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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 Dec 09. 2015

18 오늘도 여행은 계속된다

포르투갈 리스본 & 포르투

18

오늘도 여행은 계속된다

포르투갈 리스본 & 포르투


유럽 대륙 서쪽 끄트머리에 자리 잡은 나라, 포르투갈은 접근부터 쉽지 않았다. 이른바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타고 무려 9시간 40분을 달리고 나서야 비로소 수도 리스본에 도착할 수 있었다.


리스본과 포르투로 이어졌던 포르투갈 여정은 잔잔하고 여유로웠다. 강렬한 인상이나 커다란 감동을 주는 건축물·예술작품·이야기를 만나진 않았지만, 남루해서 정겨운 풍경과 따뜻한 햇살이 늘 함께했다. 포르투갈의 기록은 여행 도중 적었던 글 두 편으로 갈음하고자 한다.



2014년 12월 7일, 리스본


따뜻한 햇살이 오래된 도시를 노랗게 물들이고 있다. 이른 아침 도착한 리스본. 고요하고 추웠던 도시는 서서히 깨어나고 있다. 숙소 체크인은 오후 2시. 일단 짐을 맡기고 사람들이 돌아다니기 시작한 도시를 둘러보고 있다. 그러다 잠시 카페에 앉아 되는 대로 장광설을 풀어보고자 한다. 무슨 얘기를 하게 될진 잘 모르겠다.


여행을 하며 여러 가지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깨먹었다. 선글라스 분실을 시작으로 카메라 번들렌즈와 스마트폰 액정을 박살냈고, 급기야 노트북 충전 어댑터까지 분실. 그 와중에 10유로짜리 한 장, 뮌헨과 마드리드에서 1일 교통권 한 장씩을 분실했다. 그래도 나는 양호한 편이다. 여행하며 본 사람 중엔 약 100만 원 상당의 돈을 도둑맞거나, 카메라와 노트북이 든 가방을 통째로 분실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그리고 나의 여행은 이렇게 계속되고 있다. 잠시, 혹은 길면 하루 정도는 울분과 비탄에 빠질 수 있겠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다음 여정을 꾸린다. 저렴한 선글라스와 고물 스마트폰을 찾아 장만하고, 여행 경비를 축소하고, 새 배낭과 디지털 카메라를 구입한다. 여행은 자전거를 타는 일과 비슷하다. 발 구르기를 멈추면 자전거는 넘어진다. 마찬가지로 이 소중한 여행을 망치지 않으려면, 발 구르기를 멈춰선 안 된다.


삶은 종종 여행에 비유된다. 여행의 목적은 돈도, 남들과의 비교도, 자랑도 아니다. 둘러보고, 만나고, 먹고, 마시고, 느끼고, 웃거나 울며 단지 나아가는 게 목적이라면 목적이다. 여행과 마찬가지로 삶을 향해 짓쳐들어오는 상실과 파국도 수없이 많다. 왜 그 앞에선 여행자처럼 의연하기가 어려운 걸까…. 여행을 끝내고 한국에 돌아가 다시 시작할 새로운 여행에서는 더도 말고 딱 지금처럼, 여행자 신분의 나처럼, 상실과 파국 앞에 의연한 내가 되고 싶다. 어차피 삶은 계속되니까, 또 계속되어야만 하니까 말이다.


스페인의 고도(古都) 톨레도엔 대성당이 하나 있다. 과거 이곳엔 성모가 나타났다고 하는데… 그래서 성당 한 쪽엔 이를 증명하는 신비의 돌이 하나 있다. 뭐가 신비한가 하니 만지면 축축한데, 손을 떼고 손을 보면 물기가 없다. 이 돌을 만지며 한 가지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가이드는 설명했다.


유럽엔 이처럼 소원을 비는 장소가 곳곳에 차고 넘친다. 늘 그 장소들을 그냥 지나쳤던 나는 이날 처음으로 진심을 담아 소원을 빌어보았다. 세파에 휘둘리지 않고 행복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와, 그 선택을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갈 수 있는 추진력을 달라고 말이다. 어쩌면 세 달 전 퇴사를 결심할 당시의 나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리고 지금 행복한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이번 여행은 금쪽같은 시간으로 남을 것이다.


햇살이 창 너머에서 사선을 그리며 카페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크리스마스 장식이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몇몇 사람이 소파에 기대 졸고 있다. 평화로운 풍경이다.




상 조르지 성(城)에서 내려다본 리스본의 풍경


리스본 시내를 내달리는 트램


제로니무스 수도원. 탐험가 바스코 다 가마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발견기념비. 대항해시대를 열었던 포르투갈의 용감한 선원들과 그들의 후원자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발견기념비에서 내려다 본 벨렝 지구의 해안가


벨렝 탑. 4층짜리 등대다. 1983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에 올랐다.





2014년 12월 10일, 포르투


포르투의 한 와이너리에서 사온 칩 드라이 포트와인이란 걸 호스텔에서 혼자 한 잔 마셨다. 와인이라지만 도수가 20도에 달한다. 와이너리 투어를 받으면서 세 잔 마셨고, 아까 햄버거를 먹을 때 맥주도 한 잔 했으니 오늘은 술을 조금 마셨다.


그런데 잠이 안 온다. 잠이 오는 대신, 여행하며 보고 들은 수많은 이야기들이 갑자기 구름처럼 뭉게뭉게 피어나고 있다. 그러면서 새삼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사연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인데… 그러니까 예를 들어 한국인들이 각양각색인 것 같아도, 외국에 나와 한국인들을 떠올려 보면 다들 비슷한 모습이듯… 내 주변 인맥들 역시 각양각색인 것 같아도,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아온 사람들을 연달아 만나다보니 내 주변 인맥들도 뭔가 인생사 모양새의 편차가 크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모두가 조금은 마음이 헐거워진 여행지에서 우연히 낯선 누군가를 만나 툭툭 내뱉는, 하지만 절대 툭툭 내뱉을 만한 게 아닌 무게의 사연을 듣고 있다 보면 마음이



하고 요동칠 때가 종종 있다. 오우… 그러한 길을 걸어왔구나. 그런 삶을 품으며 나아가고 있구나. 열심히 살지 않는 사람 누가 있겠고, 세파에 시달리지 않는 자 누가 있겠으며, 고민이 없는 자 누가 있겠냐만… 실제로 그 사연을 구체적으로 접하고 있다 보면 마음이 심하게 요동칠 때가 부지기수였다.



하는 그 순간마다 아니 나란 놈은 도대체 뭐하는 놈이야? 나이에 비해 너무 편한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닌가? 나는 혹시 갓난아기 같은 그런 존재? 그래서 머리가 큰 것인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면서 나의 미래와 한 번 주어진 이 마지막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그리고 또


새삼 생각한다. 비수기… 방학을 맞은 대학생보다는 이런저런 사연 있는 사람이 모이는 시기에 여행을 온 게 행운이었구나, 그리고 그중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게 참 나의 크나큰 복이구나… 라고 말이다.


그래서 술 많이 마신 김에 중간 인사 한 번 올리고 싶다. 이역만리에서 만난 여러분 모두 정말 반가웠고 고마웠습니다!




도루 강변에 자리 잡은 한 건물 바깥에 빨래가 널려 있다.


도루 강변의 풍경. 오른편의 보이는 것은 동 루이스 1세 다리다.


포르투의 대표 시장인 볼량 시장의 모습


테일러 와이너리에서 와인이 담긴 오크통이 줄지어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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