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멘탈과 체력관리
[경고] 이 글은 개인의 성향이 몹시 반영돼있어, 공감이 어려운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서비스 출시는 출산의 고통과 같다고 하는데, PM에게 육휴는 없다.
내 서비스 = 내 아이?
아이를 낳아보지는 않았지만 어느 곳 하나 내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는 내가 만든 서비스를 보고있자면, '아이를 낳으면 이런 마음일까? 애지중지. 애증...'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러나 출산을 앞두고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적게 쓰고자 애쓰기도 하고 출산휴가를 가는 것과 달리, PM은 출시 직전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 극한의 에너지 고갈을 경험한다. 이것은 내 개인의 속성이 반영된 걸 수도 있다. 그냥 구두로 정리하고 넘어갈 수 있는 어찌보면 자잘한 정책 변경사항도 일일히 거의 실시간으로 기획서에 업데이트하고, 깃허브에 모든 이슈들도 기록으로 남겨둔다. PM으로서의 책임감때문이라기보다(물론 그것도 있지만), 내일의 내가 오늘의 이 이슈를 잊고 넘어가거나 오늘 정한 정책이 사이드이펙트가 없는지 최종 점검하는 목적으로 협업자들과 공유하려는 의도가 크다.
협업자들이 집중근무하는 낮시간에는 회의를 주로 하고, 협업자들이 하나둘씩 업무를 종료해 내게 질문이 잦아들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기획서 업데이트 작업과 깃허브 정리 작업이 시작된다. ( 잠시 옆으로 새보자면, 나는 가끔 이 시간이 내게 작가의 시간이 도래했다고 느끼기도 한다. 어둡고 조용한 한밤중에 내 노트북 불빛에 집중하며 홀로 타닥타닥 업무들을 정리해나가다보면 그런 생각에 가끔 어이가 없어지기도 한다. )
이러다보니 프로젝트 집중 진행기간에는 평균 근무시간이 13시간을 왔다갔다 한다. 가끔 주말에도 일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2~3개월 내달리다보면 점심을 거르고 일을 하거나, 하루동안 화장실 갈 시간을 제외하고는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만 바라보는 일상이 익숙해진다.
이렇게 살다가는 어딘가 고장 안나는게 더 이상할 것 같았다.
프로젝트 착수 초반에는 협업자들에게 프로젝트 취지/상세스펙을 설명하고, 일정 조율하고 리소스를 따내는 등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좀더 컸다면 (육체적 스트레스가 없는게 아니고 프로젝트 한창 때보다 상대적으로 더 낫다는 의미) 프로젝트 진행 한창 때에는 육체적인 피로도가 더 극한에 몰리며 정신적 스트레스는 상대적으로 체감되지 않는다. 이러한 사이클을 반복하다보니 이러다 어딘가 잘못될 것 같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래서 프로젝트 시작 전부터 종료 때까지 난 항상 운동에 의존하며 살아간다. 매일 하루에 약 1시간씩은 꼭 운동을 한다. 러닝이든 웨이트든 운동을 하고 와서 새벽까지 일을 더 해야하는 상황이 되더라도 평일 주 4회이상 운동은 절대 거르지 않는다. 오늘은 할일이 많아서라는 핑계를 허용하지 않고 아침이 안되면 점심에, 점심에 안되면 저녁에, 저녁에 안되면 아침에 반드시 운동루틴을 약 처럼 지키려고 안간힘을 쓴다.
프로젝트 내내 심신이 무너지지 않고 견딜 수 있는 건 운동이라고 맹신한다. 몸의 통증을 통해 마음에 쌓인 중압감을 털어내고,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모니터만 바라보며 고갈된 내 체력을 보완해나간다. 또한 프로젝트에 매달리는동안 나에게 해주는 게 거의 없는데 (먹는 것도 잘 챙기지 못할 때가 많고, 협업자들의 질문에 대응하려면 조금 과장해 하루에 15시간 정도 실시간 대응을 하는데 이 피로도 또한 높다.) 운동이라는 선물을 해주어 자기효능감도 회복한다.
PM은 몸과 마음을 단련해나가는 일인 것 같기도 하다.
이 일을 하면서 드는 생각은, '이렇게 극한의 상황에도 몰려보고 이렇게 변수 많은 상황을 계속 해결해나가는 경험이면 어떤 일을 해도 못할 일이 없겠다.' 이다. 누군가 들으면, 사무직주제에 너무 거만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20여명의 협업자들과 정해진 일정 내에 목표한 결과물을 도출해내야하는 일에는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물리적인 심신의 에너지만이 다가 아니다.
특히 나는 이 일을 하기 전에는 예측하지 못하는 변수를 굉장히 힘들어하는 사람이었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푸념에 영향을 받는 사람이었다. 힘든 부분도 많지만 이 일에게 고마운 점은, 수많은 변수 폭탄을 맞으며 어떠한 예상못한 상황이 발생해도 해결할 수 있다는 신념도 갖게됐고(아무리 큰 문제라고 해봤자 조직에서 해결할 방법은 무조건 있음) 조금더 유연함해졌다. 물론 예상못했던 상황이 발견되면 당황은 하지만, 예전처럼 갑자기 스트레스지수가 폭증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사람들이 하는 모든 여론에 다 집중하며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베짱도 갖게 됐다. 그래서 이 일을 힘들어하면서도 재밌다.
또 어쩔 수 없이 해야할 말을 반드시 해야하는 상황들이 많이 생긴다. 프로젝트 참여자들은 각자의 이해관계가 달라, 전체 프로젝트 일정이나 타 협업부서의 업무영향도를 고려하기보단 내게 더 유리한 방향으로 업무를 하려고 할 때가 있다. 이럴 때 모든 사람은 모른척할 수 있지만 유일하게 모른척할 수 없는 사람은 PM이다. 그래서 껄끄럽더라도 이런 부분을 직설적으로 짚어내야할 상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