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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애할 권리 Sep 10. 2017

연극 <20세기 건담기建談記>

21세기가 발신하는 20세기 건담기

연극 포스터에 작가나 연출의 모습이 등장하는 일은 거의 없죠. 이들은 대체로 보이지 않는 손이기도 하고요. 보통은 포스터에 주인공 배우나 극을 상징하는 어떤 형상, 혹은 관객들의 시선을 끌 화려한 수식어를 넣어 디자인합니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연극 <20세기 건담기>의 포스터는 마치 포스터계(?)의 이단아처럼 파격적이죠. 핏빛처럼 붉은 배경을 등지고 앉아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한 남자, 바로 이 작품의 작가이기도 한 성기웅 연출입니다. 그리고 어떠한 수식어도 없이 포스터 우측 상단에 <20세기 건담기>라고만 적혀있죠. (처음에 얼핏 보고 건담기? 만화가 원작인가? 건담 로봇이 나오는 SF 장르인가? 했는데, 자세히 보니 建談記 였죠;; 하지만 작품을 보고 나니, SF적인 감각이 없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세울 건, 말씀 담, 기록할 기. 그러니까 말을 세워낸 기록이라고 할까요? 20세기의 말. 배경은 경성이오, 이상과 구보와 같은 문인들이 등장하는 1930년대 그 시절의 말이라면... 옳거니! 이건 성기웅 연출의 전공이구나! 싶었죠.


(c) 두산아트센터

성기웅 연출은 1930년대 경성과 문인들을 소재로 연극 <소설가 구보씨와 경성 사람들>(2007) <깃븐우리젊믄날>(2008) <소설가 구보씨의 1일>(2012)을 만들었습니다. 철저한 고증을 거쳐 그 시대의 말과 인물, 사건들을 실감 나게 구성해 당대를 생생하게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았죠. '박태원과 이상'이 그의 연극을 봤다면, "성형은 참말로 훌륭한 재주를 가진 귀인이오"라며 당장 벗이 되자고 구인회에 초대했을 거에요. 그렇게 다시 보니 참 잘 어울리는 포스터였습니다. 연극을 보고 나서 더더욱 수긍이 갔죠. 포스터는 관객이 가장 먼저 연극을 만나는, 연극의 첫 얼굴이니까요. <20세기 건담기>는 성기웅 연출이 연작처럼 선보였던 구보/이상 시리즈의 시퀄이자, 그가 꾸준히 추구해온 '말'의 연극에 있어서 정점을 이루고, 형식상으로도 새로운 시도를 담아낸 실험극이기도 합니다. 작가 노트를 보니, 구보와 이상이 나오는 네 편의 연작 연극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이룬 작품이라고 밝혔더군요.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를 사로잡았던 세계를 125분의 연극으로 만나볼 수 있게 됐습니다.

(c) 두산아트센터

때는 1936년 2월, 구보(이명행)와 이상(안병식)이 마이크 앞에 서서 '건담'을 시작합니다. 저 먼 미래에 살고 있을 청중들에게 이야기를 발신하겠다는 거죠. 여기가 어딘지, 내가 누군지, 자네는 누군지... 주거니 받거니 오가는 만담을 통해 두 사람의 소개가 이뤄집니다. 과장하고 익살스러운 표정도 서슴지 않아 스탠드업 코미디 같은 느낌도 들어요. 이어 김유정(이윤재), 구본웅(김범진), 그리고 어린 수영이(백종승)가 합류하며 본격적인 쇼가 펼쳐집니다. 구인회의 동인지였던 <시와 소설> 창간을 기념하며, 이를 널리 알릴 겸 (핑계 삼아) 서양 뮤지컬처럼 흥나게 한번 해보자고 의지를 다지죠. 이들은 하모니카와 아코디언 등 저마다 악기를 들고 악사마냥 연주하다가 신파를 읊기도 하고, 걸쭉하게 노래를 부르기도 합니다. 이야기의 내용, 그러니까 '건담'은 실제로 당시에 일어났던 사건들을 모티브로 합니다. 파란만장한 이상의 연애사, 김유정의 애틋한 짝사랑, 이상과 김유정의 질병사(둘 다 폐병과 치질을 앓고 있었죠), 50년 후 경성에 고하는 예언 등 실제 사실에 허구를 담백하게 가미해 만든 다양한 이야기를 줄기차게 이어갑니다.    


(c) 두산아트센터

청각으로서의 서사

이 연극의 중심에는 항상 마이크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무대 위 상황은 계속 녹음되고 있는 거죠. 혹은 실시간으로 스트리밍 될 지도 모르죠. 상상은 자유! 어쨌든. 그래서인지, 시각적인 전개가 아닌, 청각적인 방식으로 연극을 설계합니다. 등장인물이 사건을 통해 드라마를 생성하는 서사가 아닌, 짜 놓은 각본을 마이크 앞에서 낭독하는 식이기 때문에 에피소드적 구성이 되지요. 라디오 방송에서 하는 드라마처럼요. 장면을 이어가는 방식도 청각적입니다. 그래서 다소 낯설기도 할 거예요. 여운을 가진 사운드가 디졸브 되는 것처럼, 암전이 된 후 소리는 남아 있어서 장면과 장면 사이를 차곡차곡 채우거든요. 다시 말해, 깜깜한 무대에서 배우들이 계속 대사를 하는 거죠. 처음에는 조명 사고 아닌 가 싶었는데, 몇 차례 더 설정된 걸 보고 의도한 것임을 알았죠.


각각의 이야기는 3인칭 시점이기도 했다가, 독백처럼 1인칭 시점도 됩니다. 에피소드들의 시점을 저마다 달리해 극의 변화를 준 셈이에요. 당사자가 직접 말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대신 '~카더라'처럼 전하기도 합니다. 원래 남의 흉이 재미있듯이, 몰래 뒷담 하는 기분이 들도록 코믹한 분위기도 자아냅니다. 이야기는 시간에 따른 역사적 사건을 하나하나 담아내요. 1936년 이상이 일본으로 떠나는 일, 1937년 이상이 일본에서 체포되는 일, 그리고 같은 해 김유정과 이상이 죽고, 부민관에서 두 사람의 합동 추도식이 열린 일 등등. 그렇게 1942년까지 이어집니다.   


(c) 두산아트센터

다큐멘터리적 성격의 연극

<20세기 건담기>는 앞서 말한 성기웅 연출의 장기가 곳곳에 묻어난 작품입니다. 어쩌면, 최대치를 이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죠. 시어터-다큐라는 말이 있다면 붙여주고 싶을 정도로 역사적 사실에 충실합니다. 우선 말에 있어서 당대의 언어를 빈틈없이 구사했습니다. 당시에는 일본을 통해 서양의 신문물이 들어오던 때라, 모던 보이들은 일본어와 일본어식으로 발음된 영어(외래어)를 많이 썼습니다. 그런 습성이 묻어난 단어나 서울 토박이 말들이 대사에 치밀하게 적용되어 있어요. 여기에 관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주석처럼 자막을 동반하고 있죠.

(c) 두산아트센터


인물들의 묘사 역시 사실적이고 흥미롭습니다. 희고 창백한 낯에 봉두난발인 이상은 꿈도 많고 야망도 있는 활달한 청년으로 그려집니다. 요즘 이상을 그린 다양한 작품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대게 폐병으로 고생하다 요절한 천재 시인으로 묘사하다 보니 그게 전형성을 띈 클리셰가 되어 버린 것도 사실이지요. 이 작품에서 이상은 오히려 그 외적인 면모를 보여줘서 신선합니다. 이상은 문인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건축가이자 화가이기도 했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감성적인 작품 외에도 실험적이고 독특한 작품들도 많이 있어요. 건축 설계도를 그리듯 말을 하나하나 분리했다가 다시 조합하며 언어를 재료처럼 이용해 설계한 (혹은 그려낸) 꽤 괴상한 문학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술도 많이 마시고, 그러면서 사랑에 발목 잡히기도 했고요. 그 시절 사람들이 보기엔 괴짜였을 겁니다. 이상의 꿈과 재능을 펼치기에 식민지 경성은 너무 작고 제한적이었겠죠. 때문에 이상은 더 이단아처럼 행동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치기 어린 이상의 모습이 이번 연극에 어느 정도 묻어난 것 같습니다. 척추장애로 체구가 작고 망토 같은 외투를 입고 다닌 한국의 로트렉 구본웅이나 모자에 두루마기, 마고자를 입고 다니며 술을 사랑했고 한편으로는 외로웠을 김유정, 오갑빠 머리와 근시 안경의 아이콘인 박태원의 속 깊고 배려심 넘치는 성격도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배우들의 의상과 분장, 그리고 성격을 내비치는 연기까지 조화롭게 어우러져 최고의 싱크로율을 자랑합니다.

(c) 두산아트센터

이렇게 사실적인 작품이긴 하지만, 결코 친절한 극은 아닙니다. 이토록 방대한 정보를 무지막지하게 껴놨으니 당연히 한 번에 실시간으로 따라가기 벅차죠. (만약, 당대의 역사에 대해 어느 정도 학습이 된 상태라면 그 깨알진 묘사가 너무 실감 나서 계속 웃음이 날 테지만요. 더불어 성기웅 연출에 대한 리스펙이 절로 듭니다) 또한, 에피소드들이 나열되다 보니 중간쯤 지나면 더 이상 새롭지 않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래서 지치기도 합니다. 특히 후반부의 호흡이 느리고 길어, 집중력을 요하는 측면도 없진 않고요.  하지만 <20세기 건담기>는 어려운 극일 수는 있어도 무책임하게 난해한 극은 아닙니다. 설령 정보를 놓치고 지나치더라도, 공연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말'과 '이미지'는 잔상처럼 남습니다. 이상, 구보, 김유정, 구본웅, 그리고 소년 수영이까지. 그 시절 지식인들이 먼 미래를 상상하며 희망을 가져보고, 사사로운 일에 고민도 하고, 비극적인 현실에 절망도 하며 한 시대를 견뎌내듯 살았다는 걸 알게 되니까요.


경성이라는 시대는 과도기이자 격동기였고, 때문에 문제적 사건들과 인물이 창작자들에게는 좋은 소재이자 모티브로 작용합니다. 그래서 경성을 소재로 한 연극, 뮤지컬, 영화 등이 많이 제작되기도 하죠. 그러다 보니 상투적인 형상화나 왜곡된 이미지로 그려진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어차피 연극은 사실이 아니고 사실이 될 수 없다고 하지만, 사실을 바라보는 태도만큼은 소홀해서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지금 이 시점에서, 창작자의 윤리와 책임의식을 성실히 한 성기웅 연출에게 존경과 격려, 응원을 보내고 싶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뚝심 있는 연극적 행보가 후대에 좋은 사료로 남아 굉장히 큰 인정을 받을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듭니다.(그러고 보니, 시대를 앞서간 이상도 그러했는데... 그래도 요절은 하지 말아주시고요ㅎㅎ)



+덧)

시대를 앞서 갔다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개인적으로는 요즘 <정물화>가 참 많이 생각납니다. 소극장에서 그리 길지 않은 기간 동안 공연했었는데, 흥행은 잘 모르겠지만 홍보는 많이 안된 것 같아 아쉬웠던 작품이거든요. 다양한 개성의 여성 캐릭터가 섬세하고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작품인데, 오히려 지금쯤 다시 한번 올라오면 많은 분들이 보고 좋아하지 않을까 생각도 드네요. 그러니 계속 성기웅 연출님 열일 해주십사 하는 바람으로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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