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다니는 개인의 입장에서는 매일같이 힘들게 출근하고, 말도 안 되는 일을 말도 안 통하는 사람들과 싸워가며 해내고, 하루의 1/3을 '회사 일'에 쏟고, 그 대가로 작고 귀여운 월급을 받게 되므로, 뭔가 손해 보는 것 같다고 느끼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회사의 입장에서는 가능한 일 잘하는 사람은 더 늘리고 일 못하는 사람은 솎아 내고 싶어 하는 것도 당연하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매년, 혹은 회사에 따라서는 좀 더 자주 직원의 성과와 역량을 '평가'하고 그 결과에 따라 금전적인 보상을 차등하여 지급한다. 돈을 주는 건 회사지만, 결국 그 사람에게 얼마만큼의 보상을 할지 '평가'하는 것은 대체로 직속 조직의 조직장의 일이다. 따라서 평가 결과를 설명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 의견을 줄 책임이 있는 사람도 조직장이다.
작년 1월에 파트장이 되어서 처음 성과 평가를 진행했고, 2주에 걸쳐 내가 1차 평가를 한 일곱 명의 파트원들과 평가 면담을 마쳤다. 지금까지 17년 정도 직장 생활을 하면서 분명 평가 면담을 여러 차례 했던 것 같다. 그중 기억에 남는 평가 면담은 2년 차에 C를 받을 때 팀장님이 원래 이 연차에는 이 평가를 받는 게 '맞는' 거라고 이야기했던 것밖에 없다. 그 이후에도 대체로 평가 면담은, 면담이라기보다는 평가 통보의 자리였고, 길어야 30분을 넘는 일도 없었으며, 내 커리어에 대해서 의미 있는 피드백을 받은 기억도 없다. 하지만 이번에 회사에서 조직장을 대상으로 한 '평가 면담 교육'을 들으며, 사실은 그것보다는 좀 더 성의 있게 평가 면담을 진행해야 한다는 걸 배웠다. 면담 전에 사전 질문지를 주고 그것을 기반으로 면담을 하는 것을 추천하길래 한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 내가 받아본 적은 없었던 방식이지만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결과는 성공이었을까?
평가 면담 사전 설문은 오랜 고심 끝에(?) 작년 성과에 대한 회고, 평가 결과에 대한 논의, 그리고 올해 업무 목표 및 장기 커리어에 대한 세 파트로 나누어 구성했다. 마지막 파트는 3월에 이어질 정기 1 on 1 시간에 좀 더 상세하게 다룰 예정이므로, 주로 앞의 두 영역에 대한 내용에 초점을 두어 면담을 진행하기로 했다. 개개인과 면담 일정을 정하고 늦어도 면담 하루 전에는 설문에 회신을 받았다. 면담은 평가 결과와 파트원이 회신한 내용을 기준으로 진행했는데, 이렇게 하니까 면담 시간이 압도적으로 길어졌다. 평가를 받은 사람의 입장에서 충분히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더 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적절히 질문이나 제안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면서 딱히 시간제한을 두지 않았던 까닭이다. 결국 면담 시간이 짧았던 사람은 1시간 반, 긴 사람은 4시간 반이었고 평균적으로는 2시간 반 정도가 걸렸다.
이렇게 긴 시간이었지만 나보다는 파트원들이 더 오랜 시간 동안 이야기를 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분명 성공적인(?) 결과인 것도 같다. 평가 체계가 왜 이렇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설명하면서 나 스스로도 이해가 깊어지기도 했다. 이러저러한 것을 잘해서 이 부분이 좋게 평가되었다는 이야기에 파트원들이 쑥스러워하는 것을 보는 것도, 개인의 강점을 기반으로 잘한 일을 설명하도록 부추기고 그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은 사람이 자신이 왜 이번에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는지 설명하는 것에 토 달지 않으려 애쓰며 듣는 것도 나에게는 좋은 경험이었다. 각각의 인원들에게도 좋은 경험이었는지는 익명 설문으로 차주에 만족도 조사를 해볼 예정이다.
하지만 만족도 조사의 결과보다는, 정말로 이번 평가 면담이 성공이었는지는 실제 올해 우리 파트원들이 얼마나 성장하고 실제로 성과를 내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같은 방향을 바라볼 수 있는 파트의 목표를 설정하고, 개개인도 그에 합치되는 적정한 개인 목표를 수립할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 올해는 '개인의 성과'의 합보다 더 큰 '파트의 성과'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 그러기 위해 공부를 계속하고, 더 많이 듣고, 부지런을 떨어야겠지. 파트원들이 들려 준 그 많은 이야기가 내 등을 떠밀고 있으니, 나는 힘을 내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