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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을읊다 Jan 21. 2024

생일 오류의 역사

남편과 나, 그리고 아버지의 생신은 항상 이 무렵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런 이유로 생일 모임 차 친정에 식사를 하러 다녀왔다. 식사 중 생일과 관련해서 아빠에게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다. 할머니 생신은 음력 1월 15일인데, 출생 후 호적을 올릴 때는 양력 기준으로 하니 2월 말일로 등록을 하셨다고 한다. 실제 체계적으로 주민등록이 이뤄진 것은 그 이후의 일로, 나중에서야 할머니의 출생일이 존재하지 않는 날짜인 2월 31일로 등록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날짜는 존재하지 않으니 수정을 해야 하지만, 공문서를 수정하는 일이라 명백한 오류라고 해도 아무렇게나 진행할 수는 없었다. 결국 할머니가 태어난 날짜를 입증해 줄 수 있는 증인 두 명을 찾아서 할머니의 고향 마을에 가야 했고, - 당시 할머니는 결혼해서 고향을 떠난 후였다 - 우여곡절 끝에 2월 28일로 고칠 수 있었다고 한다. 모든 것을 수기로 처리하고 양력 날짜가 아직 정착되지 않은 시절에나 가능했던 해프닝이지만, 괜스레 관공서를 돌며 자신의 생일을 입증해야 했던 할머니는 얼마나 불안했을까. 


내 생일은 사실 오늘(1월 21일)인데, 그렇게 생일로 우여곡절이 많았던 할머니가 내 출생신고를 잘못하면서 주민등록상 1월 20일이 공식적인 생일이 되었다. 하루 차이니 그냥 20일을 생일이라고 쳐도 괜찮을 것 같은데, 엄마는 강박적으로 내 생일을 1월 21일로 챙겨 왔다. 외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린 시절부터 남의 집에서 자라 본인의 생년월일을 명확히 알지 못하는 게 서러우셨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가족과 어릴 때 친구들만 오늘을 내 생일로 챙겨 준다. 사실 공식적인 생일이 따로 있는 게 나쁘지 않은 게 사회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은 20일, 가족들은 21일에 챙겨주니 생일이 이틀인 것 같아서 나름 기분 좋다. 덕분에 주말 내내 생일 기분으로 지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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