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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 Dec 12. 2015

20 안토니 가우디의 삶

스페인 바르셀로나

20

안토니 가우디의 삶

스페인 바르셀로나


천재 예술가란 거칠게 표현하자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내는 사람’ 아닐까. 지금까지 찾아볼 수 없었던 세계. 누구도 떠올리거나 상상할 수 없었던 세계. 고정관념과 낡은 반복에 익숙한 범인(凡人)은 이 새로운 세계 앞에서 큰 충격을 받는다. 천재 예술가를 향한 나의 동경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늘 그들의 삶을 부러워했고, 능력과 여건만 받쳐준다면 고민의 여지없이 그들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해 왔다.


프란츠 카프카의 표현을 빌리자면 천재 예술가는 ‘잘 드는 도끼를 만들고 부리는 사람’이라 할 수도 있겠다.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는 거지? (중략)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 (카프카가 친구 폴락에게 보낸 1904년 1월 27일자 편지글의 일부)


이런 면에서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만난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는 분명 천재 예술가라 할 만했다. 건축물은 그림이나 음악과는 확연히 다르다. 감상이라는 예술적 목적보다 실용적 목적이 더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우디의 건축물은 보는 이에게 그림이나 음악보다 더욱 큰 울림을 주고 있었다.


일단 생경한 외양이 입을 벌어지게 했다. 전에 본 적 없는 기괴한 곡선과 야릇한 색감이 충격을 줬다. 건축물 속에 숨은 수많은 의미와 과학적 장치 역시 놀랍기는 마찬가지. 천재가 숨겨 놓은 의미와 과학적 장치를 범인이 대번에 눈치 채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가이드의 도움을 받았다. 가이드는 구엘 공원부터 카사 비센스, 카사 밀라, 카사 바트요, 사그라다 파밀리아(성 가족 성당), 구엘 저택, 그리고 가우디의 첫 작품인 레알 광장의 가로등까지 총 일곱 작품을 살펴보는 동안 추가적인 설명을 덧붙이며 충격을 증폭시키곤 했다.




구엘 공원 전경. 사진 뒤편에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것이 ‘자연의 광장’이다. 광장 바닥엔 고운 모래가 깔려 있다. 


‘자연의 광장’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 천장은 구름과 태양을 형상화한 모습이다. 이곳엔 과학적 장치가 하나 숨어있다. 힌트는 위를 향해 오목하게 파인 구름의 모습에 있다. 이런 형태 때문에 ‘자연의 광장’을 통해 스며든 비는 모래에 의해 정수(淨水)된 뒤 기둥 쪽으로 몰린다. 기둥 안은 비어 있어서 대롱의 역할을 한다. 기둥을 통해 아래로 흘러간 물은 기둥과 연결된 지하 물탱크에 저장된다. 가우디는 정수와 저수(貯水)를 한 번에 끝낼 수 있는 과학적 장치를 이곳에 숨겨 놓았다.


일명 ‘도마뱀’이라고 불리는 구엘 공원의 분수. 지하 물탱크가 가득 차면 바로 이 ‘도마뱀’의 입에서 물이 나온다. ‘도마뱀’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배수 시스템의 일부다.


구엘 공원을 돌아다니다보면 이처럼 용설란(龍舌蘭)이 심어진 길이나 난간을 자주 만나게 된다. 용설란의 뿌리는 흙을 단단하게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가우디는 용설란을 매우 좋아했고, 사진에서처럼 기둥 등의 상단 부분에 심어 건축물의 안정성을 제고했다고 한다. 난간엔 듬성듬성 구멍이 뚫려 있다. 거센 바람이 불어도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성 가족 성당(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외부 모습




가우디의 건축물을 살펴보는 동안 나를 포함한 여행자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가우디에 대한 찬탄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미쳤다, 장난 아니다, 천재다, 믿을 수 없다, 할 말이 없다, 존경스럽다, 사람이 맞을까…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던 찬탄은 이따금 자괴로 발전하기도 했다. 우린 뭐하는 놈들일까, 가우디와 생물학적으로 같은 종이 맞는 걸까, 가우디는 이랬는데 우린 대체 왜 이 모양일까… 끝없이 뻗어나가던 찬탄과 자괴가 멈춘 건 마지막으로 찾아간 레알 광장에서였다. 가이드는 가우디의 첫 작품인 가로등에 대한 소개까지 마친 뒤, 가우디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간단히 요약한 가우디의 생애는 다음과 같다. 가우디는 1852년 6월 25일 가난한 구리 세공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폐병과 류머티즘 관절염을 앓았고 평생 동안 이에 시달렸다. 1876년엔 형이 25세의 나이로 요절했고 이에 충격을 받은 어머니도 두 달 후 세상을 떠났다. 여자를 짝사랑한 적은 있지만 평생 연애도 결혼도 못했다. 젊은 시절 5년 동안 짝사랑했던 여자에게 거절당한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젊은 시절 가족 대부분을 잃고 쓸쓸히 살아온 가우디의 끝은 더욱 비참했다. 성 가족 성당 작업장에 기거하며 매일 같은 생활을 반복하던 가우디는 1926년 6월 7일 오후 성당을 나와 산책하던 도중 전차에 치이는 사고를 당했다. 하지만 허름한 차림 때문에 부랑자로 오인된 나머지 길거리에 오랜 시간 방치됐고, 뒤늦게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뇌진탕과 늑골 골절 등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다 결국 이틀 뒤 사망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 나는 잠시 동안 말을 잃고 말았다.


바르셀로네타 해변의 모습


가우디의 생애에 대해 듣자 연민의 감정이 들었다. 낯설었다. ‘가우디 같은 삶을 살 바에야 차라리 필부필부(匹夫匹婦)로 행복하게 사는 게 낫겠다’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색했다. 원래대로라면 ‘삶이 고달픈들 무슨 상관이람, 이렇게 많은 것을 남겼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을 텐데… ‘온갖 세파가 삶을 뒤흔들고 난타한다 해도, 예술적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보장만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되고 싶다’는 소망을 품곤 하던 나였는데….


문득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던 첫날 찾아간 바르셀로네타 해변의 모습이 떠올랐다. 조용히 부서지던 작은 파도, 함께 산책 나온 연인, 바다를 바라보며 함께 맥주를 마시는 친구들, 지는 태양에 타는 듯 붉어지던 하늘…. 천재 예술가만이 동경의 대상이라면 그 해변에 있던 사람들의 생은 무슨 가치가 있을까. 해변의 풍경을 머릿속으로 더듬다가 가만히 자문해 보았다. 왜 천재 예술가를 동경했는가. 왜 그들의 삶을 부러워하고 그들처럼 되고 싶어 했는가. 분명히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은 질문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명확한 대답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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