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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Jan 11. 2024

키타큐슈 산책

야타이 스시, 톤다 저수지


파도치는 야타이 스시


 후쿠오카 공항에는 자주 쓰는 회사의 렌터카 재고가 없어 부득이 키타큐슈 공항으로 들어왔다. 다행히 지점이 공항 바로 옆이라 금세 차를 받았고, 몇 해가 지나도록 찾지 못했던 서쪽 바다로 차를 달렸다.


 다시 가 보고 싶은 곳은 휴대폰 연락처에 장소 이름과 전화번호를 저장해 두곤 했는데, 서쪽 바다에도 그런 곳이 있었다.


 파도치는 풍경을 바라보며 초밥을 즐길 수 있는 식당, <스시 야타이>

기타큐슈 서쪽 바닷가의 스시 야타이

 키타큐슈 공항에서 차로 약 50분을 달려 그리운 풍경과 재회했다. 모래사장이 길게 휘어 뻗어나가는 바닷가에 까만 컨테이너 박스가 예전 모습 그대로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평일인 데다 낮시간대라 이 한적한 바닷가까지 점심을 먹으러 오는 손님이 많지는 않을 거다. 해변에도 보이지 않았지만, 식당문을 열고 들어서 봐도 보이는 사람은 종업원뿐, 손님은 나 혼자였다.


 셰프에게 충전을 할 수 있냐 물었고, 그는 카운터 테이블 너머 보이지 않는 곳에 내 충전기를 연결해 주었다. 쓴 지 3년이 지나자 이제 반나절도 버티기 힘든 배터리가 다시 가쁜 숨을 한 번 크게 뱉고 잔잔히 산소를 들이켰다.

스시 야타이 맞은편 쪽 신사, 보트레이스 주차장의 희귀템

 하나씩 하나씩 접시에 올려 주는 초밥을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뱃속으로 사라지게 하자 행복한 점심은 조금 아쉽게도 짧게 끝나버렸다.


 원래 계획은 점심 식사를 하고 나서 대각선 방향 맞은편의 대중 온천에 들러 피로를 푸는 거였다. 숙박 시설이 함께 있는 온천이었는데, 2층에 뷔페식 식당도 있었다. 조용한 온천 입구에 들어서 입장료를 내려 종업원을 찾아보아도 사람이 없었다.  "스이마셍~~ 스이마셍~~" 종업원을 불러 보았다. 대답이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다 커피 자판기가 보였다. 종이컵을 하나 놓고 버튼을 눌렀다. 그제야 누군가 카운터 앞으로 나왔다. 급히 몸을 돌려 온천을 이용하려 한다고 말했다. 중년의 여자분은 연신 허리를 조아리며 답했다.


"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저희 가게는 이제 숙박객들께만 온천 시설을 개방하고 있어요. 온천만 하는 건 이제 불가능하네요. "


 아! 야타이 초밥까지는 참 순조로웠는데.. 바다가 보이는 노천온천탕을 떠 올리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 나왔다.


마음이 쉬어가는 곳, 나의 톤다 저수지


 키타큐슈에 살면서 아마도 가장 많이 찾았던 공간일 것이다. 그래서 일본을 떠난 뒤에도 출장이나 여행으로 키타큐슈에 돌아올 때면 퍽이나 자주 들르게 되는 안식처와 같은 톤다.


 이번에는 지친 마음, 무거운 생각을 안고 찾게 되었다. 톤다는 같은 표정으로 나를 맞아 주었다. 계절이 바뀌면 이 저수지도 옷을 갈아입지만, 왠지 톤다의 표정은 내게 늘 한결같게 느껴진다.


 입구 언저리에 차를 대고 걷기 시작했다. 섭씨 11도의 얼굴을 스치는 상쾌한 바람이 참 좋았다. 여기에도 사람이 거의 보이질 않았다. 좀 이기적인 마음이겠으나 내심 기대한 것처럼 홀로 이 경이로운 자연의 공간을 누릴 수 있음에 감사했다.


 내가 키타큐슈에 오면 늘 생각나는 것이, 이곳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는 점이다. 서울에서는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 모르게 시곗바늘이 휘익 휘익 돌아갔건만, 이곳에서는 아침과 점심, 오후의 햇살과 그림자, 저녁 즈음의 석양과 땅거미 그리고 어두워가는 밤이 느껴진다. 천천히 또 하나하나 확실히 말이다.


 숨이 쉬어진다. 답답하지 않은 참숨이 쉬어진다. 온통 머리와 마음을 차지하고 있던 생각의 꼬리들이 희미해지고, 달고 맑은 공기가 그 자리를 메운다. 반짝이는 윤슬을 보고, 나뭇가지들 박히는 구름 멋지게 낀 하늘을 보고, 창공을 휘돌아 나는 새들의 움직임을 올려다본다. 기분 산뜻한 발걸음으로 오솔길을 거닐고, 담고 싶은 마음이 커지는 주변 풍경 하나하나에 집중한다. 나뭇가지, 뿌리가 엉겨 붙어 서 있는 나이 많은 고목이 차분하고, 물가로 기일게 뻗쳐 잔잔히 흔들리는 가지들이 근사하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더라도 매몰되지 않고 싶다. 나를 짓누르는 생각의 공격에 무방비 상태로 서 있지 않을 거다. 딱 필요한 때에 딱 와야 할 곳에 온 거 같다. 머리를 비우고, 마음을 비우는 그 빈 시간이 필요했다. 압박감에 잠을 깨곤 하던 요 즈음의 나에게.


 보통 희망 쪽에 더 많이 기울어 있던 내가 어느샌가 좌절과 불안감에 몸과 마음을 내어 주고 있었다. 한 번 빼앗긴 뒤로는 좀처럼 쉽게 회복이 되질 않는 거 아닌가. 의지만으로는 쉽사리 역전되지 않음을 느꼈다. 지인이나 친구들에게 하소연도 하고, 조언을 청하기도 했다.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이었는데, 확실히 힘이 되어 주긴 했다. 다만 내 마음과 머리가 부정적인 쪽으로 기울어진 것이 문제였다. 달팽이관에 문제가 생긴 듯, 이명을 앓는 듯 기울어진 축이 바로 서지 못하는 게 참 힘든 점이었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그러나 인정하지 말아야 할 것까지 내어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건 아니지만, 저거까지 아닌 건 아니란 말이다. 나 자신을 나조차 믿어 주지 않으면 어쩌란 말인가.


 서쪽 바닷가야, 톤다 저수지야 고맙다. 덕분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 다음에 올 때는 예전의 생기와 에너지 다시 채워서 올게. 기대가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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