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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을읊다 Apr 21. 2024

회의에 앞서

팀의 리더가 된 후 가장 크게 체감하는 부분은 회의가 급격하게 많아졌다는 점이다. 2주마다 7명의 인원과 각각 1시간씩 1 on 1을 하고 있다. 또한 매주 상위 조직장에게 보고하는 주간 미팅이 한 시간, 팀원들과 진행하는 주간 미팅이 2시간가량 있다. 거기에 우리 팀 내에는 서로 다른 업무 영역이 넷이나 있는데, 그중 셋은 매주 별도로 주간 미팅을 한다. 그 외에 외부 조직이나 업체와 미팅이 잡히는 경우도 있다. 한 주에 최소한 10시간은 회의 중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주 5일 8시간씩 일하는 걸 고려하면, 한 주에 25% ~ 50%의 시간 동안 회의 중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최소 단위 조직의 리더인 내가 이 정도인데, 위로 갈수록 그 비율은 더 커지겠지. 아찔한 일이다.


게다가 아무 준비 없이 들어가는 회의는 드물다. 회의 준비를 위해 사전에 뭐라도 잠깐 들여다보고 갈 수밖에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회의 자료도 만들어야 한다. 회의 후에는 회의록을 쓰는 경우도 많다. 회의가 다닥다닥 붙어 있기라도 하면 하루 일과가 끝날 무렵에는 머리가 멍하고 종일 뭘 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1 on 1은 내가 회의록을 쓰고 있는데, 이런 날은 도저히 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해 내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가끔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일은 별로 안 하면서 회의만 너무 많은 건 아닐까? 회의에 들어가서 뭐라도 말을 하고 나온 것으로 일을 열심히 했다고 자기 위안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회의 자체가 많은 것도 문제긴 하지만, 내가 온갖 회의를 벅차게 여기는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바로 나에게는 아직 각각의 업무들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전체적인 뷰가 없다는 사실이다. 나는 리더가 되기 전 팀 내에 마이너 한 영역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서로 업무 연관이 없는 다른 팀원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고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 기회가 없었다. 그 와중에 리더가 되고 나니 우리 팀 내의 메이저한 업무에 대해서는 용어조차 생소한 것이 많았고, 한 해와 한 분기가 지난 지금에 와서야 어렴풋이 아우트라인을 그려볼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회의에 들어가면 어떤 질문이나 의사 결정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즉시 대응을 해야 하니까 잘 모르는 영역이 많을수록 더 괴롭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관리자가 모든 실무적인 내용을 다 알 수는 없다. 실제 지식이 필요한 영역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부를 할 수밖에 없지만, 사실 관리자가 해야 하는 일은 관리자 자신보다 더 전문 지식이 많은 팀원들을 데리고 팀의 성과를 내는 일이다. 특정 영역에 대해서는 나도 실무 경험이 많으므로 실질적인 조언이나 노하우를 전해줄 수 있지만, 대부분은 그럴 수 없다. 어떤 의사 결정을 내리는 것도 '회사 짬밥'을 다른 팀원들보다 좀 더 먹으며 생긴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이 회사가 우리 팀에게 요구하는 바를 실제 우리가 해내려는 일과 얼라인하는 것이 전부다. 그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어떻게 풀어 나갈지 찾는 문제 해결 능력 정도가 리더로서의 탁월함에 해당하는 영역이 아닐까 싶다. 


결국 회의는 어떤 이슈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확인하고, 어떤 목적지로 이끌어 가기 위해 필요한 일을 정리하고, 실행 과정에서의 어려움이 어떤 것인지 점검하고, 잘되고 있는 일은 어떻게 더 잘 되게 만들지 아이디어를 고민하기 위해 하는 일이다. 이슈/상태/목적지가 불분명하면 회의를 하는 동안 내내 지지부진할 것이다. 어려움이 어떤 것인지 식별이 안돼도 어렵다. 그러므로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이슈/상태/목적지를 파악하고, 회의 중에 문제점을 식별해 낼 수 있는 질문을 만드는 것이다. 지식이 쌓이고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질수록 회의 준비 시간은 적게 걸릴 것이다. 그날을 위해 아직은 열심히 공부하고, 업무를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도구를 마련해야겠다. 한 번씩 회의하다가 뒤집히는 속을 가라앉히기 위한 마음 챙김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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