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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숲 Mar 11. 2023

바다의 맛_미역국

찬바람 불고 으슬으슬한 날이면 뚝배기에 뜨끈하고 진하게 끓여 나온 미역국이 생각난다. 미역을 물에 불려 끓여먹어도 되겠지만 미역국전문식당에 가면 손쉽게 사먹을 수 있는 맛. 예전에는 외식 메뉴로 다룰 음식이 전혀 아니었던 미역국이 언제부터인가 식당의 주인공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부산의 기장 바다는 임금님께 진상하던 미역으로 유명하니, 좋은 재료로 끓인 미역국이 메인 메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아주 좋은 발상이었다. 사먹기에 아깝지 않은 진한 국물맛으로 꽤나 호황을 이루고 있으니 말이다. 조개나 황태, 전복, 소고기 미역국도 있지만 무엇보다 대표적이고 내 입에 맛있는 건 가자미 미역국. 생선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가 진하게 우려진 국물이 매력적이다.     


어릴 때부터 가장 흔하게 먹던 국 중 하나가 미역국. 지금이야 가자미 미역국을 맛있다고 찾아 먹지만, 생선이 들어간 미역국이 있다는 걸 알게 되던 날의 충격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우리 집에선 미역국하면 당연한 듯 소고기가 들어갔고, 해산물이라고는 커다란 개조개살을 잘라넣는 게 다였다. 마땅히 넣을 재료가 부족할 때는 미역만으로 끓인 국도 종종 먹었고.

그런데 열 살 즈음의 어느 날, 친구와의 대화 중에 생선 미역국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친구 집에서는 생선을 넣어 미역국을 끓여먹는단다. 그 말과 동시에 머릿속에서 피어오르던 생선 비린내, 동강동강 썰린 생선 덩어리가 미역과 엉긴 흉한 모습. 도대체 그런 걸 어떻게 먹느냐는 생각에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생선을 넣는다고? 진짜 생선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몇 번씩이나 되묻는 내 반응에 친구의 얼굴이 멍해졌다. 너무 당연해 의문을 품을 여지도 없이 먹던 일상 음식이 그리도 신기한 음식이 되어버렸으니, 그 친구의 당혹감이야말로 얼마나 컸을까.

열 살짜리의 세계는 좁고도 얕아 미역국이 던진 충격은 컸지만 생선이 들어간 미역국을 먹을 기회는 오랜 기간 주어지지 않았다. 아마 시도해 볼 생각을 안 했겠지만. 부산에 산다고 해산물을 즐기는 건 아닌지라, 우리 집 식구들의 머릿속에는 미역국에 생선이 들어갈 수 있다는 상상의 여지가 전혀 없었다.      


그렇게 좁기만 하던 미역국의 세계가 새로운 맛으로 넓어진 것은 결혼을 한 이후였다. 낚시를 즐기는 남편을 만난 덕에 다양한 자연산 회를 맛보며 지내던 어느 날, 감성돔을 잡아온 남편이 그 뼈로 끓인 미역국 국물이 얼마나 진하고 맛있는지를 설파한 것이다. 감성돔의 뼈와 대가리로 국물을 우려내면 꼬리곰탕은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보양식이 나온다나. 횟집에서 먹으려면 가격도 만만찮은 귀한 자연산 감성돔 뼈를 그 말을 듣고도 그냥 버릴 수는 없는 터. 회를 치고 남은 뼈와 대가리를 바로 냄비에 넣고 푹 우려냈다. 그렇게 끓여낸 미역국은 미역국의 진짜 맛이란 무엇인지 알게 해 주었다. 바다 생물인 미역에게 가장 어울리는 재료는 역시 바닷속 생물이란 당연한 사실이 그날로 납득이 되며 미역국의 넓고도 깊은 세계로 발을 들이게 되었으니, 무엇이든 직접 경험하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 되는 법이다.


이제는 가자미뿐 아니라 때론 광어나 도다리, 낚시로 잡아온 우럭이나 참돔, 감성돔 등 다양한 흰살 생선으로 미역국을 만든다. 어떤 날은 전복이나 성게를 넣어 특별한 맛을 만들고 가끔은 옛 생각 하며 소고기로 미역국을 끓인다. 바지락이나 개조개도 좋고, 담백하게 두부나 들깻가루만 넣어 끓인 미역국이 먹고 싶은 날도 있으니 미역국의 재료는 참으로 다채롭다. 무엇보다 좋은 재료는 물론, 미역만으로 끓여도 맛있는 좋은 미역, 그 자체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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