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에서 보상받아야 하는 이유를 깨달았던 대학원 생활일기
대학원 첫 학기, 한번에 연구 프로포절 패스!?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나의 첫 학기는 운이 좋았다. 대학원에서는 매 학기 끝나갈 무렵 프로포절이라고 하여 자신의 아이디어를 정리해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수업에서 하는 공식적인 프로포절이 있기 전 교수님은 대학원 연구생들에게 저마다의 아이디어를 가져오라고 하셨다. 나는 대학원 지원할 때 학업계획서에 쓴 프로포절 아이디어와 그 외 아이디어를 추가로 하나 더해 두 가지 아이디어를 가지고 미팅에 들어갔다. 교수님은 "두 아이디어 다 할만하네. 두번째 아이디어로 일단 더 디벨롭을 해보자." 라고 하셨다. 그 당시에는 몰랐다. 아이디어가 교수님에 마음에 들어 통과되기까지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연구실 동료들은 나를 농담조로 '능력자'라 불렀다. 교수님의 기대가 제로에 가까운 첫 학기의 첫 프로포절 아이디어가 통과했기 때문이다. 운이 좋게 조사연구를 하게 되었고, 데이터 결과도 괜찮았고, 덕분에 논문까지 투고할 수 있었다. 단 1년만에.
뜻밖의 성취 경험이 내게 가져다 준 것은,
그 당시 나는 자기 확신이 정말 없는 사람이었다. 학생 신분이어서가 아니라 성향 자체가 자신감이 좀 부족했달까. 무한도전에서 웹툰작가 윤태호님이 "작은 성취가 정말 중요하다. 작은 성취가 모여서 할 수 있다는 경험을 하게 되면 결국 큰 성취도 하게 될 것" 이라는 말을 하신 적이 있는데, 그 말을 가슴에 새기며 정말 내 인생에 작은 성취가 한번이라도 왔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늘상 하던 차였다. 그러던 중에 대학원이라는 새로운 길에서 작은 성취라고 말하기엔 큰 성취가 찾아왔다. 나는 너무나도 감사한 이 경험이 앞으로의 나에게도 빛을 비춰줄 것이라 낙관했다.
하지만 상황은 내 예상과는 정반대로 흘러갔다. 타인에게 형성된 이미지, 교수님에게 각인된 나라는 사람의 인식, 분명 다 좋게 자리잡고 있었지만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고, 나의 날 것의 아이디어를 그들에게 이야기한다는 것이 점점 부담으로 다가왔다. 내가 들고가는 아이디어는 다 괜찮아야만 할 것 같은 생각과 더불어 대학원생의 흔하디 흔한 삽질정신도 보이면 안될 것만 같았다. '역시 잘하네'라고 인정받는 사람이 되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나의 내면을 썩게 했다. 부담감은 나를 점점 헐벗게 했다. 더 좋은, 더 괜찮은, 아이디어를 찾아 헤매며 스스로만의 기준과 생각으로 내가 내 아이디어를 킬하는 동안, 연구실 동료들은 빠르게 교수님에게 피드백을 받고 수정을 해나갔다. 그러한 동료들을 보며 자연스레 경쟁하는 마음이 들었고 조급한 마음에 왜 나는 이것밖에 하지 못하는 것인지 눈물이 나기 일쑤였다. 우여곡절 끝에 수업에서 발표한 나의 두번째 프로포절은 "너무 예상가능한 이야기네. 뻔한 이야기네. 조금 더 생각해봐."라는 피드백으로 끝이 났다.
내가 하고 있었던 너무 큰 착각
되돌아보면 나는 너무 큰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하는 "모든 연구가 다 잘되야 한다"는 착각. 아이디어를 내는 것부터 결과까지 술술 잘 풀리는 연구가 있을 수도 있고, 교수님에게 통과는 되었지만 막상 실험을 돌려보니 내가 세운 가설과는 정반대의 가설이 나올 수도 있다. 교수님에게 아이디어부터 킬 당할 수도 있고, 막상 가져갔지만 보완할 점이 굉장히 많을 수도 있다. 그동안 나는 왜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것이, 모든 아이디어가, 한큐에 완성되어야 하고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나는 결과로써 타인에게 나를 증명하고 인정받으려고 했던 것 같다.
과정에서 보상을 받으세요
최근 읽은 책에서 저자는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목표지향적인 삶, 그래서 성공적인 결과를 추구하는 삶은 결국 그 결과가 이루어질 것 같지 않으면 무너지기가 쉽다고 말이다. 정말 무릎을 치는 말이다. 아이디어를 내는 과정에서 행복하고 즐거운 감정을 느꼈어야 했는데, 비록 그 아이디어가 무참히 짓밟히더라도 새로운 점을 보완해야 겠다는 생각으로 설렐 수도 있었을텐데, 그동안 나는 대학원에서 연구를 하는 과정 자체에서 단하나의 보상도 받지 못하고 있었음을 알았다. 그제서야 대학원에 들어가기 전 설레는 마음으로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생각하고, 이론을 찾아보고, 학업계획서를 쓰던 그때ㅡ 과정에서 보상받던 그때ㅡ 결과 또한 좋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다시 다잡아본다. 어떠한 일을 하든지 과정에서 보상을 받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