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사라지는 지난밤 찌르라미를 위해서
풀벌레 우는소리는
나의 저녁에 아직 남아있는데
햇빛은 이내
부스러기 같은 내 마음속에서
타오르는 향기 그 내음 속으로 증발되어 가고
바람이
내 창을 비벼올 때
이미 나에게는 창문이 없었다.
풀잎 밟는 소리에
밤잠을 설치고 나면
아침엔
온방 가득한 네 향기가
날개 잃은 나비처럼 몸부림치며 푸득 거리고
장난스럽게
콧등 깨무는 네 입술 위에는
우연한 슬픔으로 다가온 겨울의 그 고독처럼
이미 싸늘함이 미움처럼 내려앉아 있는데
너는
내게로 다가와 있나
풀벌레 우는 소리는
나의 저녁에 아직 남아있는데
1989.10.26
21살 어린 감수성에 시를 썼다
막연히 실체적인 대상도 없이
어딘가 있을 누군가의 애정을 느끼며
연필을 긁적긁적.....
세월이 흘러 읽어보니
어느새 그때의 감정으로 돌아가게 된다
감성을 잃어버리고
시를 잃어버리고
인간이 무한대로 가지고 있는
우주와 같은 깊은 성찰을 잃어버렸나 했더니
시간과 공간이
나를 다시 살려내나 보다
분명히 삶은
당신의 눈동자에 비추어진
스스로 바라보는 내 모습이지만
비로소 알게 되는 건
나는 당신의 눈망울에 머물 뿐
머리로 가슴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편안한 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영혼이라 일컫는
머리 생각, 가슴 느낌은
내 것 하나로도 벅차고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