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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지 Jul 09. 2020

유부와 안정감의 상관관계

안정감의 뿌리를 찾아서

결혼 전에 이런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다.

‘기혼자들은 책임져야 할 게 많아서 삶이 힘들 텐데, 왜 오히려 안정되어 보이는 걸까?’
결혼생활이 2년 반쯤 된 지금, 이 질문을 좀 바꾸어 스스로에게 던져봤다.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안정감을 느끼고 있을까?’



[너의 온기]

결혼 후 언젠가부터는 살갗을 맞대어야 기분 좋게 잠들 수 있었다. 굳이 꼭 껴안지 않더라도, 어디 한 구석이 살짝 닿아있을 때 느껴지는 온기가 좋았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호되게 시달린 날엔 특히 더 그랬다. 살갗으로 전해지는 에너지가 ‘다 잊고 푹 자. 내일은 괜찮을 거야.’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 느낌에 길들여지고 나니, 팔이든 손이든 하물며 발끝이라도 살짝 닿아야 마음이 편안해졌다.
 
 가끔은 내 맘 같지 않은 날도 있었다. 자기 전에 누워서 대화를 하다가 H와 나의 의견이 달라 티격태격했을 때다. 다투고 나면 추운 겨울에도 한여름처럼 멀찍이 거리를 띄우고 등져 눕는다. 머리로 이해한 서로의 다름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잠깐의 여유가 필요하다. 그럴 때 우리 사이엔 정적이 흐르고, H는 보통 잠을 청한다.
 반면 나는 의견차 따위는 내일 생각하고, 일단 냉랭한 분위기를 풀고 싶다. 그래야 잠을 제대로 잘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괜히 말을 걸거나, H의 발에 소심하게 내 발가락을 갖다 대어 본다. 하지만 H는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져.'라며, 다시 거리를 두는 편이다. (치. 못 이기는 척 좀 넘어가 주지.) 그래도 나름 괜찮은 해결방법이 있다. 머지않아 H가 깊은 잠에 든 숨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나는 슬금슬금 거리를 좁혀 발가락을 슬쩍 다시 갖다 대면 된다. 어차피 H는 자느라 알 리가 없다. 만약 아침에 일어났을 때 내가 발가락을 붙이고 있다가 들켰다면, 잠결에 닿은 척 자연스레 떼면 그만이니까.


내가 어쩌다가 고작 발가락에 이렇게 연연하는 사람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사소한 순간들을 통해 느껴지는 안정감이 좋았다. 특히 우리가 다툰 날 발가락을 가만히 대고 있으면, 밉고 싫더라도 서로가 옆 자리를 지켜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오히려 더 안정적으로 느껴졌다. (나 변탠가.) 이제 부쩍 더워진 여름이지만, 나는 오늘도 H에게 꿋꿋이 발을 붙이고 잠들 예정이다.



[함께, 밥]
 요즘은 건강한 식사를 하는 사람이 부쩍 눈에 많이 띈다. 그중에서도 신선한 야채로 만든 요리를 해 먹는 20대를 볼 때면 괜히 겸연쩍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20대 내내 식사의 개념을 오로지 ‘먹고 싶은 것을 먹는다’로만 정의하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기숙사 생활까지 총 9년간 자취를 하면서, 그 긴 시간 동안 스스로의 내/외적 건강에 대해 관심을 가져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늘 불규칙한 식사를 했고, 먹고 싶은 메뉴는 사 먹는 것이 당연했다. 햄버거나 피자같이 간편한 메뉴를 시킨 날이면, 접이식 테이블조차 펴기 귀찮아 바닥에서 대충 먹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씻고 외출 준비를 하는 시간 외에는 일상의 어떤 곳에서도 차분히 준비를 한다거나 루틴처럼 반복하는 것이 없었던 것 같다. 내겐 ‘음식을 잘 차려서 잘 먹는다’ 혹은 ‘식사를 즐긴다’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거다.
 
 이런 내게 결혼은 식사에 대한 가치를 재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확인하고, 함께 장을 보고, 오늘의 식사를 준비하는 것 자체가 내겐 새로운 루틴이었다. 처음엔 이런 과정이 소모하는 시간이라고 여겨지기도 했다. ‘대충 하면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할 수 있을 텐데’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머지않아 정해진 시간에 반복된 행위를 함께 한다는 것이 우리 사이의 큰 기둥을 세우는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식탁에는 밥만 있는 게 아니라, 대화도 존재했다. 우리는 밥을 먹으며 이번 주말엔 뭘 할지 계획을 세우거나, 하루를 힘들게 했던 것에 대해 토로했다. 때론 집안의 대소사를 공유했고, 우리가 좋아하는 ‘삼시 세 끼’나 ‘놀면 뭐하니’를 보며 같이 웃기도 했다. (드립도 한 두 마디 곁들이며 즐거워했다.) H와 저녁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눈 후 마지막 설거지까지 끝내고 나면, 밖에서 마무리하지 못한 감정의 잔여물을 다 털어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내게 묘한 안정감을 가져다주었다.
 
 나와 H만 해도 결혼 후 하루에 한 끼씩 같이 먹었다고 가정하면, 벌써 950끼를 함께 먹은 셈이다. 아마 앞으로는 숫자로 세기가 까마득할 정도로 많은 끼니를 나누게 되겠지. 셀 수 없이 함께 먹을 끼니만큼 우리의 사이도 더욱 깊고 견고해졌으면 좋겠다.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알고 보면 되게 별 거다. 사소한 것들이 하나씩 모여 우리 사이의 안정감을 지탱해주고 있었으니까. 

내일은 우리가 함께 잠을 자고 밥을 먹는 일상에 좀 더 애정 어린 시선을 두어야겠다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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