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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Jan 14. 2024

물 위를 달리는 마오로 수사

인천가톨릭대학교 한국순교성인성당에서

게으름과 미사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3년 동안 나는 신앙생활에 있어 참 게을러졌다. 오프라인 미사에 잘 나가지 않았다. 겨우겨우 매일미사책을 들고 짧은 시간 안에 혼자 주일 미사 의식을 치르거나, 동영상으로 온라인 미사에 참여하거나. 그마저도 안 하고 주의 기도 서른세 번으로 때우거나. 이마저도 못하고 그냥 지나가거나 말이다. 일요일 정오부터 저녁 레슨 전까지는 밥을 먹고, 여기저기 다니며 놀거나 낮잠을 자곤 했다. 레슨 일정이 제법 빡빡하게 들어차 있던 때엔 미사에 가려면 새벽 시간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는데, 보통 토요일 늦은 시간까지 내 시간을 가지며 놀다가 잤기 때문에 일요일 이른 아침 미사는 패스할 때가 많았다. 


 더 이상 핑계를 댈 수 없는 지금은 미사 참례를 하기 위해 조금 노력하고 있다. 일요일 오전과 늦은 오후에 테니스 레슨이 있다. 새벽미사가 힘들어 송도에 있는 성당들의 다른 시간대 미사를 찾다가 오후 3시에 열리는 미사를 발견했다. 바로 한국순교성인성당의 어린이 미사였다. 그런데 코로나 때는 일요일 이 시간대가 낮잠을 자며 저녁 테니스 레슨 전에 휴식을 취하던 시간이었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점심을 먹고, 씻고 나면 애매하게 2시 전후가 되는데 이때 낮잠을 자기 시작하면 미사는 물 건너간다. 최근에 그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만큼은 전략을 바꾸기로 했다. 테니스 레슨이 끝난 후 바로 점심을 먹으러 가지 않고, 집에 가서 먼저 씻은 후에 점심을 먹으러 가기로 한 것이다. 그러면 3시 미사 가기 전에 포근하고 안락한 집에 있는 게 아니고, 점심 식사를 하고 바깥에 있게 되기 때문에 성당에 바로 가면 되는 거였다.  


 그렇게 순서를 바꾸는 전략으로 무사히 2시 반 경 한국순교성인성당에 도착해서 미사에 참례하게 되었다. 어린이 미사로 봉헌되는 3시 미사. 30분 일찍 도착해서 대성당에 들어가니 마이크를 든 성가대 지도 선생님의 낭랑한 목소리와 어린이 성가대의 씩씩하고 발랄한 합창 하모니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이 연습하고 있던 성가는 나이게도 매우 익숙한 곡이었다. 그리고 멜로디는 곧장 나에게 수십 년 전 어린이 시절 나의 모습을 떠 올리게 만들었다. 아이들의 티 없이 천진하고 생명 에너지 넘치는 모습이 좋은 기운을 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순명과 겸손의 은사를 입은 마오로 성인


 미사가 끝나갈 무렵 본당 전교수녀님 중 한 분인 '안 마오로' 수녀님의 영명축일 축하행사가 있었다. 매주 거행되는 미사에서 강론은 특별한 날이 아니면 신부님이 하신다. 따라서 수녀님을 마주하거나 수녀님이 말씀하시는 걸 들을 기회는 많지 않다. 이날 화동 둘의 꽃다발과 선물 증정식에 이어 마오로 수녀님의 말씀이 있었다. 수녀님께서 어떤 말씀을 해 주실까 기대가 살짝 되었다.


 마오로? 마오로 성인? 뭔가 어색하고 낯선 이름이다. 마치 바오로 성인의 이름을 잘못 부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수녀님은 소속된 수녀회 입회한 후, 일반 신자 시절의 세례명 대신 이 낯선 새 이름을 받았다고 한다. 수녀님은 처음에 이 이름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누구인지도 잘 모르고, 바오로와 발음이 비슷하지만, 낯선 느낌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수녀님의 또렷하고 따스한 음성이 마이크를 통해 전달되었다. 마오로 수사는 어느 날 환시를 보게 되었다고 한다. 같은 수도회의 다른 동료 수사가 물을 길으러 갔다가 그만 물에 빠졌다. 급히 수도회 윗분께 그 환시에 대해 보고를 하고 안수를 받은 후에 마오로 수사는 급히 환시에서 봤던 현장으로 달려갔다. 한참 땅을 박차고 열심히 달려간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웬일인가? 마오로 수사는 분명 흙길 위를 달리고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문득 발밑을 보니 온통 물천지였다. 자기도 모르게 그는 물 위를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도술의 높은 경지에 이른 수련자와 같이 물 위를 달려 현장에 도달한 그는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동료 수사를 머리부터 한 번에 쑤욱 끌어올렸다. 환시가 없었다면 물에 빠진 수사는 구해 주는 이 없이 익사할 상황임에 틀림없었다. 누가 보더라도 이 상황은 기적이었다. 그리고 그 장본인은 마오로 수사였다. 그러나 그는 이 기적의 공로를 수도회 윗분에게 돌렸다. 자신이 행한 기적의 행위를 자랑하거나 내세우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하느님의 환시를 믿고 아무런 의심 없이 생명을 구하기 위해 달려갔다. 마오로 수사는 순명했고, 그 결과는 기적으로 이어졌다. 


 과연 순명하는 삶이란 무엇일까. 믿음이 있다 해도 절대자께 모든 걸 맡기고 따르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이유가 너무 많아, 나 같은 사람은 본받고 싶은 마음이 있더라도 현실에서는 도저히 이룰 수 없을 것만 같은 태도. 함께 성서모임을 하는 나의 사랑하는 아우들과 나눔 시간에  종종 '야훼이레'를 외치곤 한다. 하지만 걱정거리로 가득한 일상에서의 나는 '야훼이레'를 까맣게 잊고 지낼 때가 많다. 삶의 어느 때보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무거운 지금의 나에게 꼭 필요한 믿음이 바로 '야훼이레'임을 알면서도 왜 이렇게 늘 잊고 사는 것인지. 오늘 3시 어린이 미사에서 만난 어린 마오로 성인이 의심 많고 나약한 나를 위해 기도해 주셨으면 좋겠다. 


*주 (야훼이레 Jehovah-jireh: '야훼께서 살펴보실 것이다' or '야훼께서 마련하실 것이다'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설악산 해 뜰 무렵 (사진 HJ Yang)
설악산의 일출 (사진 HJ Yang)
사진 HJ 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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