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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식물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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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쑤 Sep 03. 2016

레몬유칼립투스: 묵묵한 배짱

강원도 양양의 모처에서 저녁으로 고기를 구워먹게 되었다. 그곳은 양양군청 근처 골목에 위치한 식당이었는데 내부 인테리어에 대하여 얘기할 만한 것이 없는 그저 맛난 음식과 정감으로 지역주민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소박한 맛집이었다. 식당 내부는 일반적인 가정집 구조와 비슷해서 거실과 거실에 면한 주방, 또 거실에 면한 작은 방 두 개 정도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와 남편은 거실에 앉았고, 나의 등뒤 작은 방에 가족단위로 온 듯한 손님들이 있었고, 내 오른편으로는 주방이 있어서 아주머니 두 분이 음식과 서빙을 맡고 있었다.


상에 차려진 반찬과 고기를 싹쓸이하듯 다 먹고 후식으로 소면을 시켜먹을까 하던 중에, 내 뒤의 방손님들이 소면 세 개를 주문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않아 나도 소면 하나를 주문했다. 뒷방손님과 나의 소면 주문에는 이렇게 어느 정도의 시간차가 있었는데, 내 주문이 있기전에 주방에서는 소면을 이미 삶고 있었는지, 서빙아주머니와 주방아주머니 간에 약간의 대화가 있었다. 지금 들어간 소면 한 개 주문을 ‘얹을 수’ 있는지에 대하여. 더 이어지지 않은 그 대화 이후 얼마 되지 않아서 주방에서는 큰 쟁반에 소면 네 그릇이 나왔고, 한 그릇은 거실에 앉은 내게로, 세 그릇은 뒷방손님들에게로 날라졌다.


새콤달콤 맛있는 김치국물소면을 먹으면서, 남편과 나는 이건 분명 십시일반일 것이다, 라면서 키득거렸다. 뒷방손님들의 소면 세개 주문을 받고서 주방 아주머니는 분명히 푸짐히 줘야지하고 소면을 넉넉히 삶았을텐데, 삶는 도중에 우리의 소면 한 개 주문이 있자, 푸짐하게 주려고 했던 소면 세개가 푸짐하지 않은 정량의 소면 네 개가 된 것이라고.


그런데 생각해보니, 거실의 상에 앉아 소면 주문 과정을 지켜본 우리로서는 키득거릴 정도의 십시일반 소면이지만, 뒷방의 손님들 입장에서 보면 삥을 뜯긴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뒷방손님들이 이 주문과정을 알았다면, 원래 우리한테 다 올 소면이었는데 왜 쟤네한테 나눠줬느냐고 투덜거리거나 빈정상해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원래 소면을 푸짐하게 차려주려던 선심을 가졌던 주인은, 내 뜻은 원래 그런 것이 아니었다라거나, 그러거나말거나 원래 양대로 소면이 나갔는데 뭐가 잘못됐냐고 되려 따질 수도 있을 것이다. 소면 하나를 두고 세 가지의 입장이 발생한 것이다.


사람들 사이의 일은 이렇게 각자의 입장 차이에서 비롯된 온갖 사연과 오해가 뒤섞여 일어나는 것이겠구나, 그렇다고 매번 구구절절 해명이 뒤따를 수도 없는 것이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사람은 종종 누군가로부터 오해를 받기도 하고 또 반대로 누군가에 대한 오해를 품게 되는가보다. 십시일반 소면과 같은 별 것 아닌 것부터 시작해서 살인 누명과 같은 엄청난 일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누군가에게서 오해를 받고 묵묵히 있는가 하면 바득바득 따져들기도 하고, 누군가에 대한 오해를 품고서 화병이 난 듯 안절부절 답답해하기도 하는가보다.

우리집 베란다 걸이에서 사는 레몬유칼립투스는 괴물인가 싶을 정도로 쑥쑥 자란다. 올해 3월말쯤 13센티미터 되는 모종을 들였는데, 지금은 82센티다. 한달에 10센티도 넘게 자라나보다. 너무 잘자라다보니, 난 타고난 가드너인가하는 착각을 하게 할 정도이지만, 한편으로는 얘를 앞으로 어찌 감당해야하나 싶기도 하다. 누군가가 조언하길, 유칼립투스 종들은 성장속도가 그야말로 폭풍성장이어서 오히려 작게 키우는 것이 관건이라고도 했고, 흙 속의 물을 워낙에 쫙쫙 빨아들이는 탓에 땅에 심을 경우에는 유칼립투스 주변 식물들이 오히려 메마름에 힘들어할 수도 있다고 했다. 나의 레몬유칼립투스는 화분에 심겨져 있어 다른 식물들을 방해할 리는 없지만, 반년사이 벌써 큰 화분으로 옮겨주기를 두 번이나 했을 정도로 정말 무섭게 자라난다. 흙마름도 다른 식물에 비할 바가 아니어서 정말 부지런히 물을 주어야 한다.


만약에 내게 정원이 있어서 이 레몬유칼립투스를 땅에 심었다면 아마 특별관리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부지런히 물을 주어야 하니 다른 식물들보다 더 들여다보아야 하고, 진공청소기처럼 땅속물을 게걸스럽게 다 먹어치우니 주변 땅에 다른 식물들을 심지 않고 비워둬야 할 것이고, 추위를 못 견디니 겨울에는 비니루를 씌워서 온실처럼 만들어주는 갖은 노동을 마다하지 않아야 할 것이고, 특유의 레몬향이 진하게 풍기니 냄새를 킁킁거리려고 자주 건드릴 것이다.


우는 아기 젖준다고, 무섭게 자라나고 게걸스럽게 물을 먹고 추위에는 젬병인 이 레몬유칼립투스는 다른 식물들 입장에서 보면 주인장의 애정과 관심을 독식하고, 다른 식물들보다 더 넓은 땅을 누리는 것으로 보이지 않겠는가. 레몬유칼립투스는, 내 본래 생겨먹은 성질이 그러한데 왜 시샘을 하느냐고 할 것이고, 주인장은 일부러 애정을 차별두는 것이 아니라 쟤를 보살피자니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식물들은 어차피 말을 못하는 존재이니 이런 불만과 오해를 정말로 품고 있는지 나로서는 사실 알 수 없지만, 개개의 식물들을 보다보면 이런 불만과 오해를 다른 식물들이 품겠거니 하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인 나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일 뿐, 식물들은 묵묵히 자신만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듯 보인다. 빨리 자라든 조화처럼 얼음땡해있든, 물을 많이 탐내든 물을 소식하든, 큰 화분을 필요로하든 그렇지 않든, 꽃을 피우든 피우지 않든, 식물은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자신의 모습과 특성과 환경을 정직하게 반영하면서 묵묵히 살아간다.


유안진의 ‘지란지교를 꿈꾸며’라는 시를 예전에 즐겨 보았었다. 아마 대학생때즈음 처음 접했던 것 같은데, 잔잔하면서도 깊이있는 것 같은 하나하나의 구절이 어린 나이에도 마음에 와닿았었다. 그래도 아마 이 시절의 느낌은 뭉근한 감동이라기보다는 겉멋에 가까운, 요새 말로 느낌적인 느낌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다가 어느 때인가 문득 생각이 나서 다시 시구절을 찾아 들여다보면, 네, 정말 그러하군요, 라는 생각에 가만히 먼 곳을 바라보게 된다. 이 시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우리가 항상 지혜롭진 못하더라도/ 자기의 곤란을 벗어나기 위해/ 비록 진실일지라도 타인을 팔진 않을 것이며/ 오해를 받더라도 묵묵할 수 있는 어리석음과/ 배짱을 지니기를 바란다.


이 구절을 처음 읽을 때는 그럼그럼 당연하지, 뭘 그게 얘기할 거나 된다고, 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은데, 이 구절이 생각처럼 그렇게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점점 든다.  굳이 머나먼 기억을 끄집어올 필요 없이 나의 현재진형행 일상에서도, 나는 묵묵히 어리석지 못하여 오해 받는 것을 못 견뎌하고 나에 대한 배짱도 없어 조금이라도 외부에서 치고 들어올라치면 고양이가 발톱을 세우듯 날카로워지곤 한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는 나 나름의 정화방법을 베란다에서 찾고 있다는 것이다. 조바심 내거나 날카로운 나의 마음도 베란다에서 시간을 보내다보면 톡탁톡탁 다듬이질되어 반듯하고 평평한 마음이 되곤 하는 것 같다.


식물들 곁에서 반복적인 움직임을 하다보면, 근간에 품었던 오해와 불만과 원망들이 몰락몰락 올라오다가도 흘려 버릴 것은 흘려보내고 미처 감사하지 못한 것은 마저 감사해하고 성급히 생각했던 것은 찬찬히 생각해보고 게으르게 미적거렸던 것은 원점으로 돌아가 홀가분하게 생각을 정리하게 된다. 아마도, 억지부리지 않고 끼워맞추려 하지 않고 남에게서 무언가를 더 얻어내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모습 그대로 초연하고도 묵묵하게 살아가는 식물들의 모습이 가진 힘이 작용을 하나보다. 레몬유칼립투스를 보며 오해와 불만과 원망의 소지를 떠올리는 것은 역시 인간만의 어리석음인가보다, 하고 생각한다.


어떤 분이 SNS에 짧게 인용한 구절이 있어, 나도 그 구절을 빌려와 인용해본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자서 묘비명 )


식물생각 핸드북


간단 프로필


국내 유통명: 레몬유칼립투스혹은 레몬검

학명: Eucalyptus citriodora

영명: Lemon Eucalyptus 혹은 Lemon Gum

생물학적 분류: 피자식물문 쌍떡잎식물강 도금양과 상록활엽교목

원산지: 호주 퀸즈랜드


햇빛:

노지의 직광이 진리인 식물인만큼 실내에서 키우면 아마 힘들어할 것 같다.


바람:

노지의 환경에서 맞을 수 있는 바람이 최적이겠지만, 햇빛을 탐하는 것에 비하면 바람은 우선순위에서 약간 뒤에 있는 듯 하다.


물주기:

흙이 금방금방 마른다. 흙이 건조하면 살리기 힘들 수도 있으니 물은 겉흙이 마르면 바로 많이 주는 것이 좋겠다.


내한성/월동:

내한성은 약해서 영상 3-5도 이하만 내려가도 힘들어한다고 하니, 겨울에는 실내로 들여주어야 한다.


성장:

원산지에서는 키가 40미터 이상까지 쭉쭉 자라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만큼은 힘들겠지만, 폭풍성장이라는 단어에 딱 맞는 식물이다. 정말 잘 자란다.


번식:

삽목도 가능하긴 하지만 대부분의 유칼립투스들처럼 삽목은 잘 안된다. 대신 씨발아는 거짓말처럼 뚝딱 잘 되는데, 키친타올을 적셔서 접시에 놓고 그 위에 씨앗을 올려놓으면 며칠 내로 콩나물 같은 꼬리가 올라온다. 레몬유칼립투스는 암발아라서 신문지를 덮어주는 게 좋다고 한다.


매력 포인트:

특유의 레몬향이 진하게 풍긴다. 너무 진해서 별로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차피 베란다에 두고 슬슬 바람결에 풍기는 향기 정도라면 오히려 진한 향이라야 코에 인식이 되지 않을까. 나는 레몬유칼립투스의 향이 참 좋다.


유의사항:

먹지 말 것. 물 말리지 말 것.


보너스:

구문초의 향을 모기가 싫어한다고 하듯, 레몬유칼립투스도 비슷하다고 한다. 또, 살균과 방부의 기능이 있어서 레몬유칼립투스의 리스를 걸어두면 잡균이 차단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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