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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지 Jul 16. 2020

신혼여행은 유럽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눈물 콸콸, 신혼여행지 결정기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는 어릴 때부터 파리에 꽂혀있었다. 뭣도 모르는 일곱 살 주제에 파리로 유학을 가고 싶다고 했었고, 20대가 되어서는 영화 ‘비포 선셋’이나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며 여행이라는 꿈으로 어릴 적 환상을 고이 간직해왔다. 유럽여행은 내 20대의 버킷리스트가 되었다.
그리고 20대를 한 달 남겨둔 2017년, 나는 H와 결혼했다. 대학을 무진장 늦게 졸업한 탓에, 해외여행이라곤 일본에 두 번 가본 게 전부였다. 그리하여 나의 세 번째 해외여행은 신혼여행이 될 예정이었다. 나는 H와 막연하게 결혼 얘기를 할 때도, ‘신혼여행만큼은 유럽으로 가고 싶다’며 목소리에 힘을 주어 또박또박 말하곤 했다.


그리고 내 꿈이 현실에 가까워질 날이 다가왔다. 결혼식이 3개월쯤 남은 어느 날, 우리는 신혼여행 계획을 세우기 위해 카페에서 캘린더를 펼쳤다. 당시 H는 직업 군인이었다. 그의 휴가를 계산해보니 신혼여행에 쓸 수 있는 휴가는 총 6일이었다. H가 캘린더를 한참 들여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현지야, 6일 안에 유럽을 다녀오는 게 과연 현명한 선택일까?”

H의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자, 서운한 내 입술이 먼저 본능적으로 삐죽 튀어나왔다. 잔뜩 나온 입은 좀처럼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설령 그게 현명하지 못한 선택이더라도 유럽에 꼭 가고 싶었다.

“한 도시에 쭉 머무르면 괜찮지 않나….”

“음….”
 잠깐 고민하던 H가 말을 이어갔다.
 “오고 가는 데 이틀을 쓰게 될 테고, 그럼 4일 머물자고 유럽까지 가는 건데 아쉽잖아. 차라리 1년 뒤에 내가 전역하면 2-3주 정도 편하게 다녀오는 건 어때? 지금은 결혼 준비 때문에 예산도 타이트하고…. 이 예산으로 유럽에 가면 좋은 숙소에서 편하게 즐기기 힘들 것 같은데.”
 딱히 반박할 말이 없음에도, 나는 차마 포기할 수가 없었다. 나에겐 H를 설득하기 위한 그럴싸한 말이 필요했다.
 “H, 여행이라는 낭만을 꼭 이성과 합리로 재단해야 할 필요는 없잖아. 어떤 곳에 정말 가고 싶다면 그 마음으로 충분한 거 아닌가?”
 일단 말을 잘 던진 것 같긴한데, 알 수 없는 그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심하게 요동했다. H의 주장은 유럽여행을 안 가겠다는 게 아니고, 1년만 기다렸다가 제대로 다녀오자고 하는 거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애가 타는 걸까. 왠지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이윽고 속마음은 목소리가 되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번에 안 가면, 평생 못 가게 될 것만 같아. 계획하지도 않은 아기가 덜컥 생겨버린다거나, 니가 전역을 안 하고 쭉 군인으로 복무하겠다고 마음을 바꿀 수도 있잖아. 사람일이라는 게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건데….”
 울 생각은 없었는데 갑자기 눈물도 났다. 어우, 창피해.


사실 20대의 내 인생은 뜻대로 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물론 평탄한 길을 선택하지 않은 내 탓이겠지만, 20대를 떠올리면 그냥 서러운 마음이 들었다. 꿈을 찾겠다며 만기 전역 남자 동기들만큼 휴학을 했지만 삽질을 반복했던 날들, 전공인 영화 연출을 잘해보고 싶어 고군분투했지만 끝내 영화가 내 마음을 받아주지 않아 짝사랑으로 마무리한 대학시절, 사회생활을 프리랜서로 시작해서 실수라도 하면 가차없이 일이 끊겨버렸던 날들. 나의 20대는 늘 불안하고 변덕스러운 일들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환상처럼 품어온 유럽여행도 그저 환상으로만 끝날 것 같았다. 한 치 앞도 제대로 내다본 적 없는 내게 1년 뒤란 짙은 안개처럼 느껴졌다. 이런 생각을 하니 더 서러워져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H는 당황한 채 내 눈물을 닦아주었다.
 “야아, 왜 그렇게 서럽게 울어. 우리 1년 뒤에는 무조건 유럽에 갈 건데! 혹시나, 진짜 호옥시나! 내가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기면 우리 둘이 쓸 여행경비 니가 다 써. 좋아하는 친구랑 둘이라도 다녀와. 근데 그럴 일은 없을 거야. 꼭 같이 갈 거니까. 흐흐흐.”
 확신에 찬 약속을 받고 나니 그제야 안개가 한 꺼풀 걷히는 것 같았다. 나는 결국 H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유럽 자유여행과 끝과 끝인 동남아 휴양지에 심지어 패키지여행이었지만, 분명한 약속 덕분인지 마음이 괜찮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이것이 현명한 선택이었음을 체감했다. 나는 내 업무를 대체할 인력 따위 없는 프리랜서였고, 신혼여행 전까지 일을 끝내느라 매일 새벽에 일과를 마쳤다. 그러다 보니 결혼 소식을 제대로 전하지 못해 주변 이들을 서운하게 만들었고, 전날까지도 사죄를 거듭하며 청첩장을 전달하러 다녔다. 그 와중에 식전 영상은 왜 직접 만들겠다고 설쳤는지, 나는 결국 결혼식 당일 새벽 4시가 되어서야 잠깐 눈을 부칠 수 있었다. (못 말린다 못 말려.) 피로가 정수리까지 가득 찬 몸으로 배낭을 짊어진 채 파리를 돌아다녔을 생각을 하니, 상상만으로도 급 피곤해지는 기분이다.
 

계획 하나 없이 추운 겨울에 여름옷만 챙겨 공항으로 가는 길은 세상에서 제일 가벼웠다. 그렇게 우리는 코사무이라는 섬으로 4박 6일의 신혼여행을 떠났다. 매일의 코스가 알아서 짜여 있었고, 쉬고 싶을 때는 일정을 취소하고 풀빌라에 머물면 되는 이 곳은 바로 천국이었다.
내가 고른 풀빌라는 한국인이 주로 선호하는 모던함보다는, 유럽 사람들이 좋아하는 로컬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곳이라고 했다. (그래서 여기로 골랐다. 이 정도면 심각한 유럽병에 걸렸다고 봐도 될듯하다.) 프라이빗하고 쾌적한 숙소에서 태국의 고요한 숲 속에 머무르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고, 방 안에서는 좋은 나무 향이 났다. 우리는 수영을 하거나 따뜻한 욕조에 몸을 녹이며 천국을 찐하게 만끽했다. 우리는 다음에 또 오고 싶다고 말하며 숙소를 검색해보았다. 그런데 하룻밤에 숙박비가 65만 원이라고 했다. 맙소사. 이 호사를 다시 누릴 수 있을까? 파리에 가고 싶다며 울던 나는 온데간데없다. 우리는 그저 호사에 흠뻑 취해 패키지에 포함되지도 않은 아로마 마사지까지 추가로 받았다. 태국에서 태국 마사지를 받는데도, 풀빌라 안이라 그런지 한국보다 값이 비쌌다. 그럼에도 마사지 베드와 혼연일체가 되는 황홀한 경험을 하고 나니, 우리는 돈을 다 써버리고 싶은 충동까지 느꼈다.

신혼여행의 황홀했던 아로마 마사지를 떠올리며, 서울에서도 기념일이 되면 여러 샵을 가보았지만 그 섬세한 손맛을 재회하기란 쉽지 않았다. 지금도 어깨가 뻐근한 날이면, H와 나는 이따금 신혼여행을 떠올리곤 한다.
 “우리 신혼여행 때 받은 마사지가 최고였는데. 그치?”

유럽으로 신혼여행을 가겠다던 다짐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동남아로 떠난 나의 신혼여행은 행복한 기억이 되어 지금도 우리 삶에 낭만이 되어주곤 한다.

아아, 그립다. 천국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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