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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Paul Jul 31. 2022

짠맛 나는 설탕

기후변화가 이렇게 진행된다면 우리 후손들은 바나나와 커피의 맛을 글로만 전해 듣게 될지도 모른다. 원두값이 많이 올랐다. 휴.(이것은 자영업자의 한숨) 인류에게 닥치는 위기들은 음식에서 빠르게  위험 신호를 보인다. 지난 2월, 국제 식량 가격 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외식 물가는 30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고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IMF 이후 최고치다. IMF 시절엔 물가를 체감하기엔 어렸으니 감히 비교는 안 되지만 국가 부도사태 시절보다 심하다는 것만으로도 현재 상황의 심각성을 알고도 남는다. 경제고통지수는 21년 만에 최고점에 올랐다고 하는데 어쩐지 상황이 앞으로 더 나빠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내가 가장 체감하기 쉬운 지표는 역시 빵값이다. 뚜레쥬르는 얼마 전 제품 80여 종 가격을 평균 9.5%씩 올렸다. 파리바게트는 올 초 진즉에 66개 품목 가격을 6.7% 인상했다. (이제는 ‘그럴 만도 하지.’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자영업자) 가게에서 재료를 주문하다 보면 무섭게 오르는 원재료 가격에 매번 심장이 두근거린다. 버터, 설탕, 밀가루는 주문할 때마다 가격이 달라진다. 문득 오래전 짐바브웨 경제 위기를 취재하러 갔던 PD 이야기가 생각난다. 인플레이션이 경이로운 수준이었는데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으면 실시간으로 밥값이 올라서 최대한 빠르게 후루룩 먹어야 했다는 웃픈 이야기. 그때 PD한테 기념으로 받은 짐바브웨 지폐엔 0이 빽빽하게 찍혀있었는데도 휴지조각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을 배경으로 한 <건지 감자 껍질 파이 북클럽>엔 곧 설탕 배급을 조금 받을 수 있을 거라며 좋아하는 편지 내용이 나온다. 전쟁 중에 모든 물자가 부족한  중에 특별히 버터와 설탕을 얻게 되는 것을 기뻐하는 모양이 신기했다.  실제 영국에서는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후 생필품을 배급하기 시작했는데 전쟁 발발 이듬해인 1940년 시작된 설탕 배급은 1953년 2월까지 이어졌다. 1940년대 영국에서 성인 1명당 주간 배급량을 보면 설탕은 226g, 버터는 56g이다. 그들의 주식을 생각해볼 때 얼마나 적은 양인지 감이 온다.     


설탕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검색을 다 보니 설탕과 전쟁, 유럽과 아메리카, 아프리카의 삼각무역, 흑인 노예의 아픈 역사까지 인류사와 복잡하게 얽힌 설탕의 이면을 한참 보게 되었다. 이미 잘 알려져서 식상하게 느낀다면 더욱 슬픈 카카오 열매와 아동노동의 관계처럼 설탕의 역사도 슬프다. 카페를 운영하는 나에게도 설탕은 중요하지만 19세기 공장 노동자들에게도 설탕은 중요했다. 당시 의사들의 논문에 따르면 그들은 전체 열량의 14%를 설탕에서 얻었다. 설탕은 역사를 관통하여 노동자의 필수품이었나 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설탕 공급량은 1/3로 줄었다. 태평양전쟁으로 필리핀을 비롯한 미국의 설탕 공급처들이 위태로워졌고 수입이 완전히 막힌 데다 전쟁통에 하와이 사탕수수 재배도 급감했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 실시한 식량 배급 첫 품목은 당연히 설탕이었다.     


작년 봄 TV를 보다가 엄마가 공장에서 생산되는 설탕을 먹게 된 지 얼마 안 되었다고 말해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설탕 없는 세상을 살았다고? 서민들 생활에 설탕이 들어온 게 그렇게 최근이라고? 평소 정보를 뒤죽박죽 기억하는 엄마가 못 미더워 찾아보니 이번만큼은 엄마가 맞았다.     


우리나라에 근대화된 설탕공장이 들어선 것은 1953년이었다. 고 이병철 회장이 부산 전포동에 제일제당 설탕공장을 지은 것이 최초의 현대식 설탕공장이었다. 당시 설탕 1근(600g)은 300 환으로 소고기보다 2배다 비싸게 팔리던 시절인데 제일제당이 설탕 값을 100 환으로 정했단다. 1960년대 들어서야 음식을 만들 때 설탕을 쓰기 시작했다니까 엄마의 아주 어린 시절엔 설탕 없는 음식 맛이 더 익숙했던 것이 맞다.      


이렇게 찾아보니 설탕만으로도 인류의 역사를 의미 있게 짚어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일본인들이  왜 그렇게 설탕, 커피, 빵, 밀가루 등등 온갖 식재료를 잡고 인류사를 쓰고 싶어 하는지 조금 이해가 된다. 매일 반죽을 하면서 설탕을 쓰는 입장에선 최근에 설탕을 보는 눈이 더 아련해진다. (아이코, 이러다 눈물에 설탕 젖겠네. 이러다 내 설탕에서 짠맛이 나겠어.)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전 세계적으로 설탕 공급이 부족해지자 대체제로 사카린이 인기를 끌었다. 혹시 인류의 역사가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서 내가 지금 먹던 것들의 대체제를 먹어야 하는 날이 오면 정말로 거기에선 슬픈 맛이 날 것 같다. 너무 과한 상상인가. 그렇지만 우리는 지나친 상상으로 여겼던 어떤 일들을 현실로 맞이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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