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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Paul Jul 31. 2023

나도 그러고 싶지.


같은 핏줄인데 동생과 나는 다르다. 엄마의 둔한 운동신경을 그대로 받은 나는 학창 시절 내내 100m 달리기를 19초 아래로 뛰어본 적이 없다. 운동회 때도 달리기가 싫었다. 나의 목표는 언제나 꼴찌 면하기였다. 가족들도 친구들도 “둥둥이는 운동 신경이 전혀 없어.”라고 거리낌 없이 말했다. 당연히 동생도 나와 같을 줄 알았는데, 3살부터 구름다리를 겁 없이 오르던 동생은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급기야 반 대표 계주선수가 되었다. 엄마는 유전자의 혁명인 듯 기뻐했고 할 수 있는 모든 경로를 통해 동생의 운동신경을 자랑했다. 비교군으로 나를 들이대는 건 당연했다.       


동생은 막대기 같은 나와 달리 몸도 유연해서 초등학교 때는 한국무용 비슷한 것도 잠시 했었다. 잘하지 못하면 좋아하기도 어렵다. 자연스럽게 나는 운동과 멀찍이 거리를 두는 삶을 살았다. 그나마 배드민턴에 재미를 붙여서 여름밤에 동생을 끌고 공원에 나가곤 했는데, 이제 동생은 나와 배드민턴을 쳐주지 않는다.      


불공평해. 같이 치는데 왜 나만 자꾸 공을 주워. 렐리가 안 되잖아. 나만 땀을 흘리고 운동을 너무 많이 하는 거 아냐? 언니는 왜 땀을 안 흘려?    
나도 그러고 싶지, 나도 렐리 하고 싶고 네가 실수하면 공을 줍고 싶은데. 뭐 다 내 맘 같지 않잖아.      


결국 동생은 배드민턴 보이콧을 선언했다. 쳇. 운동 많이 되고 땀 흘리면 좋은 거 아닌가.      


마지막으로 방콕에 갔던 4년 전 가을. 새로운 뭔가를 찾다가 동생과 밤 자전거 투어를 예약했다. 목요일 밤이었고 비가 촉촉이 내렸다. 자전거 투어는 예약자 상황에 따라 최소 2명부터 최대 10명이 될 거라고 했는데 만남의 장소에 도착해 보니 날씨 탓인지 다른 예약자들이 투어를 취소하는 바람에 2인 프라이빗 투어가 되어버렸다. 이런 게 개꿀인가.


비는 천천히 잦아들었고 우중 라이딩은  밤거리의 운치를 더 해주었다. 다만 서툰 라이더에게 비에 젖은 거리는 위험한 조건이었다. 물론 비가 아니었더라도 별 다르지 않았겠지만. 인솔자, 나, 동생 순으로 4시간 라이딩을 하는 동안 나만, 나만 수없이 넘어지고 부딪혔다. 인솔자가 앞장서서 달리며 "여기는 길이 미끄러우니 천천히 달리세요", "커브가 많으니 조심하세요", "골목이 좁으니 천천히 오세요" 등등 주의사항을 미리 전달해 주었지만, 모든 구간에서 우당탕탕 부딪히고 넘어지는 통에 인솔자도 동생도 여러 번 멈춰 서야 했다. 마지막 구간에서는 유턴을 하다 말고 냅다 넘어져서 근처에 서 있던 경비아저씨마저 달려오게 만들었다. 수치스러운 피날레였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엉덩이와 다리가 퍼즐처럼 조각조각 따로 노는 것 같았다. 비록 몸은 엉망이었지만 다시 해보고 싶을 만큼 흥미진진하고 좋은 경험이었다. 인솔자가 찍어준 사진을 보면서 좋았던 기분을 되짚어보는데, 그제야 동생은 하고 싶었던 말을 했다.


일부러 그러는 거야? 인솔자가 말해주는 걸 하나도 안 듣네. 다 말해줬는데 왜 저러지 싶었다고. 왜 그래?   
네가 뭘 알아? 나도 잘 타고 싶지. 누군 넘어지고 싶냐.  


엄마가 자랑삼았던 운동신경을 타고난 동생은 '난 모르지' 하며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사실, 넘어지기 전에는 곧 넘어질 거란 느낌이 온다. 가게에서도 그릇을 깰 때 느낌이 온다. 곧 컵을 놓칠 것이다. 깨뜨릴 것이다. 미래를 보는 초능력일 수도 있을까. 다만 그것이 0.00001초 후의 미래라 막을 수 없다는 것뿐.


내 맘대로 안 되는 게 너무 많다. 내 몸도 내 맘대로 안 되는데 뭐. 그렇지만 그런 푸념도 너무 올드패션이다. 정확히 파악해 보자. 원래 세상은 맘대로 안 되는 게 디폴트다. 뭐든 그렇다. 그러니까 내 뜻대로 되는 게 있다면 의심해 봐야 한다. 이게 맞아? 왜 이럴까?    


가게도 내 맘대로 안 되고, 성가대 지휘자님이 아무리 발성을 설명해도 그게 내 맘대로 안 된다. 어깨에 힘을 빼고 배를 펌핑하는 거. 고음을 낼 때는 입천장 모양을 이렇게 이렇게 하고 소리를 정수리 높이로 띄우는 거. 설명을 들으면 무슨 뜻인지는 알지만 아무리 애써도 그렇게 되지가 않는다. 배와 허리로 소리를 단단히 받쳐주면서 목구멍을 열어 근육으로 버티고 소리를 내는 거. "아-"하고 이해는 하지만 실전으로는 안 된다. 오늘도 모음을 둥글게 발음하는 것에 대해 속으로 한참 생각했다.

      

게다가 아직도 악보를 읽다 딴생각을 하면 바로 음정을 틀린다. 마치 베이킹 처음 시작했을 때 잠깐 딴생각을 하면 티가 나던 것처럼. 악보를 읽는 건 늘 어려워서 내 음악적 소양을 자꾸 낮춰보게 된다. 박자와 음정을 제대로 읽고 싶은데. 나도 그러고 싶은데. 지휘자님은 우리가 실수하는 부분을 잡아내서 어떻게 틀리는지 흉내 내시는 걸로 우리를 많이 웃겨주신다. 웃으면서 씁쓸하다. 너무 정확히 실수를 짚어서 따라하시니까. 겉으로 웃지만 속으로는 ‘지휘자님이 흉내 내는 그 사람이 바로 나예요.’하고 운다.     


연령대가 높고 나 같은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지휘자님은 악보를 최대한 많이 오래 익혀서 익숙해질 만하면 디테일을 조금씩 넣는데 어떤 악보는 1년째 읽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악보가 돌을 이하면 성가곡으로 올리겠다고 하시는데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정말 그렇게 될 거 같다. 지휘자님은 안 되면 오래오래 될 때까지 해보자는 방식으로 우리를 훈련시키고 있다.     


알고 보면 모든 게 다 이런 식이다. 안 되는 걸 되게 해야 한다. 오늘 잠이 안 오는 이유 내 맘대로 안 되는 일들 때문이다. 생각을 오래 하면 위험해질 것 같아서 억지로 자보려고 불을 끄고 누웠지만 뒤척거리다가 결국 남의 집에서 눈치잠자는 사람처럼 모로 누워 말똥말똥 눈을 떠버렸다. 지금은 다시 불을 켜고 노트북 앞에 앉아있다.  내 맘대로 되는 거 없지만, 가만히 있으면 안 되니까. 나도 지휘자님처럼 방법을 찾아야 하니까. 얼마 전 봤던 <쇼생크 탈출>도 떠올랐다. 불안에 떠밀리지 않기 위해  바쁘게 머리를 굴린다. 맘대로 안되지만, 뭐든 되는 걸 찾아보기 위해.      


아까 침대에 눈을 질끈 감고 누웠을 때부터 오늘 성가대 연습곡이 자꾸 머릿속을 맴돈다, 언젠가 지휘자님이 말씀하셨다. 이렇게 오랫동안 많은 곡을 연습하는데 일주일 동안 적어도 한 곡은 머릿속에 맴돌아야 정상이라고. 오늘 머릿속을 맴도는 곡은 2주 전에 처음 읽은 악보다.      


네가 물 가운데 지날 때 너와 함께할 것이라.

네가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널 침몰 못 하리.

네가 불 가운데 지날 때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너는 내 것이라. 너는 두려워 말라. 너는 내 것이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주중에 열심히 영상 보면서 익혀야겠다. 그리고 머릴 맴도는 이 곡이 나의 기댈 나무가 되면 좋겠다. 안 되는 걸 되게 하는 방법을 찾아내려고 아등바등하느라 지칠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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