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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식물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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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쑤 Aug 26. 2016

몬스테라: 덜 효율적인 뿌리

예술작품을 접할 때면 으레 나는 감상을 하지 못하고 분석을 하려 들었다. 교과서에 실린 시나 소설은 읽고 공감하는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주제를 뽑아내야 하는 또 하나의 암기대상이었고, 유명하다는 그림을 접하면 이게 왜 유명한지, 화가가 뭘 표현하려고 한건지가 먼저 납득이 가야 했고, 또 유명하다는 음악을 들으면 이게 왜 그리 좋다는 건지 납득이 가야 했다. 그리고 그런 분석의 결과들은 ‘쓸모’가 있는 종류의 것이어야 했던 것 같다.


이따금씩 그래도,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마음 속 가득 들어찬 소설의 느낌에 책커버를 가만히 쓰다듬기도 하고, 그림 앞에 서서 도저히 그림에서 눈이 떼어지지가 않는 감상에 붙들리기도 하고, 음악을 들으면서 뭐라 표현은 딱 못 하겠지만 꼬리뼈즈음부터 올라오는 것 같은 뻐엉한 느낌에 벅찬 울림을 느끼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렇게 쓸모에 집착하다보니, 내가 갖고 있는 시간은 최대한 허비하지 않고 영리하게 쪼개서 생산적으로 써야만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소용있음 여부’에 대해 간간이 생각하는 속물직장인이 되가고 있었고, 내 주위에 흘러넘치는 정보들은 가능한 많이 빨리 섭렵해야만 하는 불안감이 생기고 있었던 것 같다. 무심히 켠 라디오에서 혹은 우연히 꼬리를 물고 들어간 인터넷 사이트에서 예상치 못했던 꿀정보를 얻었다거나 할 때에, 어머 그랬구나! 아, 그런 거였구나! 하는 작은 깨달음이나 감탄이 아니라, 이걸 못 봤었으면 어쩔 뻔 했어라든가 나는 아직 이런 것도 모르고 대체 뭘 한거야, 왜 자꾸 못 보고 놓치는 거야, 라는 자책과 불안이 스며드는 상황과 비슷하다. 뭔가 끊임없이 해야 하고 만들어 내서 보여줘야 하고 쓸모를 뽑아내야 했다.


이런 측면에서 생각하면 내가 식물과 함께 하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허송세월이라 할 만하다. 수시로 들여다보면서 물을 주고 분갈이도 하고 자리도 옮겨주고 기타등등 이래저래 손이 가는 일이 한둘이 아닌데다가, 비가 오면 베란다걸이에 걸어둔 화분이 비를 너무 맞을까 걱정하고, 후텁텁한 장마철에 비실대는 식물들을 보면 안 그래도 힘든 장마더위에 나도 더 기운이 빠지고, 며칠 여행이라도 가게 되면 물 줄 때를 놓쳐서 식물들이 말라죽을까 걱정하게 한다. 그런데 그렇게 들이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글쎄 식물들이 내게 주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면 뭐라고 답을 할 수 있을까 잘 몰랐더랬다. 공기정화식물을 많이 키우지만, 통풍을 잘 시킨답시고 노상 문을 열어놓고 사느라 우리집에는 식물들이 정화시킨 공기보다 밖에서 들어온 온갖 시커먼 먼지들이 더 많다. 열매를 맺는 식물이 우리집에는 없기도 하거니와, 열매식물이 있다고 해도 수확의 기쁨을 주기에는 택도 없을 것이다. 그나마 갖가지 초록의 색감이 내 눈에 만족스럽고, 감질나긴 하나 살랑거리는 향기가 내 코에 흡족하고, 새끼 잎파리가 하나씩 솟아날 때의 작은 감탄이 나의 다소 건조한 일상에 신선함을 준다는 것이, 내가 초기 단계에서 생각한 식물키우기의 쓸모였을 것이고, 이런 단적인 점들은 주로 그린인테리어라 불리는 장식적인 면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나마 이렇게 찾아낸 식물키우기의 쓸모에서도 좀 멀리 있는 것이 우리집 거실 한켠 유리병에 꽂아둔 몬스테라이다. 올 봄 초에 큰 잎줄기 하나를 들여와서 물에 꽂아놨는데, 얼마 지나면 뿌리가 나겠거니 한 것이 감감 무소식이었다. 그렇다고 죽은 것 같지는 않았는데 얼음땡한 것처럼 뿌리가 돋아날 기미가 영 보이질 않았다. 몬스테라를 들인 것은, 소위 북유럽인테리어라 불리는 뭔가 있어보이고 뭔가 무심한 듯 세련되어 보이는 이미지 때문이었다. 멋스런 인테리어 사진에 곧잘 등장하는 이 잎파리를 나도 갖고 싶었다. 그리고 얼른 뿌리를 돋아내서 화분으로 옮기고 더 크고 더 있어보이는 모습을 갖고 싶었다. 그러나 웬걸, 얼마전에는 이걸 그냥 버려야하나 싶을 정도로 너무 변화가 없었다. 대체 얘는 뿌리도 안 내고 뭐 하나, 살은 건가 죽은 건가, 앞으로도 계속 이럴 건가 싶었다. 북유럽인테리어는 무슨 개뿔, 삼시세끼에서 유해진이 돔을 못 잡고 마냥 허탕만 치던 것처럼 나도 이제나저제나 뿌리나오기만 기다릴 뿐이었다.

그러던 것이 지난 주엔가 뿌리가 났다! 다섯 달만인가 여섯달만인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줄 알았더니 제 나름으로는 보이지 않는 줄기 속에서 뿌리를 키워내고 있었나보다. 거짓말처럼 돋아나 있는 뿌리를 보고 있자니 그 순간이 그냥 신나고 좋았다. 뿌리가 난 후 얼마가 지나 드디어 화분에 심어주게 되었을 때는, 화분과 흙과 몬스테라를 요리저리 매만지고 하는 그 순간이 또 그냥 좋았다. 이런 순간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몰입과 집중, 이것도 하나의 중요한 면모이다. 점차로 몰입하는 즐거움이 사라지는 나이에 이처럼 몰입하는 기분을 느끼는 것도 실로 크다. 그리고 또 다른 중요한 면모는, 현재 순간에 대한 마음이다. 이렇게 화분과 식물을 매만지고 있는 동안에는 그냥 그것만 생각나고 좋을 뿐, 도무지 줄을 기미가 안 보이는 대출빚이나 관계가 껄끄러워진 회사 사람이나 꼬일대로 꼬여버린 채 내게 던져진 회사 일이나 누군가에게 했던 얼굴 화끈거리는 말실수나 이제는 포기해야 하나 싶게 잘 생기지 않는 아기 등등이 거의 생각나지 않고 나의 순간에서 사라진다. 그냥 흙과 식물의 냄새와 촉감이 좋고, 살아있는 생명을 보듬는다는 기분이 좋고, 화분에 잘 자리잡은 식물의 모습이 별로 내세울 것도 없지만 그냥 뿌듯하고 좋다.


그러면서 생각이 들었다. 몬스테라는 내게 좀 덜 효율적으로 살아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착착착 효율적으로 또 생산적으로 빈틈없이 시간을 쓰는 것에서 잠시 떨어져보라고 말이다. 효율적이고 정확한 분석 말고, 덜 효율적이고 덜 정확하더라도 그냥 감상을 해보라고 말이다.

시간을 쪼개고 바쁘고 열정적으로 사는 것이 필요한 만큼, 시간을 흘려보내고 멍때리는 시간도 필요하다. 쓸모없어 보이고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가져오지 않는 많은 일들이 한참 지나 돌아보면 결국 쓸모가 있고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나의 피와 살이 되어 튼실한 뿌리를 낸다. 거의 반년만에 뿌리를 내어놓은 몬스테라 덕분에 나는, 최근에 많이들 얘기하는 내려놓기, 버리기, 단순하게 살기에 얹어서 좀 덜 효율적으로 살기를 생각하게 되었다. 북유럽인테리어보다 더 흡족한 쓸모인 것 같고, 이것이 아마도 식물키우기에 대해서 사람들이 말하는 힐링이라는 것인가 싶다.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 40에 접어든 사람으로써 나는 여전히 삶의 많은 부분에서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좀 더 효율적이기 위한 것들에 (보다 더 정확히는 돈이 될 법한 것들에) 쏟아붓고 있지만, 그래도 이제는 작은 부분과 적은 시간이라도 좀 덜 효율적이고 좀 덜 물질적인 것들에 눈과 마음을 기울이려고 하는 것 같다. 번잡하고 분주한 생활의 일부분에서 잠시라도 작아보이는 것들에 쉬엄쉬엄 집중하면서 나를 다듬이질하듯 정돈하고 싶어지는 모양이다. 땀 뻘뻘 흘리며 노가다하다가 잠시 그늘에서 얼음사이다 한잔 마시고 어어~ 시원타, 하고는 큰 한숨 쉬며 나무를 올려다보듯이 말이다.


식물생각 핸드북


간단 프로필

국내 유통명: 몬스테라

학명: Monstera deliciosa

영명: Monstera

생물학적 분류: 피자식물문 외떡잎식물강 천남성목 천남성과

원산지: 멕시코


햇빛:

거실에서 키워도 괜찮을 만큼 반드시 많은 양의 햇빛이 있어야 하는 것 같지 않다. 큰 잎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고 간혹 동그란 구멍이 나 있기도 한데, 그 이유가 아래에 나 있는 잎들에게 햇빛이 통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한다. 지붕으로 들어온 햇빛이 아래층에도 가게끔 유리로 바닥을 까는 것 같다고 할까.


바람:

바람의 양에도 그다지 까다롭지는 않은 것 같으니, 역시 이따금씩 환기가 되는 거실과 같은 실내에 둬도 될 듯 싶다.


물주기:

습기가 많은 곳을 좋아한다는 것을 보면 물을 너무 말리는 것보다는 촉촉한 상태를 유지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넓은 잎에도 가끔씩 분무질을 해주면 좋다고 한다.


내한성/월동:

온실재배에 적합하다는 것을 보면 내한성이 약한 것 같지만, 거실과 같은 실내에서 키운다면 월동은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 하다.


성장:

원산지에서는 키가 20미터까지 자라고 잎파리도 지름이 1미터까지도 커진다고 한다. 몬스테라라는 이름이 몬스터와 관련이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크기만 본다면 정말 괴물이라고 해도 될 식물일 것이다. 하지만 역시 우리나라 환경에서, 그것도 실내에서 키운다면 어디까지나 중소형 식물로 살아갈 것이다.


번식:

줄기 마디에 공기뿌리같은 것이 난 부분을 잘라서 물꽂이를 해두면 뿌리가 나고 그런 후에 화분에 옮겨 심으면 된다고 한다. 나는 이제 겨우 뿌리가 났으니 조금 더 있다가 화분에 옮겨 심을 생각이다. 뿌리가 금새 돋아나지는 않는 것 같다.


매력포인트:

여러 갈래로 갈라진 큼지막한 잎이 매력적이다. 굵고 긴 줄기에 달린 커다란 잎을 잘라서 화병에 꽂아두면,  인테리어사진에도 곧잘 등장할 정도로 그 비스듬하고 무심한 듯한 모습이 참 멋지다. 진초록의 이러한 큼지막한 잎파리를 그대로 그려낸 그림을 액자로 걸어두는 경우도 많은데 이것도 역시 인테리어 용품으로 인기라고 한다.


유의사항:

물꽂이할 경우 물을 매일 갈아줘야 한다고 되어 있는데, 나의 경우를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그 외 유의사항은 별로 없는 것 같은 식물이다.


보너스:

자료를 찾다보니, 몬스테라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고 하며 열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고 한다. 열매를 잘라서 음료로 마시기도 하고 씨를 구워서 변비치료제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고 잎을 암 치료에 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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