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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쿠나 Jan 31. 2022

부부싸움은 안 합니다만

종종 방 공기가 싸늘해질 뿐

새로운 해가 한 달이나 지났건만 아직도 지난해가 남긴 찌꺼기를 정리하지 못한 것 같아 글로나마 후련히 보내보려 한다. 지난해, 나를 괴롭게 만든 부분들을 돌아보니 남편과 사이좋게 지내지 못한 순간들이 크게 다가왔다.


해외로 이민 온 후, 인간관계의 폭은 가뜩이나 협소해졌기에 가장 가까운 남편과 딸과의 관계가 나의 삶의 질에 95 퍼센트 정도는 영향을 미친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남편과 나는 자주 싸우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가끔 감정이 격해질 때가 있고 (주로 내쪽에서) 신경전도 은근하게 일어난다고 (나는) 느낀다. 부부싸움을 한다고 말하기에는 애매한, 그저 방에 싸늘한 공기가 차 들어오는 날들이 많았을 뿐. 원인 제공이 나 때문인지 나의 기분을 상하게 만든 남편 때문인지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수준의 고차원적이고 선이 모호한 질문이다.


나는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고 관계에 있어 조금의 분쟁이나 대립도 견뎌내지 못하는 사람인데 결혼 후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사소한 듯 사소하지 않은 대립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었다. 그게 결국 나를 너무나도 괴롭게 만들었고. 남편이 너무 얄미울 때 아니, 그냥 미울 때도 많다. 남편 입장에서도 내가 정말 꼴 보기 싫을 때가 자주 있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남편의 말이나 행동이 신경에 거슬리는 순간부터 내 감정은 극심한 피로를 느끼고 날이 서진다.


남녀가 대립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대화를 시도하고 또 서로를 알아가며 이해가 깊어질 수도 있다는데 글쎄. 적어도 나는 화를 연료 삼아 긍정적인 결과물을 낼 수는 없다고 잠정 결론지었다.


어쨌든 나는 올해, 감정 소모의 피로도에 지쳤던 것 같고 더 이상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를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어린아이를 키우는 것만으로도, 나를 챙길  있는 시간 1 1초가 모자라다. 결국 내가 부정적인 감정에 침잠되지 않는  나를 아껴주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꽁한 마음을 내어주는 것조차 나의 소중한 에너지를 빼앗기는 거라는 생각으로. 그러려면 어쩔 수 없이 남편과 잘 지내야 한다.


대립을 최소화하는 데에는 소극적인 방법과 적극적인 방법이 있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소극적인 평화 유지법은 기대치를 낮추는 것이다. 가끔 시도해보는데, 이건 '부정적인 생각하지 않기'와 비슷해서 기대치를 낮춰야지 하는 생각 그리고 노력 자체에 이미 원래 기대치를 깔고 있기에 효과를 많이 보지는 못했던 것 같다.


적극적인 평화 유지법은 (이번에 내가 시도해보려는 것인데) 우리 집에 온 귀한 손님을 대하듯 하는 것이다. 오은영 박사님이 어딘가에서 자녀는 손님을 대하듯 다뤄야 한다고 했는데, 그 가르침을 남편에게 적용해 보려고 한다. 한발 짝 떨어져서 조금은 거리가 있는 사람을 대하듯. 이렇게 적으면서 벌써 기분이 상해지려고 하는 건 내 기분 탓이겠지.


누군가 며칠 맡겨놓은 소중한 강아지를 대하듯, 남편을 대해 보자. 예뻐서 잘해주는 게 아니라 잘해주다 보면 예뻐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물론 길어야 3일 갈 수 있는 가능성이 다분하지만).


어쩌면 내가 죽었다 깨어나도 이룰  없는 현실 불가능한 새해 목표를 세웠는지도 모르겠다. 새해라는 기운에 취해 내가 감당할  있는  이상의 무언가를 해내려고 하는 것을 아닐까. 평행선의 끝을 맞춰보려고 하는, 다른 사람은 못해도 나는 맞출  있을 것이라는 미련한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새해 다짐 1번으로 남편에게 잘하겠다는 건 사실 나를 위한 것이다. 내 마음을 지키고, 시간을 아끼고, 보다 생산적인 에너지를 나에게 쏟기 위한.


덧 1. 이 글을 읽으면 이 사람은 남편이 미워 죽겠나 보다 싶을 수도 있겠지만 가끔 미워 죽겠을 때도 있는 건 사실이지만 늘 그런 건 아니라는 점을 그래도 분명히 밝혀두고 싶다.


덧 2. 이 글을 혹시나 남편이 읽는다면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누명을 썼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텐데,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걸 보면 그래도 사랑하기 때문이겠지 (라고 급히 수습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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