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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Paul Apr 14. 2022

미움에 대한 보상

천둥벌거숭이 같은 나를 어르고 참아주고 키워준 사람들이 있다는 걸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억하고있다. 그 와중에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고 밀쳐서 울리던 사람들은 더 또렷이 기억한다. 7층 휴게실에서 눈 위로 치켜뜨고 했던 뒷담화의 주인공들, 9층 화장실에서 귀신처럼 울며 이를 갈게 했던 주인공. 11시 퇴근 지하철 안에서 1시간을 거슬러 사무실로 돌아오게 했던 주인공. 억울한 눈물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었던 주인공. 그 이름들을 잊지 않고 있다. 나를 괴롭혔던 사람들이 나중에라도 꼭 그 대가를 치르기 바랐다. 가능하다면 내가 알 수 있는 곳에서.    

  

고마운 순간은 그림처럼 각인되어 있다. 입사 첫 주에 퇴근길에 나에게 대본을 고쳐보겠느냐고 했던 팀장님은 다음 날 아침 편집실로 불러 나를 앉혀놓고 그림을 하나씩 넘기며 내가 고친 대본과 그림을 연결하며 첨삭지도를 해주셨다. 좋은 작가의 글쓰기 1장 같은 이야기였다. 내 기억력 탓에 많은 걸 잊었지만 잊지 않은 것들도 있다.      


그다음 편집실에 앉았을 때는 내 옆에 조연출이 있었다. 프롤로그를 편집하면서 어떤 그림을 붙이면 더 매끄러운지, 음악과 그림이 서로 같은 리듬을 탈 때 어떻게 되는지 알려주었다 그다음엔 어느 PD님이 가편을 하는 날, 나를 부르지도 않은 편집실에 앉아있었다. 10년이 넘게 지났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어떤 아이템의 방송이었는데, 취재도 편집 깔끔하게 하시는 분이니까 옆에서 가편을 보면 도움이 되겠다 싶어 PD님의 허락을 구하고 편집실에 들어갔다. 내향형 PD 내향형 막내 작가가 비스듬한 구도로 앉아있었고 편집기를 탁탁 두드리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가끔 PD님이 이 중에 어떤 그림이 더 좋으냐고 물으면 답을 하기도 했다.      


1년쯤 후 여름엔 꽤 긴 결방이 이어졌고 선배들은 여름휴가를 떠났다. 나도 결방을 맞아 쉬어야지 했지만 팀장님이 나를 잡았다. 결방을 맞아 특별 과제를 주셨다. 아이템 3개를 찾아 촬영 구성안을 써보는 숙제였는데, 아이템 3개는 그동안 찾아놨다 까인 아이템 폴더에서 아쉬웠던 것 3개를 골랐다. 그중 멕시코 납치 산업(이라고 불릴 만큼 심각한)에 대한 아이템의 촬영 구성안을 쓰고 휴가는 끝이 났다. 그래도 굳이 시간을 내서 과외의 지도를 해주시는 수고와 배려에 감사하는 마음은 지금도 잊지 않았다.      


고마운 것들을 기억하는 만큼 울분이 차오르는 순간도 기억하고 있다. 글로 쓰지는 않겠다. 호옥시 우연히 그 주인공이 이 글을 접하게 될 먼지 한 톨만큼의 가능성을 배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의 걱정 보따리란.) 편집실은 쓸모가 많은 공간이었다. 나를 괴롭히는 그들로부터 핑계를 대고 도망치기 좋았고, 일하다 뒤돌아 야식을 펼치고 먹은 후 소파에 누워 쪽잠을 자기도 용이했다. 막내들끼리 모여서 오늘의 화딱지 모먼트를 공유하기도 좋았다. 몇 시간만 떨어져 있다 모여도 우리에겐 새로운 사건들이 생겼다. 그래도 우리는 그 일을 좋아했다. 그래서 미래에 써야 할 체력과 정신력을 가불 해서 20대 중반에 몰빵 해 주었다.      


이직한 회사에서는 어려운 선임들이 몰빵 된 팀에 떨어져서 입사 첫 주엔 만나는 분들마다 힘내라는 인사를 해주셨다. 반가워요. 환영해요. 뒤에 힘내요.라는 말이 따라오는 게 의아했지만 일주일 만에 다 알아버렸다. 힘내야 할 원인을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그래도 내가 아는 모든 사람 중 가장 긍정적인 성격의 동료 덕분에 조금 상쇄됐고 우리 회사 통틀어 가장 인자한 분이셨던 팀장님 덕분에 조금 더 상쇄되어 무사히 수습 기간을 마쳤다. 고마운 건 가슴에 새겨지는데 나를 괴롭혔던 것들은 뇌에 새겨지는 것 같다.


그래도 어떤 미움은 시간이 지나니까 더러 희석되기도 했다. 미움에 드는 에너지가 큰 탓인가 보다. 이제 어떤 미움에까지 미칠 에너지가 없어져서 미운 마음이 흐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까지 남는 미움을 ‘뒤끝’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나의 미움을 받으라.      


내 기억의 형태를 표현하자면 난시인이 안경을 벗고 보는 풍경과 같다. 빛 번짐으로 형태가 말끔한 것이라곤 없는. 그러니까 어떤 기억 속에서 고마움과 미움은 경계가 애매하게 번져있다. 명확하지 않은 형태로 남아있다. 무척이나 고마운데 그 안에 잊을 수 없는 미움의 감정이 섞여 있기도 하다. 두 가지가 번져서 섞이면 되짚어볼 때마다 괴로움이 남는다. 안경으로 시력을 교정하듯 감정을 교정할 수 있는 도구가 있다면 좋을 텐데. 가끔은 되돌릴 기회가 없어서 미움이든 고마움이든 더 무거운 쪽으로 감정을 정리할 수 있다는 게 다행이다 싶을 때도 있고 몇몇 기억에 대해서는 끝나지 않는 저울질이 이어진다. <이터널 선샤인>의 주인공이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순간이다. 나도 누군가의 머릿속을 해 집고 다니는 오묘한 기억의 원인이 되고 있을 거란 생각도 한다. 그런데 그런 일들에 대해 미안하기보다는 그냥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사는 거구나 하는 결론이 나는데, 내가 아직 사람이 덜 됐나 보다.      


내게 고마운 사람들 중 이제 어디에서 무얼 하며 사는지 모를 그들이 나에게 베푼 만큼 어디에서든 잘 살고 있으면 좋겠다. 나를 괴롭게 했고 지금도 가끔 괴롭게 하는 사람들은 사소하고 하찮은 일로 조금만 힘들었으면 좋겠다. 너무 큰일은 당하지 말고. 그들에겐 머피의 법칙 같은 일이 조금 더 자주 벌어지면 좋겠다. 그래야 세상이 조금 후련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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