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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김미생 Jul 15. 2020

우리는 숨 쉬듯 차별하고 산다

아프리카 말라위 이야기

지난해 10월, 아프리카 대륙의 생소한 나라 말라위(Malawi) 모니터링을 떠났다. 모니터링(Mornitoring)은 실제로 현지에서 우리의 후원금이 잘 사용되고 있는지, 어떻게 지역이 변화되고 있는지 등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출장이다. 입사 후 열 번째 해외출장이었기에, 일정은 나름 능숙하고 순탄하게 진행되었다.


그러던 중,

나의 머릿속에 깊이 인상을 남긴 그 일은

마지막 날 일어났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공항으로 향하던 차 안. 출장 동안 우리를 서포트 해준 말라위 현지 직원에게, 일행 중 한 분이 달러를 건넸다. ‘고마웠다’며 건넨 10달러였다. ‘아프리카 아이들이 이렇게 힘든 환경에서 사는지 몰랐다’며 ‘한국에 돌아가면 본인의 최선으로 도울 방법을 고민해보겠다’고 하셨던 분이기에, 달러를 건넨 그 마음이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잘 안다. 그런데 왜인지 그 장면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그녀에게 건넨 그 지폐가 조금은 무례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인 것 같다. ‘유럽이나 북미 출신의 백인 직원이었어도 달러를 건넸을까?’ ‘어엿한 나의 동료이고 우리 기관의 직원인데, 아프리카 사람이고 흑인이라는 이유로 조금은 쉽게 건네신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출장을 다니다 보면 알게 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현지 동료 직원들이 매우 잘 배운 엘리트들이라는 점이다. 그 나라의 유명 대학을 나온 우수 인재인 경우도 있고, 해외 유학을 갔다 본국에 돌아온 경우도 있다. ‘교육을 통해 본인이 배운 걸, 자국의 많은 아이들도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NGO에 입사했다’고 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모니터링을 서포트 하는 것은, 낯선 한국에서 온 이들에게 본인이 아이들과 지역을 위해 어떤 일들을 해 왔는지 보여주는 매우 자랑스러운 일일 것이다. 자신의 전문성과 지식을 발휘해 후원금을 효율적으로 집행하려 노력해 온 결실을 인정받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 의미를 알기에 마음이 더 불편했을 지도 모른다.


‘직원들이 씩씩하게 일하는 모습이 예뻐 보여 건넨 달러일 수도 있는데, 누군가의 호의를 내가 꼬인 시선으로 바라본 건 아닌지’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끝없이 펼쳐지는 구름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나는 과연, 차별이 없는 사람인가’ 스스로 반문하면서.






처음 아프리카 출장을 갔던 때. 눈앞에 보이는 황망한 이야기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붉은색 흙벽돌에 짚으로 엮은 지붕을 덮은 교실. 흙먼지가 날리는 땅바닥에 철퍼덕 앉아 공부하는 꼬마 아이들. 공책이 부족해서 꼬깃꼬깃한 종이 위에 몇 번이고 덧쓴 글씨들.


그런 출장이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세 번이 되는 동안, 어느새 내 안에서 그 광경이 당연해졌다. 깨끗한 마실 물이 없고, 튼튼한 교실이 없고, 넉넉한 음식이 없는 아프리카 아이들의 일상이 익숙해졌다. 마치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고 내일도 그래야 하는 것처럼.


NGO 직원으로 일하며 국제구호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나조차, 이런 생각이 무의식 속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에 부끄러웠다. 좋아하는 책을 꼽으라면 제일 먼저 말하는 수잔 손택 ‘타인에 고통’이란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저녁 뉴스에서 부코바르가 파괴됐다는 보도가 흘러나왔는데, 그곳은 이곳에서 몇 백 마일밖에 안 떨어져 있어요. 그때 전 이렇게 생각했더랍니다. '아, 끔찍한 일이군' 그리고는 채널을 돌렸습니다. 저도 그랬는데, 프랑스나 이탈리아나 독일 사람들이 매일 이곳에서 벌어지는 살육 소식을 저녁 뉴스로 보며 '아, 끔찍한 일이군'이라고 한 마디 하고는 딴 프로그램을 본다고 해서 화를 낼 수는 없지 않겠어요? 늘 그런 식이죠. 사람이란 그런 존재입니다." -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中


사람이란,

정말 그런 존재이다.





얼마 전 미국 사회를 흔들어 놓은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과거 흑인을 노예로 착취했던 백인의 차별은, 노예제도의 폐지를 시작으로 여러 민주주의 법과 제도를 통해 사라졌지만, 역사적으로 답습되어 내려온 무의식 안의 차별 의식은 여전히 뿌리 깊이 잔존하고 있다. 새로운 세대를 거듭하며 그 깊이와 진하기는 옅어지고 있지만, 완전히 사라지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단일민족인 한국은 상대적으로 그러한 인종차별 문제에 있어서 한 발짝 뒤에 있지만, 서양권 나라로 유학을 가거나 여행을 가면 동양인에게 행해지는 차별의 서러움을 조금이나마 경험하게 된다. 우리 또한, 외국인 노동자나 국제결혼을 한 사람들을 향해 차별 섞인 시선을 보낸다.


나도 모르는 새

숨 쉬듯이 하고 있는 내 안의 차별이

스스로 당연해지지 않도록,

잠시 한발 멈추어 숨을 고르자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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