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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르니스트 Feb 06. 2024

매일 30분, 글쓰기 좋은 질문 642

(24) 나는 그 당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다

    시간이, 그리고 그 안에서 물질이나 의지, 또는 뭐라고 정의하기 어려운 어떤 것들이 흘러 다닌다. 이것은 내가 '인지'한 것이 아니라 '사유'한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 흐름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방향성도 보이지 않지만 그것은 내가 그저 그 흐름이 너무나 거대하기에 '볼 수 없을 뿐', 흐름은 언제나 거기에 있었다. 작은 흐름들은 갈래가 수없이 뻗어있는 강물, 그리고 거기에 이어진 바다와 같다. 조그만 흐름 하나, 다시 하나, 그리고 몇 개일지 모를 그런 흐름들이 서로에게 올라타면서 흐름이 물결이 되고 물결은 다시 파도가 되며, 파도는 결국 거대한 조석이 되어 모든 것들을 휩쓴다. 그리고 그 흐름이 만들어 내는 일들은 눈 앞에 닥쳤을 때야 알 수 있다. 그것이 너무나 거대하므로 작디 작은 존재인 나의 시야를 가득 채워버리기 때문이다. 갯벌에서 바둥거리는 작은 게의 눈에는 밀물의 흐름이 보이지 않다가 어느 순간 주변 모두가 바닷물로 가득차 버리는 것처럼.

    나는 그렇게, 그 당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다. 그날 아침도 평온했다. 언제나처럼 요란한 알람 소리가 귓전을 때려서, 잠에 빠진 팔다리를 힘겹게 버둥거려 침대에서 일어났다. 항상 그렇듯이 반쯤 감긴 눈으로 커피를 내렸고, 토스터기에서 튀어나온 검게 그슬린 빵에 살짝 짜증을 냈다. 옷에 몸을 욱여넣고, 신발에 묻은 먼지를 대충 털어낸 후 집을 나섰다. 냉랭한 아침 공기가 뺨을 조여온다. 하늘은 적당히 구름이 낀 파랗지도, 검지도 않은 칙칙한 회백색이었다. 그냥 항상 그렇던, 뉴욕의 아침이었다.

    가판대에서 아침 신문을 집어 들었을 때도 나는 평상시와 다름이 없었다. 신문 1면에는 어제랑 똑같은 분위기의 헤드라인이 요란한 문구로 시선을 끌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다음 장에는 하품 나오는 개그가 묻은 네컷 만화가, 마지막 장에는 오년쯤 지난 패션센스로 치장한 여성모델이 세탁세제 한 통을 들고 세상 없을 화사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사무실에 들어서며 책상 옆 휴지통에 신문을 던져 넣었다. 오늘은 어제의 다음 날이었고, 내일은 오늘의 다음 날일 것이 틀림없는, 그런 날이었다.

    비서인 로레인이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쿠조 씨, 좋은 아침이네요." 그녀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내가 허락하기도 전에 문을 열고 들어와 아침 인사를 건넸다.

    "어제보다는 우편이 한 개 더 왔네요. 두 통의 메일이 왔어요."

 


* 하드보일드 탐정에게 일어난 거대한 사건을, 아주 노곤한 분위기의 아침에서 시작하는 도입부로 시작해 보고 싶은 글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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