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을읊다 Jan 07. 2024

새해 첫 보드 게임

남편과 오랜만에 마트에 갔다. 코로나 시절 동안 마켓컬리에 익숙해지는 바람에 마트에 간 것은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다. 박스 테이프를 사기 위해 평소 잘 가지 않는 구역을 돌아보다 장난감이 있는 코너를 보게 되었다. 보드 게임 하나를 보드판을 펼쳐 투명 케이스로 씌워 놓고 홍보 중이었다. '티켓 투 라이드'라는 게임이었는데 보드판에는 대략적인 유럽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몇몇 도시와 도시 사이는 조그만 플라스틱 열차 모형들로 연결되어 있었다. 정확히 어떤 식으로 플레이하는 게임인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재밌어 보였다. 온라인으로 가격을 찾아보니 마트 가격이 확실히 저렴했다. 별 필요가 없는 물건을 싸게 사는 버릇이 있는 우리는 결국 보드 게임을 충동 구매하고 말았다. 


저녁 식사 시간을 아끼느라 빵과 맥주를 먹으며 소파 테이블 위에 보드판을 펼쳐 놓았다. 서핑 보드 비슷하게 생긴  소파 테이블 위에 놓인 보드판은 밖으로 조금 넘쳤다. 지금보다 좀 더 큰 집으로 이사 가면 이 보드판을 놓고도 충분할 정도로 큰 식탁을 가지고 싶다. 게임 시작 전에 가이드북을 보면서 카드와 기차 모형의 숫자가 맞는지 세어 보고, 어떻게 플레이하는 건지 읽어 보는데 영 알쏭달쏭했다. 처음 한 판은 게임의 룰을 익힌다고 생각하고, 가이드 북을 보며 천천히 플레이해보기로 했다. 막상 해보니 게임의 룰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내가 연결하려는 도시를 가능한 상대에게 들키지 않고 연결할 것, 그리고 가능하면 더 길게 이어진 노선을 만들 것. 두 번째 판은 가이드 북이 없어도 플레이하는데 무리가 없었다. 첫 번째 판은 남편이, 두 번째 판은 내가 이겼다. 첫 번째 판은 시험 삼아한 거니까, 두 번째 판만 벌칙을 적용해 남편에게 아이스크림 심부름을 시켰다. 아마 게임에 이겼더라도 기꺼이 심부름을 해줄 사람이지만, 벌칙은 벌칙이니까.


게임이라고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에게, 게임 개발자가 될 만큼 게임을 좋아하는 남편이 - 그게 보드 게임이라고 할지라도 - 사실 질 리가 없다. 지는 거 싫어하는 나에게 기꺼이 져주고 선선히 아이스크림도 사다 주는 남편이라 고맙다. 20년 가까운 시간을 함께 한 사람과 아직도 새로운 것을 하며 놀 수 있다는 사실도 새삼 흐뭇하다. 앞으로 다가올 또 다른 새해의 저녁에도 이 사람과 함께 놀 수 있었으면, 하고 올해 첫 소망을 빌어 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