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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을읊다 Apr 07. 2024

매일 벚꽃길을 걸으며

지난 한 주간은 매일 걸었다. 물론 벚꽃 때문이다. 3월을 마무리하며 혼자 다짐한 일이기도 했다. 벚꽃은 짧으니까, 매일 걸으며 바라봐야겠다고. 아닌 게 아니라 지난 한 주간 매일 같은 길을 걸었는데, 고작 한 주라는 시간 동안 벚꽃은 매일 더 피고, 좀 더 피고, 이윽고 와르르 무너져 내릴 준비를 마쳤다. 아마도 다음 한 주간은 내내 벚꽃비를 맞게 될 것이다. 직장 근처의 벚꽃길이라서 점심시간을 이용해 걸으러 나오면 사람들로 - 대부분 나처럼 그 근처의 직장에 다니고 있는 - 복작복작하다. 벚꽃 흐드러진 나무 옆 잔디밭에는 돗자리를 펴놓고 샌드위치나 피자로 점심 식사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아서 좁은 길에서는 걸음이 더 느려질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모두 한 톤 정도 마음이 명랑해진 것처럼 보인다, 벚꽃길 위에서는.


그 좋은 벚꽃길을 걸으면서 충분히 즐길 수 없는 일도 있었다. 어머니 병세가 심해져서 이번 주에 3차 병원으로 옮긴 회사 동료의 이야기를 들을 때가 그랬다. 약을 써도 차도가 없고, 통증은 계속 심하고, 정확한 병명도 알 수 없고, 요즈음 의료 대란으로 인해 3차 병원으로 옮길 때 정말 어렵고 답답한 상황을 견뎌야 했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무척 아팠다. 그날은 햇빛이 너무 강했고, 벚꽃도 너무 무심하게 아름다워 남의 속도 모르는 것만 같았다. 여전히 미숙한 나는 뭐라고 위로하고 격려해야 할지 몰라서 머뭇거리기만 했다. 다행히 한 주가 가기 전에 병세에 차도가 보이기 시작했다고 들었다. 다행이었다. 그래서 그날은 웃을 수 있었다. 그 동료의 눈에도 간신히 벚꽃 아름다운 풍경이 드는 것 같았다. 


어제는 친정 가족 중에 생일자가 있어서 모임이 있었다. 점심 식사를 하고 친정 근처에 있는 유명한 벚꽃 명소에 다녀왔는데, 영 즐겁지만은 않았다. 벚꽃은 더할 나위 없었다. 사람들이 잔뜩 몰릴만했다. 그리고 사람이 많다는 이점 때문인지 다음 주 수요일로 예정된 총선 출마자의 지지자들도 피켓과 풍선을 들고 몰려 있었다. 양당 지지자들 간에 목청을 높이고 있는 것도 보았다. 너무 과한데, 싶어 생각해 보니 여기가 이번 총선에서 가장 핫한 선거구 중 하나였다. 평상시 그런 거물들이 출마하는 지역이 아니었다 보니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났다. 벚꽃길의 메인 거점에는 출마자 본인이 연설을 하고 있었다. 이 멋진 벚꽃은 그의 병풍이 된 것 같았다. 시끄럽고 번잡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 우리 부부는 일찌감치 벚꽃길에서 벗어나 멀뚱멀뚱 식구들을 기다렸다. 그 시간이 끝도 없이 길게 느껴졌다.


안다. 그런 일들이 벚꽃의 잘못은 아니라는 걸. 그저 벚꽃이 피고 지는 이 짧은 시간 동안에도 누군가는 아프고, 누군가는 슬프고, 누군가는 갈급하고, 누군가는 욕심부리고, 누군가는 두근거리고, 누군가는 이 순간이 짧고 아름다워서 힘껏 즐기고 있으리라. 결국 그냥 사람 사는 일인데, 벚꽃을 배경으로 보면 뭔가 더 짠하고 더 무심해 보이고 더 행복해 보인다. 그래도 기왕이면 지금 이 시즌에 푹 젖어 있고 싶다. 그리고 이번 해의 벚꽃길을 동행한 사람들과, 정말 좋은 한 철을 나란히 걸었음에 감사하고 싶다. 돌아오는 한 주에는 벚꽃비를 실컷 맞아야지. 너무 그렇게 서둘러 가버리지 말아 주길. 그럼에도 불구하고, 벚꽃은 언제나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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