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누군가에 대해 말할 권리가 있는가?
연극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하나씩 답해보시길.
"하루 몇 시간 일하세요?"
"일한 지 얼마나 됐나요?"
"일에 만족하나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몇 명이나 되나요?"
"당신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 이름은 아나요? 몇 살인지, 어디 사는지, 무얼 좋아하는지?"
"그 사람들도 당신에 대해 알까요?"
질문에 막힘없었나? 당신이 대답하며 떠올린 생각, 연극 <글로리아>가 말해준다.
현시대 인간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
웰메이드 희곡을 꾸준히 소개해 온 '노네임 시어터 컴퍼니'가 올해 새롭게 선보인 작품, 바로 <글로리아>다. <필로우 맨> <히스토리 보이즈> <스테디 레인> <COCK> 등 그동안 올린 연극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 컴퍼니는 해외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현대 영,미권 희곡을 골라 '글 맛'이 제대로 담긴 공연을 보여준다. 여기에 단단하게 실력을 갖춘 배우와 스태프가 모여 국내 무대의 완성도를 더한다. 이번 작품 역시 컴퍼니의 개성과 밀도 있는 희곡이 조화로운 합을 이뤘다. <글로리아>는 미국의 30대 젊은 작가 '브랜든 제이콥스 제킨스'가 2015년에 쓴 희곡으로 올해 퓰리처상 드라마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며 작품성을 확고히 입증한 바 있다. 근래에 나온 희곡인만큼 인물과 배경, 대사 전반적으로 오늘의 우리 모습과 상당히 밀착해 있다.
뉴욕의 어느 잡지사 편집부, 이곳에서 일하는 인턴 에디터들은 각자의 개성과 욕망에 충실한 사람들이다. 하루하루 주어진 일에 충실하지만 불확실한 미래에 회의적인 막내 마일즈(오정택), 자신이 실력 이상 평가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회사에 불만이 가득한 켄드라 (손지윤), 언젠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회고록을 만들겠다는 야망을 가지고 눈치만 보며 기회를 엿보는 딘 (이승주), 여기저기 호기심 많고 머리도 좋지만 일에 별다른 욕심은 없어 보이는 애니 (공예지), 그리고 성의 없이 던져 놓은 기사의 팩트 체킹을 하는 데 신물이 난 로린 (정원조)과 별다른 존재감 없이 회사에 오래 근무해온 교열부 직원 글로리아 (임문희)가 주요 인물이다. 어느 날 글로리아가 자신의 집들이 파티에 회사 사람들을 초대한다. 하지만 딘을 제외한 그 누구도 파티에 가지 않고, 딘마저도 어쩌다 가게 된 상황이라며 동료들에게 억울함을 토로한다. 하나둘씩 사무실로 출근해 모여 '글로리아의 파티'에 대해 말하던 이들은 자연스레 '글로리아'로 화제를 옮겨와 그녀의 뒷담화를 한다. 그러던 중 글로리아가 사무실에 나타나고, 그녀는 평소보다 더 암울하고 음침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여기서부터는 연극에 대한 중요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시면 되돌아가 주세요.
방심하고 있던 찰나에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
그렇게 여느 때와 같이, 아니 평소보다 조금 더 어수선하던 편집부실. 다시 사무실로 들어온 글로리아는 단 5분 만에 이들을 잠재운다. 권총을 겨누고 한 명씩 쏴 죽이면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딘. 아수라장이 된 사무실에서 겁먹고 있는 그에게 글로리아는 자신의 집들이에 와줘서 고맙다고 말한 뒤 그가 보는 앞에서 자살한다. 때마침 커피를 마시겠다며 사무실을 나간 켄드라와 혼잡한 틈을 타 현장을 빠져나온 로린은 목숨을 구했다. 이렇게 갑작스러운 돌발 상황으로 연극의 1막이 끝난다. 그때까지 (다소 수다스러울 뿐)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아 슬쩍 시계를 보려는 타이밍에 벌어지는 큰 사건이다. 연극이 시작된 후, 내내 자기 이야기만 하느라 바쁜 인물들 사이로 글로리아는 한두 번 얼굴만 내비칠 뿐 어떤 반응도 하지 않는다. 대체 저 글로리아가 누구길래? 하는 순간 이런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촘촘하게 엮어둔 복선과 메타포
빅 스포일러를 발설했으니, 다시 연극에 대해 살펴보겠다. 이 작품은 사회적 불만을 가진 가해자가 불특정 다수에게 저지른 살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어느 정도 배경이 되긴 하지만, 극의 구성을 보면 작가가 진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따로 있어 보인다. 총기 사건이 일어나고, 연극은 반년의 시간을 점핑해 2막과 3막에 들어선다. 글로리아가 죽고 없는 상황 속에서 그녀와 그녀를 둘러싼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그려진다. 진짜 그녀는 사라진 채로.
사건 현장의 생존자를 비롯해 글로리아와 어느 정도 관계가 있던 사람들은 그녀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딘과 켄드라는 글로리아의 이야기를 글로 쓰겠다고 한다. 딘은 오랫동안 준비해온 자신의 자서전을 접고, '글로리아'란 이름으로 책을 계약한다. 심지어 켄드라가 그 사건을 다루는 것에 대해 (선을 긋자며) 계약서까지 쓰자한다. 현장에 없었던 켄드라는 딘에게 '이 사건을 자신 만의 것이라 생각하지 말라'라고 말한다. 현장에서 살아남은 또 한 명의 생존자 낸도 당시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자는 제작사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글로리아의 살인 사건은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는 '돈이 될 만한' 소재가 되고, 사람들이 '소비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된다. 마치 앞다퉈 쏟아내는 신상품 소식처럼, 매체들은 누가 글로리아에 대해 새로운 내용을 더 많이 쓰냐에 승패를 걸며 경쟁한다.
이렇게 2막과 3막은 글로리아의 사건을 대하는 동료들의 태도, 그리고 이를 이용하려는 미디어의 움직임을 집중적으로 그린다. 사람들은 글로리아(와 관련된 모든 것)를 원하고, 심지어 그녀를 독점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친다. 살아있을 때는 그 누구에도 관심받지 못했던 그녀였는데 말이다.
대중과 언론이 떠들어 댈 소재거리
이 연극은 누군가의 비극과 희생이 그저 흥미로운 볼거리가 되는 현실, 소비를 위해 자극적인 소재를 갈구하는 미디어와 대중의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는 이런 비인간적인 시장논리를 총기 사건을 다루기 앞서 미리 넌지시 던진다. 사건이 일어나던 날, 유명 가수인 '사라 트위드'의 자살 사건이 일어나고, 편집국은 누가 먼저 이 특종을 터뜨리느냐에 열을 올린다. 사라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는 건 자신이라고 흥분하는 켄드라의 모습에서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이나 윤리의식은 없다. 마치 사냥감이 던져지자 본능적으로 덤벼드는 야생 동물처럼 앞만 보고 날뛴다. 인터넷이란 정글을 사는 우리의 모습이다. 기자든 대중이든 팩트에 대한 접근에 앞서 사건이 터지면 이슈 몰이를 우선시한다. 결국 이들의 본능은 자신들이 사건 속 피해자가 되어서도 계속된다.
글로리아가 일한 곳은 매거진 회사다. 모든 최신 뉴스와 트렌드 정보가 '빠르게' 오가는 곳. 즉, 소재에 대한 탐닉이 강한 곳이다. 정확성보다는 신속성으로 기사의 가치를 판가름한다. 그들 안에서도 경쟁이다. 기자 각자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개인주의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심지어 인터넷 시대가 오며 대중과도 경쟁을 하게 되었다. 스스로 올라갈 힘을 키우지 않으면 치열하게 쏟아져 내리는 정보 더미에 치여 미끄러진다. 하지만 빠른 만큼 점점 허술해지고, 그들이 마구잡이로 써낸 이야기에는 팩트가 부재한 채 세상을 떠돈다.
글로리아에 대한 팩트 체킹
글로리아는 교열 팀에서 일했다. 기사의 완성 직전을 책임지는 역할이었기에, 늘 가장 늦게까지 회사에 남아있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녀가 죽고 나서 그녀에 대한 질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하지만 편집부의 그 누구도 글로리아와 친한 사이가 아니었고 그녀에게 관심도 없었다. 사람들은 글로리아에 대해 변죽만 울려댔다. '그랬던 같다'는 주관적인 추측은 '그랬다더라'가 되어 변형된 글로리아를 만들었다. 실재 없는 카더라는 수많은 입을 타고 무수히 많은 허상의 글로리아를 현실에 남겨두었다. 단편만 보고 속단하는 사람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사람들. '글로리아'를 둘러싼 이들의 모습은 흡사 '인터넷'의 로직과 닮아있다. 인기가 없거나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정보는 피드에서 사라져 버리듯이.
정작 글로리아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던 팩트 체킹 팀의 로린은 사건 이후 침묵하며 보낸다. 그는 사람들이 글로리아에 대해 묻자 그녀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천천히 그녀를 기억한다.
그냥 평범했어요. 성실하고, 책도 많이 읽고 텔레비전을 좋아하고, 요리와 뜨개질을 잘했어요. 어느 누구와 비슷한... 평범하고 평범한 사람. 어떤 것도 문제 될 것이 없던 사람....
로린이 말하는 글로리아는 그동안 떠돌던 소문과는 다른 모습이다. 로린은 그녀가 늘 혼자였다고 말한다. 그녀는 인생의 전부가 직장이었다. 그런 곳에서 그녀는 혼자였고 그녀가 성실하게 일해 온 시간들을 동료들은 비웃으며 무시했다. 대체 글로리아가 그들에게 뭘 잘못했나? 무슨 권리로 그들은 글로리아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가? 소재 거리에 목마른 하이에나들은 끊임없이 씹어댈 소재거리를 찾는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자신이 소재거리가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로린이 말한 건강하지 못한 직장 생활의 단편이다. 자신의 욕망만 추구하며 경주마처럼 달리는 사람들이 가득한 곳. 누구도 글로리아가 될 수 있는 곳.
친절한 연출과 배우들의 호연, 입체적으로 살아나는 캐릭터
이 작품은 '로린'을 제외한 다른 배역은 1인 다역으로 설정되어 있다. 아마도 작가는 유일하게 진실을 말하는 로린만은 그 모습을 계속 유지하길 바란 듯하다. 극적 재미를 위해 어떤 인물은 상반된 캐릭터로 매칭 되어 있고, 때로는 비슷한 맥락의 인물을 투영하기도 한다. 여섯 명의 배우들은 저마다의 캐릭터를 실감 나게 살리며 입체적인 인물로 만든다. 방대한 대사에도 귀 기울여 집중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섬세한 표현에 감탄할 따름!
개인적으로는 글로리아 & 낸의 구성이 재미있었다. (임문희 배우가 워낙 잘 살려 연기한 것도 200% 작용한다) 사건의 또 다른 생존자인 낸은 당시 임신 중이었는데, 당시의 상황을 자신의 입장에서 해석해 말한다. 하나의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개인의 상황에 따라 변형되고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녀의 말속에 글로리아의 목소리가 담겨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낸은 과거를 회상하며 '괜찮다고 생각하며 사는 현실이 정말 괜찮은 걸까...'라는 말을 한다. 어쩌면 살인을 결심하기 전 글로리아의 마음도 이와 같지 않았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쳤다.
어찌 보면 꽤나 미국식 스타일이 뚜렷한 희곡이다. 인종, 지역, 성별, 학벌 등 계급적 상황을 만드는 문제들이 인물과 배경에 녹아있다. 하지만 김태형 연출이 번역과 연출적 해석에서 국내 관객들에게도 가깝게 닿을 수 있는 공감대를 성실히 찾은 덕분에 이 작품은 우리 '시대'의 이야기로 읽힌다.
디테일의 재미
치트키 가득한 대본이다. 오고 가는 대사 속에서 흥미로운 정보와 은유적인 연관성을 찾는 재미가 있다. 얼핏 놓치고 봐도 무리는 없지만, 발견하게 되면 더 재미있는 정보들이 <글로리아>에 꽉 차있다.
1. 이름? 무슨 일 하는지도 몰라
누구보다 성실히 일하는 막내 인턴 마일즈. 동료들은 매일 그를 부르고 부리지만, 그의 이름도 잘 모른다. 심지어 그의 인턴 기간이 끝났는지도 모른다. 글로리아도 그랬고, 사실 서로가 서로에게 그랬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로린이 임시직으로 새로 입사한 회사에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반복된다. 임시직과 단순 관리직을 외면하는 회사. 주변에 대한 무관심. 우리의 회사 어딘 가에 그런 평범한 글로리아들이 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 헤드셋
마일즈는 헤드셋을 낀다. 선배들이 시끄럽게 목소리를 높이고, 심지어 자기 이야기를 해도 그는 못 들은 척 가만히 있는다. 이후 임시직이 된 로린도 회사에서 이어폰으로 귀를 막는다. 듣고 싶지 않아서, 괜한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서... 현실에서도 귀를 닫아버리는 사람들에 대한 상징으로 보였다. 그렇게 나와 그들 사이에 경계를 긋고 스스로 무관심에 익숙해지는 사람들.
3. 다 들린다고!
글로리아는 어쩌면 동료들이 집들이에 오지 않은 일 때문에 화가 난 게 아닐 것이다. 평소 그들의 멋대로 이고 가식적인 태도, 그리고 자신을 향해 쏟아붓는 인신공격을 전부 들었을지도 모른다. 1막 중간에, 편집실에서 떠드는 소리가 심해지자 옆 방에 있던 로린이 들어와 말한다. '너희들이 이야기하는 거 다 들려. 이어폰을 껴도 다 들린다고!' 아마도 방과 방 사이에 파티션 정도 되어 있었을 것이다. 글로리아라고 못 들었을 리가 없다.
4. 글로리아는 책도 많이 읽었어요!
로린이 글로리아에 대해 말할 때, 유난히 책을 많이 읽었다는 말을 강조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의 입장에선 아마도 그만큼 똑똑하고 점잖은 사람이란 걸 알려주고 싶어서였을 거다. 책을 많이 읽는 글로리아는 말과 글에 담긴 메시지를 해석할 줄 알고, 행간을 읽을 줄 아는 그런 사람이었을 거라 생각된다. 글을 읽는 데 소홀해지면 독해 능력이 저하된다. 이미지 위주의, 짧은 글에만 익숙해지는 오늘날의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은근히 내비친 의도가 아닐까 생각도 든다.
(더 찾지 못한 디테일은 또 다른 관객께서 찾아주시길...)
그런 <글로리아>를 소비하고 있는 나
앞서 말한 대로 연극 <글로리아>는 타인에 대한 무관심, 그리고 타인의 이야기를 함부로 소비하는 현시대를 꼬집는 작품이다. 그런 글로리아의 충격적인 모습이 담긴 연극 <글로리아>를 '재미있게' 소비하고 있는 나 자신이 한편으로는 아이러니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