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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혜 Jun 20. 2022

뜻밖의 성취가 내게 가져다 준것

과정에서 보상받아야 하는 이유를 깨달았던 대학원 생활일기


대학원 첫 학기, 한번에 연구 프로포절 패스!?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나의 첫 학기는 운이 좋았다. 대학원에서는 매 학기 끝나갈 무렵 프로포절이라고 하여 자신의 아이디어를 정리해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수업에서 하는 공식적인 프로포절이 있기 전 교수님은 대학원 연구생들에게 저마다의 아이디어를 가져오라고 하셨다. 나는 대학원 지원할 때 학업계획서에 쓴 프로포절 아이디어와 그 외 아이디어를 추가로 하나 더해 두 가지 아이디어를 가지고 미팅에 들어갔다. 교수님은 "두 아이디어 다 할만하네. 두번째 아이디어로 일단 더 디벨롭을 해보자." 라고 하셨다. 그 당시에는 몰랐다. 아이디어가 교수님에 마음에 들어 통과되기까지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연구실 동료들은 나를 농담조로 '능력자'라 불렀다. 교수님의 기대가 제로에 가까운 첫 학기의 첫 프로포절 아이디어가 통과했기 때문이다. 운이 좋게 조사연구를 하게 되었고, 데이터 결과도 괜찮았고, 덕분에 논문까지 투고할 수 있었다. 단 1년만에.


뜻밖의 성취 경험이 내게 가져다 준 것은,

그 당시 나는 자기 확신이 정말 없는 사람이었다. 학생 신분이어서가 아니라 성향 자체가 자신감이 좀 부족했달까. 무한도전에서 웹툰작가 윤태호님이 "작은 성취가 정말 중요하다. 작은 성취가 모여서 할 수 있다는 경험을 하게 되면 결국 큰 성취도 하게 될 것" 이라는 말을 하신 적이 있는데, 그 말을 가슴에 새기며 정말 내 인생에 작은 성취가 한번이라도 왔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늘상 하던 차였다. 그러던 중에 대학원이라는 새로운 길에서 작은 성취라고 말하기엔 큰 성취가 찾아왔다. 나는 너무나도 감사한 이 경험이 앞으로의 나에게도 빛을 비춰줄 것이라 낙관했다. 


하지만 상황은 내 예상과는 정반대로 흘러갔다. 타인에게 형성된 이미지, 교수님에게 각인된 나라는 사람의 인식, 분명 좋게 자리잡고 있었지만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고, 나의 날 것의 아이디어를 그들에게 이야기한다는 것이 점점 부담으로 다가왔다. 내가 들고가는 아이디어는 괜찮아야만 같은 생각과 더불어 대학원생의 흔하디 흔한 삽질정신도 보이면 안될 것만 같았다. '역시 잘하네'라고 인정받는 사람이 되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나의 내면을 썩게 했다. 부담감은 나를 점점 헐벗게 했다. 더 좋은, 더 괜찮은, 아이디어를 찾아 헤매며 스스로만의 기준과 생각으로 내가 내 아이디어를 킬하는 동안, 연구실 동료들은 빠르게 교수님에게 피드백을 받고 수정을 해나갔다. 그러한 동료들을 보며 자연스레 경쟁하는 마음이 들었고 조급한 마음에 나는 이것밖에 하지 못하는 것인지 눈물이 나기 일쑤였다. 우여곡절 끝에 수업에서 발표한 나의 두번째 프로포절은 "너무 예상가능한 이야기네. 뻔한 이야기네. 조금 생각해봐."라는 피드백으로 끝이 났다.


내가 하고 있었던 너무 큰 착각

되돌아보면 나는 너무 큰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하는 "모든 연구가 다 잘되야 한다"는 착각. 아이디어를 내는 것부터 결과까지 술술 잘 풀리는 연구가 있을 수도 있고, 교수님에게 통과는 되었지만 막상 실험을 돌려보니 내가 세운 가설과는 정반대의 가설이 나올 수도 있다. 교수님에게 아이디어부터 킬 당할 수도 있고, 막상 가져갔지만 보완할 점이 굉장히 많을 수도 있다. 그동안 나는 왜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것이, 모든 아이디어가, 한큐에 완성되어야 하고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나는 결과로써 타인에게 나를 증명하고 인정받으려고 했던 것 같다. 


과정에서 보상을 받으세요

최근 읽은 책에서 저자는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목표지향적인 삶, 그래서 성공적인 결과를 추구하는 삶은 결국 그 결과가 이루어질 것 같지 않으면 무너지기가 쉽다고 말이다. 정말 무릎을 치는 말이다. 아이디어를 내는 과정에서 행복하고 즐거운 감정을 느꼈어야 했는데, 비록 그 아이디어가 무참히 짓밟히더라도 새로운 점을 보완해야 겠다는 생각으로 설렐 수도 있었을텐데, 그동안 나는 대학원에서 연구를 하는 과정 자체에서 단하나의 보상도 받지 못하고 있었음을 알았다. 그제서야 대학원에 들어가기 전 설레는 마음으로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생각하고, 이론을 찾아보고, 학업계획서를 쓰던 그때ㅡ 과정에서 보상받던 그때ㅡ 결과 또한 좋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다시 다잡아본다. 어떠한 일을 하든지 과정에서 보상을 받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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