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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도쿠 Jul 29. 2021

이것은 악마의 농간이 아닐까

징크스라고 말하기엔 너무 가벼운, 그러나 특정한 상황에서 종종 발생하는 일이 있다. 꼭 양손에 무거운 것을 쥐고 주차장에 있는 차로 갈 때면, 차의 위치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 회사의 주차장이 지하 7층까지 있는데 주차한 층수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분명 3층에 주차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찾아가면 없다. 그러면 또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한층 한층 뒤져 차를 찾는다. 해당 층에 한 번 내리면 엘리베이터는 또 어찌나 안 오는지, 계단을 이용해 오르락내리락한다. 문제는 양손에 짐을 잔뜩 쥐고 있을 때만 발생한다는 점이다.


어제도 그랬다. 분명 지하 2층에 주차한 것 같아서 2층에 내렸건만 차는 보이지 않았다. 지하 3층으로 갔는데 그곳에도 없었다. 무거운 양손에 지친 몸을 이끌고 지하 4층으로 내려갔다. 없었다. 순간 지하 1층을 지하 2층으로 착각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지하 1층으로 올라갔다. 없었다. 알고 보니 차는 지하 5층에 있었다. 가뜩이나 폭염으로 더운 날씨에 나는 땀범벅이 되어 있었다. 아, 인생 진짜 왜 이러냐!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어떤 악마가 내게 농간을 부리는 것은 아닌지 의심한 적이 있다. 악마는 특정 상황에서 나의 뇌에 전기 신호를 보내 기억을 저장하는 해마에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혹은 사실 나는 차의 위치를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지만, 악마가 나의 차를 다른 층으로 순간이동시키는 것이다. 오늘 하루를 결코 쉬이 보내지 않도록 만들겠어하는 각오와 함께 말이다. 물론 나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다. 사회생활을 문제없이 정상적으로 수행하는 어엿한 성인이다. 사실 알고 있다. 나의 부주의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보통 양손에 무언가를 쥐고 차를 찾는다는 것은 짐을 싣고 어디론가 가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마음이 급해지면 좀처럼 세세한 것을 체크하지 못한다. 그러니 주차의 위치도 잊어버릴 수밖에. 다만 사람 마음이란 게 원래 그렇지 않은가. 잘하면 내 덕분이지만, 못하면 네 탓으로 돌리고 싶은 심리가 있다. 팍팍한 현실을 이겨내기 위한 인지왜곡이다. 나도 정말 잘하고 싶지만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을 때 어딘가 잘한 구석이라도 보인다면 그 안에 나를 슬쩍 끼고 싶다. 반대로, 무언가를 잘 못하는 일이 생긴다면 조그마한 티끌이라도 흠을 잡아 외부로 탓을 넘기고 싶다. 그냥 그런 마음이었다. 부주의보다는 악마를 탓하고 싶었다. 악마 나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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