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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도쿠 Feb 07. 2022

재밌는 사람에 대한 단상

동네 형을 만났다. 알게 된 햇수로만 따지면 20년 가까이 된 형이다. 이 형의 특징은 사람을 관찰하면서 본인만의 독특한 식견을 내놓는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실제로 그럴 법해서 고개를 끄덕거릴 때가 많다. 대화 도중에 재밌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 형의 의견은 이랬다. 많은 여성이 재밌는 사람을 선호하지만, 남성이 생각하는 재밌는 사람과는 다르다는 내용이었다.


남성은 흔히 재밌는 사람이라고 하면 화려한 입담과 움직임이 큰 리액션으로 좌중의 폭소를 유발하는 사람을 떠올리지만, 여성이 말하는 재밌는 사람이란 유희열이나 이상순처럼 대화중에 은근한 위트를 내보이는 사람을 의미한다는 것이었다. 노력해서 빵빵 터뜨리는 애드리브보다 자연스러운 웃음을 유도하는 사람에게 끌린다는 것이었다. 재밌는 사람을 규정짓는 개념이 상대적으로 많이 다르기 때문에 소개팅이 생각보다 잘 성사되지 않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충분히 일리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돈이 많고 직업이 좋고 외모가 뛰어난 절대적 개성이 있지만, 그것을 논외로 한다면 다른 부분의 개성은 분명 이해하고 있는 개념이 서로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한 것이고 내가 여성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은 잘 모른다. 게다가 성별을 떠나 사람마다 가진 생각이 다를 것이므로 마냥 이렇다고 단언할 수도 없다. 그러다가 문득 나는 어떤 사람을 재밌다고 생각할까 떠올려 보았다. 가학적인 웃음을 좋아하지 않는다. 큰 소리와 비속어가 섞인 유머는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 잘 웃는 사람이 재밌다고 느낀다. 함께 있다 보면 상대의 웃음에 나 또한 웃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웃음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 좋다. 상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웃음소리가 좋다. 너무 친하다는 이유로 선을 넘는 유머에는 재미를 못 느낀다.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오래 말하는 것보다는 여러 사람이 티카 타카로 주고받는 유머에 흥미를 느낀다. 약간의 지식이 적절히 가미된 유머를 재밌다고 여긴다.


내 주변을 떠올려 보니 그런 유머를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재미도 하나의 진화 방향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이 들었다. 생물이 진화하듯, 사회적 관계도 진화하면서 내가 느끼는 재미에 따라 관계 또한 적응하고 살아남은 것이다. 내가 느끼는 재밌는 사람들이 주변에 가득해야, 삶을 또 살아가는 힘을 얻고 이는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할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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