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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먼 Dec 28. 2020

나는 PM일까, PM일까?

좋은 프로덕트 매니저가 되기 위한 원칙들

* 이 글은 2019년 11월 5일 서울에서 열린 Product Tank 행사에서 마티 케이건이 강연한 "Product Is Hard"라는 키노트의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프로젝트 매니저가 아니라 프로덕트 매니저(제품 관리자)로 일하세요


서비스 기획자로 일하면서 가끔 듣는 말이다. 기획자로서의 애매모호한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던 나는 제품 관리자라는 멋진 이름에 쉽게 매료되었다. 제품 관리자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 책이 마티 케이건이 쓴 <인스파이어드>였다. (원서 제목은 <Inspired: How to Create Tech Products Customers Love>) 제품의 핵심 가치를 발굴해 내고, 제품팀과 함께 이를 구현하여 목표를 달성하는 일. 프로젝트의 계획을 세우고 일정을 관리하는 프로젝트 매니저와는 일하는 방식이 달라 보였다. 적어도 책을 읽을 땐 그랬다.


현업에서 일하다 보면 문득 "내가 프로젝트 매니저와 무엇이 다른가?" 스스로 묻게 된다. 쏟아지는 과제들을 쳐내다 보면 무엇이 좋은 해결책인지 고민하기보다 일정 내에 주어진 일을 끝내는 데만 집착하기 쉽다. 물론 제한된 시간 안에 목표한 성과를 내는 것은 중요하다. (제품 관리자가 프로젝트 매니저보다 더 높게 평가되는 커리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요구되는 전문성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보다 큰 가치 창출을 위해서는 왜 이 일을 하는지,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는지 충분히 고민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알면서도 막상 나의 업무에 적용하려 하면 뜻대로 잘 되지 않는다. 2~3년 차 꼬꼬마가 제품 관리자로 제 역할을 하는 게 무리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제품 관리는 원래 어렵다


좋은 테크 프로덕트에 대해서 고민하는 로컬 모임 <Product Tank Seoul>에서 마티 케이건을 초빙하여 강연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프로덕트 구루에게 어떤 비법을 전수받을 수 있을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달려갔다. (이하 회색 텍스트는 마티 케이건의 말이다.)


미리 경고드립니다만 - 이 발표는 초심자를 위한 내용이 아닙니다. 이제 막 제품 관리자가 된 분들이라면 겁먹게 될지도 몰라요. 오늘은 제품 관리자로 일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지 이야기할 거예요. 프로덕트 매니저가 흔히 겪는 좌절과 고통에 대해서 말이지요.


도망갈까? 잠깐 고민했지만 그의 말에 되려 안심이 되었다. 누구에게나 제품 관리자로 일하는 건 어렵구나.


당신은 피쳐 팀(Feature Team)에서 일하고 있나요, 아니면 프로덕트 팀(Product Team)에서 일하고 있나요? 만일 당신이 프로덕트 팀이 아닌 피쳐 팀에서 일하고 있다면, 미안하지만 당신은 제품 관리자가 아니라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거예요.


마티 케이건은 제품 관리자의 두 가지 역할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나는 문제에 대한 좋은 해결책을 발견하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완성도 높은 제품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좋은 제품을 찾아내는 일(Making a Right Product)과 제품을 잘 만드는 일(Making a Product Right), 두 가지를 동시에 해내야 하기 때문에 제품 관리자의 일은 늘 어렵다. 좋은 제품 관리자 혹은 제품팀이 일하는 법을 이야기하기 위해 마티 케이건은 피쳐 팀과 프로덕트 팀의 대차대조표를 보여주었다. (책에서는 전자를 용병팀, 후자를 미션팀으로 정의하여 둘의 차이를 비교한다.)


기능팀(Feature Team) vs 제품팀(Product Team)


1. 아이디어에 대한 검증 vs 새로운 솔루션의 발견

피쳐 팀은 아이디어의 유효성을 따지는 데 집중한다. 이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능한가? 실현 가능성을 검토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구현 방식에 너무 초점을 두고 일하면 더 큰 기회를 놓치기 쉽다. 프로덕트 팀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이 무엇인지 검토한다. 실제품 생산에 들어가기 앞서 수많은 프로토타이핑과 실패의 과정을 거친다. 구현의 어려움을 극복할 방법을 찾는 건 그다음 스텝이다.


2. 만드는 제품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가?

피쳐 팀은 클라이언트 또는 상위 부서로부터 요청받은 기능을 구현해낸다. 전달받은 요구사항을 구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품의 성과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 프로덕트 팀은 필요한 기능과 개발 우선순위를 직접 결정한다. 제품 관리자는 문제를 정의하고 이에 적합한 해결책이 무엇인지 결정할 충분한 권한을 부여받는다. 따라서 프로덕트 팀은 스스로 제품의 성과를 평가하고 이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일한다. 물론 이는 결과에 대한 보상과는 별개의 문제다.


3.  계획 수립(Planning) vs 프로토타이핑

피쳐 팀의 프로젝트 매니저는 과제 목록과 진행 일정을 수립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계획 수립은 효과적인 업무 수행에 도움이 된다. 문제는 플래닝에 많은 시간을 쓸수록 프로토타이핑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모든 걸 다 만들어보고 좋은 솔루션인지 판단하는 건 너무 큰 자원 낭비다. 따라서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선 최대한 많은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보아야 한다. 훌륭한 프로덕트 팀은 일주일에 10~15회의 이터레이션(Iteration)을 돌리기도 한다.


4. 여러 대안에 대해 고민하는가?

우리는 종종 원하는 결과를 유일무이한 해결책으로 정의하고 이를 증명하려 애쓸 때가 있다. 정말 좋은 솔루션을 찾으려면 복수의 아이디어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따라서 제품 관리자는 늘 여러 개의 대안을 생각하고 이를 비교하고 분석해야 한다. (복수의 아이디어를 검토하는 Opportunity Solution Tree 라는 방법도 있다.)


5. 제품의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 검토하는가?

IT 업계에서 일하다 보면 놓치기 쉬운 부분이다. 제품 관리자는 자신이 만드는 서비스에 윤리적인 위험 요소가 없는지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 예컨대 페이스북은 최근 당면한 정치적, 사회적 논란을 사전에 예견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두었어야 한다. 방향성을 잃지 않기 위해 OKR, 즉 목표(Objective)와 핵심 결과(Key Results)를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6. 가치의 최적화 vs 새로운 가치 창출

피쳐 팀은 제품의 가치를 최적화하는 방식으로 성장하려 한다. 최적화를 통한 경쟁 우위 확보는 필수적인 작업이다. 문제는 이러한 방법으로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보통의 기업은 동일 기능에 대해서 성능적 우위를 선점하는 방식(Feature Parity Strategy)으로 경쟁하려 한다. 그러나 경쟁사를 뛰어넘어 고객의 사랑을 받으려면 적어도 10배 이상 더 나은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10배!!!


7. 양적 조사 방법론 vs 질적 조사 방법론

고객의 데이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준다. 다만 그 데이터는 현재 고객에 대한 정보만을 알려준다. 잠재 고객과 새로운 기회의 발견을 위해서는 질적 조사 방법론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데이터는 "무엇"이 중요한지 알려줄 순 있지만 "왜" 그것이 중요한지 알기 위해서는 직접 고객들과 만나야 한다.


제품 관리자로서의 전문성


당연한 이야기들 같지만 현업에서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마티 케이건은 제품 관리자에 대한 트레이닝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제품 관리는 어려운 일인데 많은 기업들이 전문 역량의 필요성을 간과한다는 것이다. 그는 제품 관리자가 갖춰야 할 핵심 기술을 네 가지로 정의한다.


1. 고객과 사용자에 대한 이해

제품팀의 디자이너와 개발자는 제품 관리자를 고객에 대한 전문가로 생각하고 일한다. 따라서 제품의 사용자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아마존, 구글 같은 기업의 제품 관리자들은 적어도 일주일에 세 시간 이상은 고객 인터뷰에 시간을 할애한다. 제품 프로토타이핑 단계에서는 훨씬 더 자주 사용자를 만난다.


2. 데이터에 대한 분석 능력

제품과 관련된 사용자 데이터와 세일즈 데이터를 늘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데이터에 대한 추출과 분석은 회사 내의 데이터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해당 제품의 데이터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제품 관리자여야 한다. 더 나은 프로덕트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가설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3. 비즈니스에 대한 지식

담당하고 있는 제품과 연관된 비즈니스 지식을 포괄적으로 알고 있어야 한다. 제품의 비즈니스 모델, 영업 및 마케팅 방식, 시장 환경과 동향 등 알아야 할 정보가 많다. 법적 이슈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좋은 서비스지만 관련된 법적 리스크를 충분히 검토하지 못해 시장에서 퇴출되는 경우도 많다.


4. 산업과 기술에 대한 관심

IT 업계의 트렌드는 빠르게 변한다. 새로운 기술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제품 개발에 이를 접목시킬 수 있다.


마티 케이건은 어떤 배경을 가진 사람이든 제품 관리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좋은 제품 관리자가 되려면 전문적인 트레이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제품 관리자를 위한 전문 훈련 과정을 어디서도 찾기 어렵다는 데 있다.


팀에 넷플릭스나 구글에서 일하던 제품 관리자가 동료로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그렇지 않다면 스스로 배우는 수밖에 없지요.


좋은 프로덕트 팀이 일하는 일곱 가지 방식과 제품 관리자의 네 가지 핵심 역량을 체크리스트 삼아 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 사실 누구나 머리로는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바쁘게 일하다 보면 무엇이 중요한지 잊어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얼마 전 팀장님과의 면담에서 여쭤보았다.


기획자로서 저에게 무엇을 기대하시나요?


팀장님의 답변은 간단명료했다. 좋은 기획자의 역할은 자신이 맡은 제품의 핵심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서비스로 구현해내는 일이다. 그런 다음 한 마디 덧붙이셨다. 너무 초조해하지 말아요. 제품 관리자는 원래 어려운 직업이니까, 처음부터 잘할 수 없겠지. 잘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찾아보라는 마티 케이건의 조언이 꼬꼬마 기획자에게는 큰 힘이 됐다.


나는 걸작이나 높은 기준을 달성하는 일만 노리다가 뜻대로 잘 되지 않아 결국 과제를 완성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홈런 아니면 아웃이라며 9회 말까지 방망이 한 번 휘두르지 않고 와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실무를 하며 움직일 수 없는 곳에서도 한 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홈런을 치고 싶다는 마음은 여전하지만, 눈앞에 다가오는 번트를 쳤다. 그러자 점차 홈런을 칠 수 있는 실력이 생긴 것 같다. - 요리후지 분페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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