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로 얼룩진 크리스마스
한 달 전에 예약한 크리스마스 케이크, 왓챠에서 알고리즘으로 끌어올려준 라라랜드. 더할 나위 없이 평범해서 좋은 것들을 두고 크리스마스이브의 이브 밤은 분노로 얼룩졌다. 또 이념 신념 뭐 그런 것들이었다. 이 기세를 몰아 이브, 크리스마스까지 우리는 대화하지 않는다. 하루가, 이틀이 지난다.
나도 참. 멍청한 건지 속이 없는 건지 시간이 지나는 동안 분노가 빠른 속도로 식는다. 하루 반나절쯤 지나면 이제는 오가다 눈이 마주치면 웃어버릴까 봐 미간에 힘까지 줘야 한다. 꼭 이럴 때 별게 다 웃기다.
지금 너도 나랑 같을까. 아 아닌 것 같애. 표정이 평소 같지 않아.
그렇게 하루가 더 지나면,
이제 나한테 질렸을까? 별로 사랑하지 않는 것 같군. 참나 나도 마찬가지라고.
못난 불안의 기운이 확신의 뿌리를 쉽게도 뒤흔든다. 벌써 10년을 만났지만. 아직도, 여전히. 이건 나란 인간의 문제겠지.
- 어디야
- 할리스
- 밥은
- 사 먹었어
이제는 짧은 카톡 안에 맴도는 공기를 감지할 수 있다. 건조한 듯해도 은근 차지 않고 미지근한 온도. 땅 위로 쑥 빠져나와 있던 뿌리 위로 다시 흙 한 줌이 덮인다.
잠시 후 띠띠띠띠- 도어록 소리에
이거 뭐 눈길이라도 한번 줘 말아, 아 그냥 내 할 일 하는 척하자.
모니터에 얼굴을 처박고 있으면, 저녁 어떡할래?
우리는 눈이 마주치자마자 괜히 시니컬한 척하는 웃음을 터트리고.
싸운 동안 이 책 다 읽었다, 덕분에 시간 알차게 썼네.
참나 어이없네. 우리 청약됐다.
뭐야, 언제 발표 났냐.
이틀 전에.
말하고 싶어서 어떻게 참았냐.
몰라, 이제 우리 진짜 돈 모아야 돼.
이거 좋은 일인 거지? 하 씨 그래서 일단, 밥은 뭐 먹을래?
딴딴한 척해봐야 사실 한껏 누그러졌다는 거, 서로가 제일 잘 안다.
곧 퍼져 누워서 이틀간 느껴보지 못했던 인간의 온기를 느끼려 꾸물꾸물 다가가자,
“확신을 느끼고 싶어”라는 너의 말에 나는, 이 못난 인간 나랑 똑같구만, 하며 괜히 안도하고…
땅 위로 드러나 있던 뿌리가 그제야 흙 아래로 쑥 내려가서는 목덜미에 입술이 닿을 정도로 딱 붙어 온기를 느껴본다.
이 불완전한 인간들. 아직도 확신과 사랑에 목마른 인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