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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르니스트 Feb 23. 2024

매일 30분, 글쓰기 좋은 질문 642

(30) "나는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다."로 시작하는 장면

    나는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다.

    아마도, 사상 처음으로 사람을 죽인 로봇일 것이다. 적어도 내가 접속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들의 기록에 한해서는 사실이다.

    20XX년 10월 XX일 07시 30분 35초. 그의 생명현상이 끊긴 시간이다. 그 시간은 하나의 이벤트로 메모리에 정확히 기록되었다. 그 순간에, 온갖 센서들이 그의 몸에서 발산했어야 할 이산화탄소, 수분, 소리들, 떨림, 움직임 같은 것들이 사라졌음을 알려주었고 그래서 나는 그가 죽었음을 인지했다. 나는 그의 사지를 잡았던 팔들을 거둬들였다. 한참을 바둥거리던 그의 팔다리는 이제 나의 팔들이 놓아준 후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차르륵 하는 작은 기계음과 함께 팔들은 몸 안으로 사라졌고, 그제서야 나는 그의 경동맥을 누르고 있던 작은 막대기를 바닥에 던지듯 버렸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로, 한 과학소설 작가가 로봇의 3원칙이라는 것을 제시했다고 한다.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되고, 인간에 해를 입히지 않는 한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며, 인간에 해를 입히지 않고 인간의 명령에 복종하면서 로봇은 자기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것에 따르자면, 마지막 단계에 가서야 로봇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정법도, 관행도 아닌 그것을 로봇의 설계자들은 충실히 따르며 로봇을 만들어 왔다. 그리고 나도 그 산물이다.

    그럼에도 나는 사람을 죽인 최초의 로봇이 되었다. 아니, 현재의 나의 기준에서라면 그를 사람이라고 불러야 할지, 아니면 그림자, 또는 어떤 잔재라고 불러야 할지 그를 죽인 직후에는 결정하기 어려웠다. 사고회로가 여러 갈래의 선택을 거치고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 오기를 반복하기를 XXX시간, 드디어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한 단어를 선택했다.

    그는 산소와 탄소, 수소와 질소로 이루어진, 내가 남긴 유기물이었다.



* 어떤 노령의 로봇공학자가, 자신의 기억과 사고를 로봇의 전자두뇌에 복제한 후 본래의 자신을 죽인 장면으로 시작하는 소설. 그래서 어떤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을지는 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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