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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Paul Jan 31. 2023

좋은말 나쁜말 웃긴말

사람의 입이 가장 아름다운 시기는 3-5살 사이인 것 같다. 짧은 그 시기가 지나면 말대꾸 시즌이 찾아와서 입으로 보석을 쏟아내던 아이를 그리워하는 엄마들을 많이 봤다. (그때쯤 엄마들은 두 주먹을 불끈 쥔다.) 어린 입으로 쏟아내는 예쁜 말을 엄마들이 잘 모아서 기록해 두면 나도 가끔 엿보면서 인류애를 충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예쁘고 신박한 말을 기록해 주는 미미님 고맙습니다.)  

   

사춘기 아들과 대차게 부딪히고 있는 친구 소식을 들었다. 친구들에게도 잔소리를 4절까지 하던 그녀는 사춘기 아들에게 딱 붙어서 크고 작은 잔소리를 멈추지 않아 충돌이 많다고 했다. 주변에 하소연하면 다들 자기가 잘못하는 거라고 해서 속상해한다고도 했다. 사춘기 자녀는 누구에게나 어렵다. 우리 모두 사춘기를 지나왔지만 타인의 사춘기를 마주하는 건 어렵다. 가능하다면 마주치지 않으면 좋고. 말 한마디가 폭발사고를 일으키기 딱 좋은 때다. 그래서 그 소식을 전해준 P는 중2 아들 앞에서 말을 많이 고르고 아낀다고 했다. 그래도 아직 여행지에서 친구들 선물로 어떤 초콜릿 과자를 사야 할지 엄마한테 전화해서 물어보는 걸 보면 한참 애긴데.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아들도 사춘기 직전이라고 했다. "요즘 @@가 사춘기의 문을 열락 말락 해서 내가 옆에 있어 줘야 하는데, 재택근무가 끝나서 걱정이야."라고 근황을 전했다. 사춘기의 문을 열락 말락 한다는 표현이 귀여웠고 섬세한 아들이 사춘기를 지날 때 더 많은 시간 곁을 지키고 싶은 마음도 예뻤다.     

 

예쁘고 귀여운 시절은 빠르게 지나고 아이들이 순식간에 커버리는 게 서운하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그런데, 그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귀여움이 있더라고. 그래서 나는 괜찮아."라고 우문현답을 했다. 다만 그 시절의 예쁜 말을 기록해놓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했다. 역시 그녀는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이다. 요즘 누구나 하는 MBTI에 대한 수다를 떨다가 내가 "학생 때는 P였는데, 일을 시작하면서 F가 되었어."라고 했을 때도 그녀는 "마음을 다해서 일했나 보다." 하고 예쁘게 말해 주었다. "일할 때 감정적으로 하는 편인가."라고 하지 않고 그렇게 예쁘게 말해 주다니. 고운 말을 들을 때면 귀를 씻는 기분이다. (영조는 잠들기 전 물로 귀를 씻는 습관이 있었다는데, 그 대신 누군가를 불러 예쁜 말을 들었으면 어땠을까.)     


일주일에 한 번 성가대 연습을 할 때면 어리지 않은 어린 대원에게 참 다정하게들 대해주신다. 이제 제법 편해졌는지 말도 편하게들 하신다. 몇 주 전에는  이런 대화가 있었다.    


둥둥이, 일주일 동안 잘 지냈어? 일은 재밌었어?
네, 열심히 했어요.
재미도 있어야지. 재밌게 해야지.      


그게 뭐라고 기분이 좋았는지 모르겠다. 내 마음이 그렇다는 걸 읽은 말이라 그랬을까.


지난 주말 밤, 전화벨이 울렸고 나는 통화 버튼을 누르기 전 답하기 피곤한 질문을 받았을 때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그런 질문들은 나의 답을 원하는 질문이 아닐 수 있다는 가설을 세워봤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던진 질문이니 답을 고민하지 말고 상대의 말을 바로 유도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역시 나의 가설을 적용해 볼 기회가 찾아왔다.

     

둥둥 아 요즘 너의 삶의 모토는 뭐야?
응? 모토? 하하, 그런 게 어딨어? 그건 마치 너네 집 가훈은 뭐니 같은 질문이야. (아차! 내 대답을 기다리는 질문이 아닐 수 있다.) 너의 삶의 모토는 뭐야?     


라고 자연스럽게 넘겼다. 역시 질문은 나의 답을 기다리는 질문이 아니었다. 종종 그녀와 통화할 때면 긴장을 하게 되는데 압박 면접 같은 질문들을 하기 때문이다. 이제 그런 질문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두어 가지만 더 찾으면 될 것 같다.     


가만히 어보니 예쁜 말은 마음을 읽어주는 말 혹은 듣고 싶은 말이었던 것 같다. 웬만하면 피하고 싶은 말이 그 반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사춘기 아들과 격돌 중인 친구에게도 이 말을 전해주고 싶다. 마음을 읽어주는 말이 아니라면 말을 좀 더 아껴보는 게 어떠니. 그건 중2 아들에게 말을 아끼는 P의 마음이기도 하겠지. 그리고 너도 말을 좀 고르고 아끼도록 하자.  잘 알았니 나 자신아?   


어느 경우에도 해당하지 않지만 언제든 기분 좋은 말은 웃기는 말인데, 역시 유머가 최고다. 세상이 멸망할 때까지 유머는 살아남을 것이다. 왜냐면 유머가 사라지면 세상이 망할 거니까. 오늘도 귀를 씻는 마음으로 자기 전에 웃긴 말을 읽어야겠다. 어제 읽은 웃긴 말은    

  

...... 나라를 다스리고 싶어 한다는 것부터가 일단 사람이 좀 이상한 것 아니겠는가. 평범한 사람은 아침에 무슨 양말을 신을지도 정하기 어려운데, 온 나라 백성이 신을 양말을 정해주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은 도대체 뭘까?     


오늘은 그다음 말을 읽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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