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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식물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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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쑤 Apr 22. 2017

생화: 디오게네스의 햇빛

[식물생각 번외편]

토요일 정오즈음에 고속터미널역 꽃시장에 갈 때가 있다. 꽃시장의 영업시간이 월요일부터 토요일은 새벽0시부터 오후1시까지이고 일요일엔 아예 쉬니, 직장인인 나로서는 평일 새벽에 가거나 토요일에 가는 수 밖에 없는데, 아침형 인간과는 거리가 먼 나로서는 평일 새벽은 아예 고려 대상이 아니고 토요일도 늦잠의 꿀맛을 뿌리칠 수 없어 토요일 시장이 닫히기 전에 겨우겨우 간다.


고속터미널 꽃시장이 도매시장이니 당연한 얘기겠지만, 시중의 꽃가게에서 꽃을 사는 가격보다 아주 많이 저렴하다. 도매시장에서도 비싼 꽃 싼 꽃이 각양각색이긴 하지만, 천일홍과 유칼립투스 정도라면 만원 한장으로도 한 아름 꽃을 안아들 수 있다. 좀 더 욕심을 내서 장미나 수국을 조금 산다 해도 이만원 삼만원이면 된다. 그렇게 꽃을 두 팔 가득 안아들고 있다보면, 시중의 꽃가게들이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밖에서 사먹는 커피 두 세잔 가격에 이렇게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들을 맘껏 누릴 수 있다는 생각이 더 좋고 더 크다.


나는 생화를 사는 데 부정적인 편이었다. 며칠 지나면 시들어 버릴 텐데, 한 번 보고 말 건데 뭐, 하는 식이었다. 어쩌다 생일이나 어버이날에 꽃을 사드리면, 쓸데 없는 데에 비싼 돈 쓴다, 그래가지고 언제 돈 모아서 대출 갚고 집 살래, 하는 엄마의 의견과 일맥상통하는 의견이었다. 그러던 중에 재작년 어느 때인가, 수국과 유칼립투스로 둥글게 만든 리스를 집 현관 안쪽에 매달아 놓게 된 적이 있었는데, 퇴근해서 집에 들어서자 수국과 유칼립투스의 향이 나를 맞으면서 내 눈과 코를 흡족하게 해주었고, 그것은 그야말로 신선한 즐거움의 발견이었다. 수국과 유칼립투스가 시들어가면서 생기와 향은 점차로 잦아들었지만, 생화가 아닌 드라이플라워로 변한 후에도 여전히 모습은 만족스러웠고 내 코를 만족시켰던 매력적인 향은 코가 아닌 뇌가 기억해냈다. 그러는 한편, 꽃 도매시장의 존재를 알게 되기도 했다. 그러면서 생화에 대한 나의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고, 비싸든 싸든 꽃을 사서 잠시 누리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고, 또 생화를 말려 드라이플라워로 간직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프리저브드 플라워라고 하여 특수 약품을 사용하여 생화를 생화 그대로 간직할 수 있게 하는 방법도 있다고 하는데, 나는 그것보다는 시들어감과 말라감이 그대로 반영되는 자연건조된 드라이플라워에 더 애정이 간다. 오십이 넘고 환갑이 다 되도록 탱탱한 근육과 주름 하나 없는 얼굴을 유지하며서 변치않는 미모를 과시하려는 배우들보다는, 세월과 나이가 여실히 드러나지만 예전의 리즈 시절이 연상되는 아름다움의 요소를 간직하고 성숙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배우들이 더 좋은 것처럼.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이라는 책에서 저자 러셀 로버츠는 세간에 많이 회자된 일화라면서 낚시꾼과 컨설턴트의 대화를 얘기한다. 지금 내가 기억하는 것이 일부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느 한적한 남미의 시골 해변을 여행하던 영국 컨설턴트와 마침 그 해변에서 유유자적 낚시대 한 대를 드리우고 있는 낚시꾼 사이의 대화이다.


“낚시대를 몇 대 더 놓고, 그물도 치고 하면 물고기를 훨씬 더 많이 잡을 수 있을텐데요”    

“물고기를 더 많이 잡아서 뭘 하게요”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게 되죠”

“돈을 더 많이 벌어서 뭘 하게요”

“낚시꾼을 여럿 사서 더 많은 낚시대를 놓고, 더 많은 그물을 치면 몇 갑절은 더 많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고 그럼 더 많은 돈을 벌어서 아주 부자가 될 수 있지요”

“부자가 되어서 뭘 하게요”

“부자가 되면 이 주변의 땅을 모조리 사서 이 좋은 해변을 바라보는 리조트도 세울 수 있고 해변을 따라 상점들도 낼 수 있으니, 엄청난 부자 사업가가 될 수 있지요”

“엄청난 부자 사업가가 되서 뭘 하게요”

“그러면 더 이상 돈을 벌거나 일할 필요도 없이, 한가로이 조용하고 아름다운 해변에서 여유로운 낚시를 즐기면서 노후를 보낼 수 있지요”

“난 이미 지금 그렇게 낚시를 하고 있는데요”


이 대화는 대강 기억이 나지만, 이 대화가 책의 어떤 맥락에서 소개되었었는지는 솔직히 지금은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친구에게 이 얘기를 들려줬을 때 친구가 얘기하기를, 자신은 이 얘기를 십여년 전 <배철수의 음악캠프>라는 라디오 방송에서 들었는데 그 때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어쨌든 사람은 결국 죽게 되는 것일 뿐인데 지지고 볶고 피곤하게 살 필요가 있을까 하면서 약간의 허무주의 혹은 염세주의를 느꼈다고 한다. 또, 결과가 중요하냐 과정이 중요하냐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했는데 역시 결과가 중요한 것 아니겠느냐 하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


나도 친구의 말에 공감은 간다. 그러나 나는 책에서 이 얘기를 읽었을 때 내 안에서 반론이 제기되는 것을 느꼈다. 낚시꾼이 물고기를 더 잡고, 돈을 벌고 또 많이 벌고, 요트도 사고 리조트도 세우고 상점들과 직원들도 거느리는 부자가 되는 과정을 거쳐 다시 낚시꾼이 된다고 해서, 처음 낚시와 마지막 낚시 사이의 모든 일들과 시간들이 부질 없거나 헛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유유자적 즐기는 낚시만큼이나 물고기를 더 잡아올리는 재미, 돈벌이가 잘 될 때의 쾌감, 요트를 샀을 때의 만족감, 사업을 운영하면서 느낄 법한 자부심, 그러한 과정들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의 관계 등 낚시와 낚시 사이에는 많은 것들이 있을 것이고, 이것은 줄창 낚시만 하고 있는다면 겪어보기 힘들 것이니, 낚시와 낚시 사이의 이 모든 시간과 일들과 감정들도 또한 중요하지 않겠냐는 것이 나의 반론이다.


물론 기분 좋고 행복한 일들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들 역시 많이 생긴다. 역시 그렇게 하길 잘했어, 라는 생각이 드는 일들이 있는 반면, 완전 삽질했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일도 많다. 그러나 세상엔 마냥 나쁜 일도 없고 마냥 좋은 일도 없다. 에너지 총량의 법칙이 인생사에도 적용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항상 들고 나는 좋음과 나쁨이 같은 양이거나 같은 형태인 것은 아니지만, 무언가를 잃으면 무언가를 얻고 반대로 무언가를 얻으면 무언가를 잃는다.

인생은 B와 D사이의 C라는 말을 어디서 보았다. 탄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의 선택(choice)이라는 말이다. 낚시꾼의 이야기가 바로 이런 선택에 관한 것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낚시를 번창시킬 수 있는 시도들을 할 것인가와 계속 낚시만 할 것인가 하는 선택과, 낚시를 번창시키기 위해 어떤 시도들을 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에 관한 것이 아닐까 한다. 예전에 내가 누군가에게 내 인생은 “삽질 투성이”이라고 말하자, 그 누군가가 자신의 인생은 “삽질 그 자체”라고 응수하여 한참을 키득거린 적이 있었다. “삽질”이라는 단어는 본래의 뜻 외에 “별 성과가 없이 삽으로 땅만 힘들게 팠다는 데서 나온 말로, 헛된 일을 하는 것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국어사전에 나와 있다. 어쩌면 사람의 선택이라는 것은 결과를 놓고 봤을 때 탁월한 선택이 되거나 삽질이 되거나 하는 듯 하다.


평생 낚시대 하나를 친구 삼아 한적하고 빈한한 삶을 유지한 낚시꾼이 말년에 이르러, 아, 그 때 컨설턴트 말을 들을 것 그랬나 하고,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와 같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상념에 잠길 수도 있다. 어쩌면, 컨설턴트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어 당장 낚시대를 여러 대 들이고 그물도 치고 하였으나, 생각처럼 물고기가 많이 잡히지도 않고 돈도 많이 벌리지 않아서, 빚만 진 채로 다시 낚시꾼 혹은 일일노역자의 삶을 살게 되면서 자신의 삽질을 후회할 수도 있다. 또 어쩌면, 물고기도 더 많이 잡히고 돈도 좀 벌리는 듯 하여 사업을 확장하였는데, 한적한 시골이었던 해변 일대에 점차로 개발 바람이 일어 거대 자본 기업이 진출하는 바람에 더 이상 버텨내지 못하고 더 큰 빚을 지고 더 큰 실패와 좌절감을 겪을 수도 있다. 또, 컨설턴트의 말대로 부자가 되고 거대한 사업도 운영하다가 어느 시점에 이르러 은퇴를 하고 다시금 한적한 해변에서 낚시를 하면서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생각하고는, 아, 인생이 참 헛되구나, 내가 왜 그 모든 고생을 자처했던가, 라고 자조할 수도 있다. 반대로, 아 그 때 컨설턴트를 만났던 것이 내 인생의 크나큰 행운이었구나, 그간 인생 참 잘 살았다, 이제 더 바랄 것도 없고 지금 이렇게 말년을 여유롭게 보내니 죽어도 여한이 없겠구나,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최근 나는 중요한 선택을 하나 하였다. 짧게 요약하면 스스로 직급 강등을 선택했다. 조금 더 늘여 요약하면 6개월전 있었던 부서 이동을 물리고, 승진을 물리고, 그에 따라 올랐던 연봉을 포기했다. 영화 <박하사탕>에서 주인공 설경구가 기찻길에서 “나 돌아갈래”라고 외친 것처럼 절박하지는 않았을지 몰라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걔, 뭐 사고 쳤대?"

"아니, 진짜로 직급이 낮아진 거야?"

"그럼 연봉도 까였어?"


회사 사람들이 내가 없는 곳에서 나를 두고 이런 말들을 하는 듯한 기운이 느껴진다. 내가 있는 곳에서는 말로 혹은 시선으로, "괜찮은 거야?"라던가 "어떻게 된 거야?"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결정을 내리기까지 나만 생각하자, 내가 원하는 것에 집중하자, 라는 원칙을 중심으로 많은 고민과 생각을 했다. 사실, 고민의 과정에서 제일 신경이 쓰였던 것은 남의 시선이었으면서도, 남이 뭐가 중요해, 라며 그런 생각을 계속 내쳤다. 그런데 역시, 나는 남의 시선이 참 중요한 인간이었다. 아무리 아닌 척 해도, 남이 어떻게 볼지 뭐라고 생각할지가 너무나도 신경이 쓰였다. 남들은 당신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다, 라는 말에 진심으로 공감했으면서도 막상 내 앞에 놓인 것은 매우 불편한 마음 뿐이다. 빨리, 얼른, 후딱 시간이 지나가서 나조차도 이 상황이 가물가물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다고 내가 회사에서 아주 대단한 인물이어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가하면 그렇지도 않다.


그런데 난 크게 불만은 없다. 이따금씩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 더 높은 직급으로 일하는 것을 볼 때나, 나보다 아주 조금 더 나이가 많은 사람이 하늘같이 높은 직급으로 일하는 것을 볼 때는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맴도는 것도 사실이나 종합적으로 볼 때 나는 불만이 없다. 나는 일을 하는 것이 좋고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것도 좋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이 말하는 일에 대한 열정이라는 것은 내게는 그리 크지 않아서 죽어라 일을 하면서 몸과 마음이 소모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물론 나는 돈이 필요하고 돈 욕심이 있다.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지금도 굴뚝같다. 전세자금 대출도 아직 한참 남았으니, 지금 대출을 털어낸다해도 집을 장만하려면 또다시 새로운 대출을 끼고 살아야 할 것이다. 집을 장만할 때는 아마 또 욕심이 생겨서, 아파트 말고 온실이 딸린 주택을 짓고 싶어질 것이다. 서울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돈 먹는 하마가 주거비용이고, 나와 남편은 온전히 월급만으로 자산을 불려나가고 있는 유리지갑들이므로 서울에서 좀 산다 싶으려면 승진을 하고 연봉이 오르는 데 목숨 걸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결론 같다. 최근까지 그렇게 살아왔다. 한 달에 한번 월급이 들어오는 것이 "뽕주사"를 맞는 것이라고 나는 늘상 말했고, 통장의 숫자들을 보면 헤벌쭉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조용히 홀로 누릴 수 있는 휴식의 시간이 줄고, 즐겁게 밥 먹는 시간이 줄고, 남편과 수다 떨 시간이 위협받고, 엄마한테 하는 말 중에 바쁘다라는 단어가 점점 더 많이 등장하고, 생각하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적으로 들어오는 일을 처리하기에 급급해지고, 여유있게 산책하는 것이 아니라 답답한 마음에 무작정 걷는 일이 많아지고, 하고 싶지 않지만 해야만 하는 일들의 정도와 분량이 점차로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나를 죄어오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 페이스를 계속 유지할 것인가 멈출 것인가 조정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마흔 하나라는 나의 지금 나이에서 선택하고자 하는 앞으로의 삶에 대한 고민이었고, 내가 이루고자 하는 혹은 도달하고자 하는 지향점에 대한 고민이었다.


나는 서른 살이 되던 해에 비올라를 처음 배웠다. 초등학교 때의 리코더를 제외하고, 악기를 배운 건 내 인생 처음이기도 했다. 어려서 바이올린이나 피아노를 배우는 친구들이 많이 부러웠고, 그 중에서도 뭔가 있어보이는 바이올린을 나도 배우고 싶었고, 그래서 바이올린 개인 레슨 선생님을 구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선생님은 비올라 전공자였고, 선생님의 비올라 소리를 듣고 반해버린 나는 비올라를 배우기 시작했다. 유명 연주자들의 음악을 듣고 언젠가 연주해보고 싶은 유명한 곡들의 악보를 사면서 나도 언젠가는 이렇게 멋지게 연주할 수 있기를 바랬지만, 비올라를 잡은지 십년 정도가 흐른 지금의 내 수준은, 집 안에서 비올라를 연습하면 옆집 사람이 시끄럽다고 달려오지 않을까를 먼저 걱정해야 하는 수준이다. 초기의 낑낑대는 수준은 벗어났지만 이따금씩 녹음한 내 연주를 듣노라면 몸둘바를 모르겠다. 비올라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나는 너무나 비현실적인 지향점을 설정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할지라도 나는 비올라를 여전히 좋아하고, 내가 비올라 파트로써 8년여간 몸담았던 테헤란밸리오케스트라라는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서의 시간들과 관계들도 내 인생의 소중한 기억이 되었으며, 앞으로도 비올라는 계속 내 곁에 둘 생각이다. 비올라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어느어느 유명 연주가처럼 연주를 할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행복할 수 있을 것이리라 생각했는데, 시끄럽다고 옆집 사람이 항의하고 내 스스로 듣기에도 민망한 소리가 흘러나올지라도 나는 충분히 만족스럽고 즐거울 수 있었던 것이다.


연습을 많이 하고 각고의 노력을 투입하면 누구나 어느 정도의 수준까지는 올라설 수 있겠으나, 죽어라고 노력을 한다고 해서 누구나 아이작 스턴이 되고 우샤인 볼트가 될 수는 없다. 누구나 주인공일 수는 없고, 주연이 있으면 조연도 있고 엑스트라도 있다. 그런데 내가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이 아니라고 해서 괴로워진다면 이 세상에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는 유명한 사람이 되거나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높은 지위에 오르거나 하는 것보다는, 내가 지금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내 시간들을 보내고 있고, 내가 지금 내가 원하는 대로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고 얘기를 하고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예전에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갔을 때 이 그림을 보았다. 안타깝게도 화가의 이름을 적어놓지 않아서 누구의 그림인지는 모르겠다. 그림 속의 남자는 파란 스웨터의 올이 어두운 숲속 나무들에 걸려 풀려나가는 줄도 모르고 그림 밖 어딘 가로 나가려고 한다. 스웨터의 올이 풀려 팔뚝과 몸통이 드러나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림 밖으로 한껏 향해 있다. 표정은 자세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밝고 행복해보이는 느낌은 아니다. 그런데 이 그림은 미술관의 벽 가장자리에 걸려 있었고, 마침 그림이 걸린 벽 너머에는 햇빛이 한껏 들어오고 있었다. 큐레이터의 의도였을까. 어두운 숲속의 이 남자는 벽 너머에 있는 햇빛을 갈망하며 그림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듯 보인다. 그런데, 그림 밖으로 나가서 그렇게도 갈구하던 눈부신 햇빛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정작 자신의 파란 스웨터는 올이 풀려 온데간데 없고 헐벗은 몸만 남아 있다면, 아무리 햇빛이 있더라도 춥지 않을까. 모두가 멀쩡한 옷을 입고 있는데, 자신은 후줄근한 바지만 입은 채 상반신은 맨몸뚱이라면 당황스럽지 않을까.


자신이 대제국의 왕임을 말하던 알렉산더 대왕에게, 햇빛 가리지 말고 좀 비켜 나라고 말하던 디오게네스의 일화는 많은 사람들이 아는 얘기일 것인데, 나는 알렉산더 대왕 같은 권력자가 나타나 한 마디 건넨다면 디오게네스와 같은 배짱은 커녕 정신이 혼비백산하여 말도 제대로 못할 것 같긴 하고, 디오게네스가 “개와 같이 살라”라고 하면서 가난하지만 부끄러움도 없고 지금 이 순간에 만족하면서 살아야 행복하다고 한 견유철학에 완전히 동조할 수도 없지만, 디오게네스가 알렉산더 대왕 앞에서 말한 햇빛의 행복은 나도 고집하고 싶다. 필라델피아 미술관의 남자처럼 스웨터의 올이 풀리는 줄도 모르고 허우적대며 맹목적으로 다가가고자 하는 햇빛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순간 순간에 항상 햇빛이 있기를, 내가 굽이굽이 돌아 걸어가는 내 인생의 길목마다 햇빛이 있기를 고집하고 싶다. 남들이, 그리고 사회가 이것이 행복이다라거나 이것이 성공이다라고 정해놓은 눈부신 햋빛 대신에 내가 내 기준에서 원하는 햇빛을 생각할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열심히 일을 하고 돈을 벌고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 하고 싶지 않지만 해야만 것들도 종종 할 것이지만, 그러는 중에도 내 삶의 햇빛을 누리기 위해서 적절히 템포를 늦추고 때로는 후퇴도 하면서 앞으로의 시간시간을 즐길 것이다. 생화를 사서 생생한 아름다움과 향을 즐기고, 시들고 마른 후에는 또 그 말라버린 매력을 즐기고, 앞으로 단 한번도 홀로 연주하는 독무대를 갖지 못할지라도 비올라를 계속 곁에 둘 것이고, 학위를 받아도 승진이나 밥벌이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공부하는 것이 그냥 좋으니 공부도 계속할 것이다. 다른 이유들도 여럿 있긴 했지만, 디오게네스의 햇빛이 내가 강등을 스스로 선택하게 된 중요한 이유이고 나는 앞으로도 비슷한 상황이 생긴다면 다시금 디오게네스의 햇빛으로 내 선택을 결정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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