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현지 Aug 20. 2020

결혼 1년차, 유기견을 임시보호하다

못난이 똥개 두 마리와의 3개월

가끔 너무 사랑스러운 나머지 ‘못난이’라는 말이 나오는 존재들이 있다. 인형처럼 예쁘진 않아도 자꾸 눈길이 가는 그런 사랑스러운 존재들. 어느 날 인스타그램에서 “어우 못난이들 어떡해애!”란 말이 절로 나오는 사진을 보게 되었다. 흰검, 흰밤 점박이 새끼 강아지 7마리가 옹기종기 붙어 있는 사진이었다. 아이들의 사연은 이러했다. 개발 지역 황무지에 강아지들을 알박기 하고 이를 빌미로 보상을 받기 위해 버티는 사람들 때문에, 죄 없는 강아지들이 그곳에 방치됐다는 것이다. 폭염 속에서 굶다가 죽음을 맞이한 아이들과, 옆에서 피부가 짓무른 채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있던 강아지 200여 마리. 거기에 못난이들도 있었다. 입양자가 나타날 때까지 임시보호처가 필요한 강아지들을 보고 도저히 지나칠 수가 없었다. 나는 H에게 사연글을 공유했고, 우리는 3개월 간 두 마리의 강아지를 임시 보호하기로 했다.




흰검 점박이 한 마리, 흰밤 점박이 한 마리. 우리는 아이들의 이름을 바둑이와 땅콩이라고 붙여 주었다. 우리 집에 도착한 강아지들은 켄넬 주변을 잠시 킁킁거리다가 들어가 포개어져 잠을 잤다. 새끼 강아지는 잠이 많다. 우리는 강아지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켄넬 주변으로 널찍한 울타리를 설치하고 포근한 담요를 깔아주었다. 그때까진 모든 게 순조로울 줄 알았지….


첫날밤, 우리 집이 낯설었던 바둑이와 땅콩이는 1시간에 한 번씩 아기처럼 깨어 우는 소리를 냈다. 겨우 달랜 후 방으로 들어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낑낑거리는 거다. 나중엔 우리가 반응을 하지 않자 늑대처럼 ‘아우우우’하는 소리를 냈다. 나와 H 둘 다 결혼 전까지 강아지와 살았지만 이런 적은 난생처음이었다. (보통은 아기들이 모유 수유할 때나 이렇게 깬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웬 강아지들이….) 결국 새벽 4시까지 울음은 잦아들지 않아, 바둑 땅콩이와 눈을 맞출 수 있는 거실에 이부자리를 펴자 상황이 일단락됐다.

아기 강아지 두 마리의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바둑이와 땅콩이는 하루 종일 잡기 놀이를 하며 온 집안의 패브릭에 털을 묻히는가 하면, 눈에 띄지 않는 커튼 뒤나 배변패드 바로 옆에만 오줌을 쌌다. 이를 쫓아다니며 수습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어느 날은 대참사가 벌어졌다. 우리가 잠깐 외출한 사이에 이놈 새끼들이 모서리 벽지를 뜯은 것이다. 하필 이삿짐도 다 안 들어온 새 집, 새 벽지였다. H는 뜯긴 벽지를 보고 할 말을 잃었고, 나는 폭발해서 소리를 꽥 지르고 말았다. 혼쭐난 애기들은 슬슬 내 눈치를 살피더니 조용히 구석에 엎드렸다. (강아지들은 눈치가 빠르다.) 나는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 씻으면서 임시보호를 괜히 했다 싶어 기분이 꿀꿀했다. 그런데 내가 씻고 나오자 바둑이와 땅콩이가 마치 1년 만에 주인을 만난 것처럼 반가운 소리를 내며 쪼르르 달려오는 거다. 그리고는 내 얼굴을 쉴 새 없이 핥아주었고, 나는 폭풍 애교에 속수무책으로 녹아버리고 말았다. H도 뽀뽀세례를 퍼붓는 땅콩이와 바둑이를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얘네는 내가 언제 화를 내긴 했냐는  폭풍 같은 사랑을 퍼부어줬다.  안에선 우리 뒤를 졸졸 쫓아다녔고, 우리가 외출하면  앞에서 주인이 돌아올 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배를 쓰다듬어 달라며 발라당 눕거나 손을 았다. 그런 바둑이와 땅콩이를 보고 있으면 여러 감정이 들었다.

우리의 세계에는 너무 많은 게 들어있는데, 바둑이와 땅콩이의 세계 안에는 나와 H밖에 없는 거다. 뒤만 돌아보면 바로 눈을 맞출 수 있을 만큼 우리만 바라보는 강아지들을 보며 우리도 차츰 달라져 갔다. 평소 우리 부부는 저녁에 카페에 가는 걸 좋아했지만, 바둑이와 땅콩이가 온 후로 집에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바둑이와 땅콩이는 복잡 미묘한 인간관계에 지친 우리를 가공되지 않은 표현들로 위로해주는 엄청난 힘을 갖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도 강아지들에게 길들여졌다.




누군가와 함께 산 3개월은 참 길고도 짧았다. 우리에게 모든 걸 의지하던 못난이들이 입양 확정을 받고 집을 떠나던 날, 우리는 ‘속 시원하다!’고 말하면서 서로 눈이 마주치자 펑펑 울고 말았다. 마음 한 구석이 텅 빈 것처럼 허전했다. 처음에는 우리가 주는 사랑이 더 많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받는 사랑이 더 컸던 것 같다.

다행히 이노무 못난이들은 우리보다 훨씬 좋은 주인을 만났다. 바둑이는 미국에 가서 귀공녀 대우를 받으며 럭셔리하게 요트 타는 삶을 누리는 중이고, 땅콩이는 인형을 아무리 아작내도 새로 사주는 너그러운 주인과 함께 행복한 삶을 즐기는 중이다.


가끔 주변 사람들이 같이 사는 강아지나 고양이에 대해 얘기를 할 때가 있다. 사랑스러운 눈을 하고는 못 말린다고 말한다. 그럴 때면 우리에게 많은 감정을 남기고 간 바둑이와 땅콩이가 보고 싶어진다. 사고뭉치, 못나게 삐죽거리는 털, 아침마다 나를 반겨주는 옹알대는 소리와 폭풍 뽀뽀.
나는 오래도록 이 행복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과감히 침범하겠어! 그게 털일지라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