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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먼 Jan 01. 2023

명상적 체험으로서의 영화

미지의 세계와 감화하고 소통하는 <메모리아>의 현상학

* 영화 <메모리아>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불현듯 찾아오는 감정이 있다. 이유 없는 짜증과 분노, 바닥이 보이지 않는 우울.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영화 <메모리아>의 첫 장면은 누구나 겪어보았을 불청객의 방문을 떠올리게 한다. 어두운 밤 자고 있던 제시카는 정체 모를 소리를 쿵, 하고 듣는다. 제시카는 소리의 모습을 "주변이 바닷물로 가득 찬 금속 우물 안에 거대한 공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고 구체적으로 묘사하기는 하지만 소리가 발생한 원인은 알지 못한다. 둔탁한 소리는 계속 제시카를 쫓아오는 듯하고, 그녀는 소리를 관찰하고 재현하고 마침내 그 기원을 추적해 나간다. 소리를 감각 혹은 감정으로 치환해 보면 <메모리아>의 여정은 명상의 체험과 닮아있다.


우선 제시카는 음향 기사 에르난을 만나 소리를 재현하는 과정을 거친다. 제시카가 소리를 자세하게 묘사하면 에르난이 자신의 음향 파일 중 비슷한 것을 찾는다. "나무 배트에 맞아 이불 위로 쓰러지는 소리"가 가장 비슷하기는 하지만 이보다 흙과 같은(Earthy) 느낌이라고 말한다. 고음부를 잘라내고 베이스를 키워 마침내 흡사한 소리를 찾아낸다. 그런데 이렇게 재현한 소리는 무슨 의미를 갖는가? 처음 소리를 들었을 때와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가? 명상과 비교하면 에르난의 사운드 편집 과정은 어떤 감정을 발견했을 때 감정의 원인에 대해 분석하기 전에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관찰하는 과정과 흡사하다. 제삼자의 시선에서 관찰하고 재해석한 소리는 물리적으로 동일한 음파일 수 있지만 존재론적인 의미는 달라질 수 있다. 감정 또한 그렇다. 내가 어제 느낀 우울함의 의미는 오늘 다시 바라볼 때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재현된 소리는 같은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사진 출처 : NPR)


서사적으로 처음엔 쿵, 소리가 남편을 잃은 제시카의 슬픔이라고 쉽게 추론할 수 있다. 그러나 재현과 해석의 과정을 통해 소리의 의미는 복잡해진다. 에르난은 본인이 만든 멜로디와 재현한 쿵, 소리를 믹싱하여 제시카에게 들려준다. 정체불명의 굉음은 매력적인 음악이 되었고 제시카와 에르난의 감정선 또한 복잡 미묘해진다. 그런데 갑자기 에르난이 사라져 버린다. 아니, 그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소리의 정체를 이제 무엇이라고 해석해야 할까. 망연자실하게 밴드 연습실을 지나치던 제시카는 어느 밴드의 연주를 듣는다. 관객은 에르난의 믹싱 파일을 듣지 못했기에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녀의 표정으로 짐작해볼 때 밴드의 연주에서 에르난이 만든 멜로디를 발견한 듯하다. 이 감정을 불러일으킨 원인이 무엇인지, 어디로 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함께했던 체험이 아직 여기에 남아 있으니.


젊은 음향기사 에르난과의 로맨틱한 만남은 끝이 났지만 소리는 계속 들려오고 소리의 원인을 찾기 위한 여정은 다시 시작된다. 소리는 점점 그녀의 내면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침습되어 온 것처럼 느껴진다. 그녀의 동생이 차에 치인 개 혹은 원주민 부족의 마법 때문에 아팠다는 속설처럼 다양한 가정을 하게 된다. 의사의 말처럼 그녀는 병에 걸린 것일까?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공포와 미혹은 영화에서 테마처럼 반복된다. 이는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영화에서 도시와 정글을 대비하며 반복된 주제이기도 하다. 대학교나 병원으로 묘사되는 도시의 풍경들은 정글의 알 수 없는 병원체 혹은 주술로부터 스스로 격리시키려고만 하는 것 같다. 제시카는 감염의 위협들을 두려워 하는 듯하다가도 다시 이끌린다. 6천년 전 죽은 소녀의 유골과 그녀에게 행해졌다는 주술에 관심을 보이더니 보고타에서 메데인의 깊은 정글로 들어가게 된다.


반복되는 침습의 이미지 (사진 출처 : NPR)


영화에서 나무의 흡습성을 언급하며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정글로 들어갈수록 자연이 품은 이 땅의 역사 혹은 이야기가 스며나온다. 지역의 역사성이 현재와 조우하는 방식은 전작인 <찬란함의 무덤>의 핵심 주제와 일맥상통하기도 하는데 <메모리아>의 방식이 더 마법처럼 느껴진다. 제시카는 정글에서 전에 만났던 음향기사와 같은 이름을 가진 에르난이라는 남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자신이 일종의 기억장치라고 말한다. 이들은 꿈을 꾸지 않으며 제한된 경험을 품은 채로 살아간다. 제시카는 마침내 본인이 경험한 쿵, 소리와 일련의 감각들이 본인의 것이 아닌 이 나라, 이 땅, 혹은 에르난이라는 이 남자의 것임을 알게 되고 모든 이야기를 온전하게 공감하는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된다. 콜롬비아의 대지에서 뿜어져나온 과거의 이야기들이 쏟아지는 비와 함께 제시카의 육체로 다시 스며드는 것만 같다.


<메모리아>는 제시카의 내면의 감정과 외부의 체험이 삼투압 현상을 일으키는 과정을 관찰하는 비디오 아트같다. 개인의 감정이 환상이 되거나 현실을 바꿔놓는 것일까, 사회와 역사의 진동이 내면을 움직이는 것일까. 영화는 정답을 알려주지는 않지만 긴 명상을 끝낸 것처럼 마음을 가라앉힌다. 알 수 없는 감정이 갑자기 찾아오더라도 파동의 진원(震源)이 알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일 수 있으며 해석하기에 따라 의미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두려움이 사라진다. 미지의 세계에서 온 것이라고 무작정 밀어내기보다 차라리 감화되어 온전히 소통하는 것이 더 아름답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마법과도 같은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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