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도 습관이다. 한없이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니 안 하고 있는 것에 적응이 된다. 생물이란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쓰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지금이야 넘치도록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는 시대이지만, 불과 몇십 년 전만 하더라고 전혀 그러지 못했다. 멀리 가지 않고 부모님의 이야기만 들어봐도 보릿고개란 시절이 존재했다. 밥그릇에 가득 담은 쌀밥은 특별한 날에나 가능한 것이었다. 지금의 우리는 배고픈 것이 어색할 정도로 배를 채우며 살지만, 그 시절만 하더라도 배고픈 것이 당연시되는 나날이었다. 친구의 작은 간식 하나에도 모두가 옹기종기 모여 입맛을 다시던 그런 시절이었다.
지금처럼 이렇게 풍족해진 것은 진화의 역사로 볼 때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단기간 내에 빠른 진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니, 우리의 몸은 아직도 에너지를 비축하고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니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은 생존에 매우 유리한 태도일 것이다. 먹잇감이 줄어드는 매우 추운 계절에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이 이를 잘 증명한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인 이상, 진화의 본능을 거슬러야 한다.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어야 한다. 철학적 사고를 위해서가 아니라 현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서이다. 단순히 먹고 자고를 반복하는 자연적 생존의 시대가 아니다. 각자의 역량을 발휘하고 발전시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적절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자본적 생존의 시대이다.
역풍을 뚫고 거슬러 날아가는 새처럼,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처럼 우리는 거슬러 가야 한다. 인간인 아닌, 저 동물들조차 더 나은 삶을 위해 거슬러 가는데 내가 이러고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맞다, 이것은 나에 대한 자책이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에 대한 진화론적 변명이다. 연휴 동안 끊임없이 먹고 자고를 반복한 나의 반성이다. 몸무게 +3kg, 얼굴에 여드름 2개, 넷플릭스 20시간 시청, 목과 어깨 결림 등 처참한 결과를 낳았다. 아침에 일어나기가 지독히 힘들었고, 회사에서도 비몽사몽한 것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연휴의 후유증이다.
다시 시작하자. 102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는 인격의 핵심을 성실성이라고 했다. 그 말을 가슴속에 새기고 성실하게 살아보자. 그런데 오늘까지만 쉬고 내일부터 시작하면 안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