남겨진 우리의 위기 대응력이 의심되었으며, 고국과 가족, 친구들을 그리워하는 마음도 커져만 갔다. 평화롭고 즐겁던 일상을 막연한 탈출을 기대하며 억지로 이어 나간다는 건 고통이었다. 조부모를 일찍 여의고, 큰 집이 된 우리 집은 일 년 내내 손님이 많았다. 당시의 어린 나는 모두 떠나가고 휑한 집에 남겨진 느낌이 싫어, 손님들이 떠날 채비를 하면 인사도 없이 이불속에 숨어버리곤 했다. 남겨진다는 건 외로움이었다. 남겨지는 게 싫어 택한 것이 늘 떠나야만 하는 이 국제개발직이었는데, 또 남겨졌단 생각에 나는 다시 이불속 10살이 된 것만 같았다.


국가비상사태 선포 후 텅빈 딜리시내 해안도로

      불안한 건 나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가짜 뉴스는 괴담을 만들어냈고, 사람들은 동요했다. 코로나19 의심자를 격리하기로 한 지역에서는 마을 주민들이 모여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경찰이 최루탄을 발사해 진압한 통에 아수라장이 되었고, 코로나19 환자를 격리 치료한다는 보건소 앞에서 날마다 시위가 이어졌다. 님비라고 손가락질하기엔, 그 이기심 속에 내 가족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고, 또 그 속에는 올바른 정보의 불충분과 정부의 역량에 대한 불신이 있었다.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동티모르의 안녕과 발전을 위해서였다. 신종 바이러스의 침입에 위태로운 동티모르를 외면하고 떠난다는 것은, 그동안 내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가는 것이었으며, 나의 직업 정체성을 부정하는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라는 말처럼, 나는 동티모르의 진짜 친구로 남고 싶었다.


     남겨지기보다 남기를 선택한 순간,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묵묵히 남아 제 일을 하는 동료들과 일상을 꿋꿋이 살아가는 시민들이 보였고, 반복적으로 밀려왔다 쓸려가는 파도가 보였으며, 오르고 지는 태양이 보였다. 모두 코로나바이러스가 오기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떠나기 전이나 후나 한결같은 것들이었다. 하늘 아래 오직 하나뿐인 태양이 외로워 보이지 않듯이 결코 외롭지 않은 것들이었다. 내 곁에 누가 있는지 보다, 내가 누구의 곁에 있을 것인가 결정하는 순간, 내 인생의 서술이 수동태에서 능동태로 전환되던 그 시점부터 나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침체되어 있던 마음에 생기가 되살아나고, 존재라는 토양에 이유를 꽃 피우기 위한 행동을 개시했다. 내가 근무하는 기관 KOICA는 코로나19라는 신종 바이러스에 대응하기 위해 동티모르 정부에 보호 장비를 지원하기로 했으며, 30개 주요 공공장소에 세면대를 설치하고 있다. 재원이 부족한 탓에, 세면대는 환경 사업에서 수집·가공 중인 폐플라스틱을 활용해 설치하며, 이 세면대는 동티모르 주민의 위생을 증진할 뿐만 아니라, 폐플라스틱의 재활용을 홍보하는 효과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것이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보건 분야 외에도, 그 파편들은 경제발전, 식량안보, 교육 등 다방면에 걸쳐 피해를 야기했다. 휴교령으로 인해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으며, 급식의 제한은 결식아동 문제를 더욱 심화시켰다. 이에, WFP(유엔세계식량기구)와 함께 아이들을 대상으로 식량(Food Basket)을 공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아이들과 그 식구들이 최소한의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도록 딜리 내 학교 등록 학생을 중심으로 식량을 나눠줄 계획인데, 어떻게 하면 접촉을 최소화하며 식량을 배분할 수 있을지가 가장 큰 고민이다. 이 위기를 궁극적으로 타개하기 위해서는 현재 보유한 자원을 활용해 코로나19로 인한 위기 및 피해에 대응하는 한편, 새로운 재원을 확보해 복원력(resilience) 강한 시스템, 투명한 정보공개 체제, 그리고 시민의식의 향상을 도모해야 한다. 이를 위해 나를 비롯한 남겨진 동료들, 그리고 잠시 떠난 동료들 모두 노력하고 있다.


폐플라스틱을 활용해 KOICA, Mercy Corps, USAID, Heineken, Caltech이 딜리 주요시설에 설치한 세면대

     이스라엘의 저명한 역사학자인 유발 하라리는 지금 우리가 하는 선택이 코로나바이러스 출현 이후의 세계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류는 지금 전체주의적 감시체제와 시민 역량 강화, 민족주의적 고립과 글로벌 연대 사이의 갈림길에 서 있으며,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앞으로 마주할 세계가 달라질 것이라는 게 요지다. 이에 덧붙여, 개개인의 삶에서 우리는 외로움과 고독 사이 선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불신과 두려움을 바탕으로 한 외로운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나와 이웃을 지키기 위한 자발적 의지를 바탕으로 고독을 선택할 것인가.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된 이후 나는 세계시민의 의무 이행 차원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고 있다. 사무실에 꼭 출근해야 하는 날을 제외하고는 재택근무를 하며, 식자재 구매를 위한 쇼핑 외 불필요한 활동은 되도록 자제하고 있다. 사회적 교류 대신 집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요리를 하고, 그동안 미뤄온 해양 다큐멘터리를 시청한다. 불안감과 두려움의 자리를 나의 선택과 의지로 대체하자 더 이상 외롭지 않았고, 전에 느끼지 못한 ‘고독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였는지 묻고 싶다. 당신의 선택은 외로움인가 고독인가 질문을 던지며 이만 이 글을 끝맺는다.

코로나19 전이나 후나 한결같은 동티모르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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