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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숲 Mar 17. 2023

바다의 맛_복국

어른이 되어서야 먹게 되는 음식이 있다. 어린 시절에는 먹더라도 참맛을 제대로 알기 어려운 음식들. 누군가에겐 청국장이 그럴 테고, 나물이나 쑥떡 같은 음식도 그런 종류일 텐데, 나에겐 복국이 그렇다. 어린 시절엔 먹어 본 기억도 없는 걸 보면 어린 아이와 함께 먹을 음식은 아니라는 어른들의 판단이 있었겠지. 아무 기억도 안 남길 정도로 맛이 없었거나. 아무튼 먹었더라도 그 참맛은 절대 알지 못했을 거라 생각되는 맛이 복국의 맛이다.      


모든 음식이 처음 먹은 날이 있겠으나 그 첫 만남이 기억나는 음식은 별로 없는 법인데, 복국을 처음 먹은 날은 기억이 난다. 함께 간 남동생도 대학생이었던 걸로 기억되니 나는 대학 졸업 학년 즈음 되어서였을까. 아빠와 셋이서 함께 간 식사 자리가 해운대의 어느 오래된 복국집이었다. 아마도 성인이 된 자식들의 진로 이야기였거나 집안 사정에 대한 의논이었거나 뭐 그런 조금은 어른스러운 이야기가 오가는 식사자리였던 것 같다. 달고 짜고 고소한 유년의 음식이 아니라 밋밋하고 슴슴하고 깊은 국물 맛이 있는 어른스러운 음식을 앞에 두고 나누는 어른스러운 대화. 사실 그날의 대화 주제는 기억에 남아있지 않고 그날의 복국집 풍경과 복국과의 첫만남만이 기억나는 걸 보면 처음 만난 어른의 음식은 꽤 인상이 진했던 것 같다.

검은 껍질이 붙은 허연 생선살에 콩나물과 미나리가 들어 있는 맑은 국물. 고춧가루 한 점 없이 맑기만 한 생선국물이라. 낯설었다. 아빠는 시원하다는데 이런 게 시원한 건가 생각하며 밋밋하게 느껴지는 국물 맛을 느껴보려 애썼던 것도 같고. 충격은 국물에 한 바퀴 둘러 먹던 식초였다. 뜨거운 국물에 식초를 넣는다고? 상상치 못한 조합을 바라보며 참 쉽지 않은 음식이구나 하고 느꼈던 저녁이었다.

     

그렇게 강한 인상으로 만났던 복국과 친해진 것은 온전한 어른이 되고 나서였다.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서 점심 저녁 메뉴로 심심찮게 접하게 되었으니, 역시 어른의 세계에 밀접하게 속해있는 음식이었다. 전날 술이라도 한잔 한 다음 날에는 쓰린 속을 풀어주는 음식으로 이만한 게 없었다. 미나리와 콩나물이 들어있어 시원했고 식초 한 바퀴 둘러 먹으면 국물 맛을 더 제대로 음미할 수 있었다. 곁들이 반찬으로 나오는 복어껍질 무침이나 수육 한 조각은 복어의 세계를 넓혀주고 더욱 친숙하게 만들어 주었다.    

 

치명적인 독이 들어있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지도 모르는 복어. 전문가의 손질이 있어야만 먹을 수 있는 생선이니 식당이 아니고서는 먹을 수가 없는 음식이다. 해방전후로는 기장 일대가 밀복의 전진기지였다는데 그래서인가 부산에는 유명한 복어 음식점이 여럿이다. 복어 생산과 유통에서 선두를 다투고 복국 최다 소비 도시가 부산이라고 하니 음식점이 많은 것도 당연한 일. 예전부터 부산음식하면 복국이 떠오르던 내 생각도 틀린 게 아니었다. 게다가 유명세에 맞게 음식 종류도 다양해져서 요즘은 복국뿐 아니라 복어튀김, 복어수육에 복어불고기까지 다양하다. 접시의 무늬가 보일 정도로 얇게 썰어내는 복어회는 그중에서도 으뜸. 

참복, 밀복, 까치복, 황복, 은복 등 복어 종류만도 꽤나 많은데 가격도 다 다르고 맛도 각각이 다 다르단다. 아직 복어 종류에 따라 복어 맛을 구분할 만큼은 아니니 어른의 맛은 아직 배울 게 많이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뭐, 그러면 어떠랴. 복국맑은탕 한 그릇 시켜 식초 한 바퀴 둘러 그 시원하게 깊이 있는 맛을 음미할 정도는 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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